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 여행에서 호수 옆 골목을 오래 걸었다

하노이에서 보낸 어느 아침, 숙소를 나설 때만 해도 호안끼엠 호수 쪽으로 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큰길에 오토바이가 쏟아지는 걸 보고 발길을 북쪽으로 돌렸다. 판딘풍 거리의 나무 그늘을 따라 걷다가 쭉박 호수까지 간 날이다. 사진에 남은 건 유명한 건물보다 빨래가 걸린 발코니와 아침 식사를 하던 사람들의 뒷모습이었다. 하노이 여행에서 내가 오래 기억하는 장면도 그쪽이다.
판딘풍 거리에서 걸음을 늦췄다
판딘풍 거리는 차와 오토바이가 다니는 길이지만, 나무가 이어진 쪽으로 걸으면 잠깐씩 그늘을 만날 수 있다. 주변의 큰 관광지로 향하는 사람들도 지나간다. 그들과 같은 방향으로 걷다가 골목 입구에서 멈춰 서니 거리의 속도가 조금 달라졌다. 누군가는 의자를 가게 앞으로 옮기고, 누군가는 오토바이 안장에 묻은 물기를 닦고 있었다.
나는 북문과 끄어박 성당이 있는 구간을 지나 흥브엉 거리 쪽으로 걸었다. 목적지를 계속 확인하기보다 큰길 이름만 기억해 두고, 마음에 드는 골목이 보이면 몇 걸음 들어갔다가 돌아왔다. 골목 안은 사람들의 생활 공간이다. 문이 열린 집 안을 들여다보거나 길을 막고 사진을 찍기보다는, 지나가는 사람처럼 조용히 걷는 편이 마음이 편했다.
이 길이 처음부터 끝까지 한적한 건 아니다. 차량 소리가 가까워졌다 멀어지고, 횡단할 때는 걸음을 멈추고 흐름을 봐야 했다. 그래도 발밑만 보며 서둘러 이동할 필요는 없었다. 길을 건너기 어려우면 억지로 틈을 찾지 않고, 건널 만한 곳까지 조금 더 걸었다.
쭉박 호수에서는 골목으로 한 번 더 들어갔다
탄니엔 거리로 나오면 한쪽에는 서호, 다른 쪽에는 쭉박 호수가 보인다. 두 호수 사이로 길이 지나가는 풍경은 시원하지만, 도로에는 차가 많다. 나는 호수를 바라보다가 쭉박 거리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물가를 조금 걷고 주택과 작은 가게가 붙어 있는 길로 들어가는 흐름이 좋았다.
호숫가에도 사진을 찍는 사람과 산책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래서 사람이 전혀 없는 장소를 기대하고 가면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 다만 내가 걸은 평일 오전에는 몇 걸음만 안쪽으로 들어가도 큰길의 소리가 낮아졌다.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 문 앞에 세워 둔 자전거, 물건을 고르는 손님을 기다리는 가게가 보였다. 특별한 일이 벌어지지 않는 풍경이라 오래 보고 싶었다.
골목은 길이 짧고 방향이 자주 바뀐다. 무작정 안으로만 들어가기보다 호수가 어느 쪽에 있는지 가끔 돌아보면 편하다. 나는 갈림길에서 헷갈릴 때마다 물가로 나와 다시 걷기 시작했다. 길을 잘못 든 느낌이 들어도 몇 분이면 익숙한 풍경으로 돌아올 수 있어서, 느린 산책에 잘 맞았다.
응우사에서 먹은 점심은 산책의 일부였다
쭉박에서 응우사 쪽으로 이어 걸으니 식당 앞 의자가 하나둘 차기 시작했다. 응우사는 퍼꾸온을 먹으러 오는 사람이 있는 동네다. 얇은 쌀국수 면에 고기와 채소를 넣어 말아 낸 음식인데, 국물 있는 퍼를 생각하고 주문했다면 모양부터 조금 낯설 수 있다. 나는 작은 접시를 앞에 두고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천천히 먹었다.
점심시간에는 이 골목도 분주하다. 조용한 풍경을 먼저 보고 싶다면 오전에 걷고 식사는 그 뒤에 하는 순서가 자연스러웠다. 가게를 고를 때도 이름난 곳을 찾아 헤매기보다 메뉴와 자리를 살펴보고 들어갔다. 영업시간이나 메뉴는 바뀔 수 있으니, 특정 식당 하나를 목표로 삼기보다 동네에서 한 끼 먹는다는 마음으로 가는 편이 좋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호수 쪽으로 나왔을 때, 아침에 지나친 골목이 다른 모습으로 보였다. 가게 앞에는 배달 오토바이가 섰고 그늘은 길 건너편으로 옮겨가 있었다. 같은 길을 되짚어도 시간이 바뀌면 볼 것이 생긴다. 그래서 이 동네에서는 돌아가는 길을 굳이 새로 찾지 않았다.
사람 적은 시간을 찾으면 동네가 더 잘 보인다
하노이의 로컬 동네라고 해서 언제나 조용한 것은 아니다. 출근길과 점심시간에는 오토바이가 이어지고, 해 질 무렵 호숫가에는 산책하는 사람이 늘어난다. 내가 걸었던 오전에는 길이 비어 있는 순간보다 생활 소리가 들릴 만큼 여유가 있는 순간이 많았다. 유명 관광지에서 느끼는 혼잡함과는 조금 다른 리듬이었다.
걷는 동안에는 편한 신발과 마실 물이 가장 쓸모 있었다. 그늘이 끊기는 구간도 있고 보도에 오토바이가 서 있는 곳도 있어, 길의 상태를 보며 천천히 움직여야 한다. 비가 오면 골목 바닥이 미끄러울 수 있으니 걸음을 더 줄이면 된다. 이 일대를 한 번에 다 보겠다는 계획보다, 판딘풍 거리에서 출발해 쭉박 호수와 응우사까지 걷고 마음에 드는 자리에서 쉬는 정도가 내게는 알맞았다.
하노이 여행을 떠올리면 북적이는 야시장도 생각나지만, 이상하게 가장 먼저 돌아오는 건 그날 골목에서 들은 그릇 부딪히는 소리다. 낯선 도시의 평범한 오전을 조금 빌려 걸었던 시간. 다음에 하노이에 가더라도 나는 이 길에 다시 서서, 그날과 달라진 작은 풍경부터 찾아볼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