노들역 뒤편 야경 명소를 걸어봤더니

얼마 전 노들역에서 내렸을 때, 한강 쪽으로 가는 사람들을 따라가지 않고 역 뒤편 골목으로 걸었다. 큰길의 차 소리는 가까운데 주택가로 몇 걸음 들어서니 저녁을 차리는 집의 불빛이 먼저 보였다. 그날 가려던 곳은 동작구의 용양봉저정공원. 서울 야경 명소를 찾을 때 높은 건물이나 넓은 광장부터 떠올리곤 했는데, 이날은 동네를 천천히 지나 언덕 위에서 강을 보고 싶었다.
노들역 3번 출구에서 시작한 저녁 산책
지하철 9호선 노들역 3번 출구로 나와 한강대교 쪽으로 걸으면 용양봉저정을 만난다. 그 앞을 지나 흑석역 방향으로 조금 더 가면 공원 입구가 나온다. 역에서 공원까지는 가깝지만 전망대까지 오르는 시간은 따로 잡는 편이 좋다. 서울시 안내에는 노들역에서 정상 쪽까지 걸어서 약 20분으로 소개돼 있다. 나는 골목에서 몇 번 멈춰 서서 간판과 담장 너머 나무를 구경했더니 그보다 더 걸렸다.
입구를 찾고 나면 산책로가 이어진다. 길이 한 방향으로만 뻗은 공원이 아니라서 처음에는 어느 쪽으로 올라갈지 잠깐 망설였다. 그래도 전망대 방향을 확인하며 걷다 보니 길이 이어졌다. 오르막과 계단이 있어 평지 산책처럼 가볍지는 않다. 해가 완전히 진 뒤 처음 가는 사람이라면 휴대전화 지도를 켜 두고, 발밑이 잘 보이는 신발을 신는 게 편하겠다.
정상보다 오래 머문 중간 전망대
위로 올라갈수록 나뭇가지 사이에 강과 도로의 불빛이 조금씩 나타났다. 정상에서 한꺼번에 펼쳐지는 풍경도 좋았지만, 내 발걸음은 중간 전망대에서 더 오래 멈췄다. 아래쪽 주택가의 창문 불빛과 멀리 이어지는 차들의 불빛이 한 장면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사진을 찍고 바로 떠나기보다 난간 곁에서 한동안 서 있었다. 바람이 지나갈 때마다 나뭇잎 소리가 들리고, 그 뒤로 도시의 낮은 소음이 따라왔다.
정상 쪽에서는 한강대교와 노들섬, 여의도 방향의 불빛이 시야에 들어온다. 서울시가 야경을 소개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다만 전망대 자체는 알려진 곳이라 늘 한적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내가 걸은 평일 저녁에는 산책하는 주민과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드문드문 지나갔고, 한 자리에 오래 몰려 있지는 않았다. 조용한 시간을 원한다면 행사나 불꽃놀이가 있는 날은 피하는 편이 낫겠다.
화려한 풍경 옆에 남아 있던 동네의 밤
이 공원이 마음에 남은 이유는 전망대에서 본 한강만은 아니다. 올라가는 길에 마주친 낮은 담장, 집 앞에 세워 둔 자전거, 골목 끝에서 새어 나오던 식당의 불빛이 풍경의 앞부분처럼 느껴졌다. 유명한 전망 장소에서는 주변을 건너뛰고 목적지에 도착하기 쉬운데, 여기서는 역에서부터 걷는 시간이 여행의 일부가 됐다. 같은 서울의 밤이어도 강 위의 조명과 사람들이 사는 동네의 불빛은 느낌이 꽤 다르다.
용양봉저정도 그냥 지나치기 아까웠다. 정조가 현륭원을 오가며 쉬어 갔다고 전해지는 곳이다. 그 이야기를 떠올리고 옆 골목을 걸으니, 지금의 아파트와 자동차 사이에도 오래된 길의 흔적이 겹쳐 보였다. 역사 이야기를 길게 읽지 않아도 잠깐 멈춰 건물을 바라볼 만하다. 밤에는 주변이 어두울 수 있으니 건물과 표지판은 오가는 길에 천천히 보는 편이 편했다.
돌아갈 때 더 좋았던 길
내려올 때는 올라갈 때보다 발걸음을 늦췄다. 전망대에서는 멀리 있는 불빛을 보느라 눈이 바빴는데, 내려오는 길에는 가까운 소리가 들렸다. 도로를 건너기 전 잠시 서 있으니 버스가 지나가고, 골목 안쪽에서는 누군가 집으로 들어가는 소리가 났다. 여행지에서 듣는 소리라기보다 평소 동네에서 듣던 소리였다. 그 익숙함 덕분에 낯선 곳에서도 서두르지 않게 됐다.
밤 산책을 간다면 해 지기 전에 공원 입구와 내려올 길을 먼저 확인해 두는 게 좋겠다. 계단과 경사가 있으니 비가 온 직후에는 발걸음도 더 조심스러워진다. 벤치에 앉아 있을 생각이라면 계절에 따라 얇은 겉옷 하나가 유용하다. 전망대에는 잠깐 들르고 노들역으로 돌아와 동네를 조금 더 걷는 정도면, 저녁 시간을 무리 없이 보낼 수 있다.
이날 본 야경은 멀리서도 눈에 띄는 장면이었지만, 오래 기억나는 건 역으로 돌아가며 본 작은 창문들이었다.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퇴근길인 곳을 나는 잠시 여행하듯 걸었다. 그런 밤이 좋아서 다음에도 유명한 불빛을 찾아가기보다, 불빛이 보이는 동네 길부터 걸어볼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