벳푸 온천 지옥순례를 걷다가 골목에 더 오래 머물렀다

철륜 버스 정류장에 내렸을 때, 지옥 입구를 찾기 전에 골목 위로 올라오는 하얀 김부터 눈에 들어왔다. 벳푸 온천 지옥순례를 하러 왔으니 일곱 곳을 부지런히 돌아야 할 것 같았는데, 막상 발걸음은 자꾸 골목에서 느려졌다. 큰길에는 관광객이 오갔지만 한 블록만 들어가도 빨랫줄과 작은 여관, 동네 목욕탕이 보였다. 뜨거운 물이 관광지가 되기 전부터 이곳 사람들의 하루에 들어와 있었겠구나 싶었다.
철륜에 도착하면 먼저 골목을 걷는다
벳푸역에서 버스를 타고 철륜 쪽으로 올라왔다. 역 앞의 평평한 거리와 달리 이 동네는 길이 조금씩 기울어져 있다. 정류장에서 바다지옥 방향으로 바로 향해도 되지만, 나는 이데유자카 쪽으로 내려가며 주변을 둘러봤다. 가게 앞에서는 음식 익는 냄새가 났고, 낮은 건물 사이로는 온천 김이 끊겼다가 다시 나타났다. 사진 한 장에 담기 어려운 풍경인데, 그래서 더 오래 기억에 남았다.
지옥순례를 조용하게 즐기고 싶다면 이른 시간에 철륜에 도착하는 편이 좋다. 그렇다고 이 골목이 늘 한적하다는 뜻은 아니다. 인기 있는 찜요리 가게 앞은 기다리는 사람이 생기고, 주말의 큰길도 분주하다. 골목은 주민의 생활 공간이기도 하니 목욕탕 출입구나 집 앞에서는 카메라를 내려놓는 게 마음 편했다.
일곱 지옥보다 또렷했던 두 장면
철륜에는 일곱 지옥 가운데 다섯 곳이 모여 있다. 나는 푸른 물빛의 바다지옥에서 시작해 회색 진흙이 둥글게 끓어오르는 오니이시보즈지옥으로 걸었다. 바다지옥은 색이 선명해서 처음 보는 순간 눈길을 붙잡는다. 그런데 오래 서 있게 된 곳은 오니이시보즈지옥이었다. 진흙이 느릿하게 부풀었다 가라앉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주변의 말소리도 조금 멀어지는 듯했다.
나머지 시설을 빠르게 찍고 이동하기보다는 마음에 남는 곳에서 시간을 쓰는 쪽이 내 여행에는 맞았다. 지옥의 뜨거운 물은 구경하는 곳이지 몸을 담그는 온천이 아니다. 이름에 온천이 들어간 여행이라 가끔 헷갈리지만, 실제로 목욕을 하고 싶다면 별도의 온천탕을 찾아야 한다. 시설 안에서는 펜스와 안내를 따라 걷는 게 좋다. 가까이에서 보이는 물빛이 아름다워도 물과 김은 뜨겁다.
혈지옥으로 가는 길은 버스를 탔다
철륜의 다섯 곳을 본 뒤에는 조금 떨어진 혈지옥과 용권지옥으로 이동했다. 두 곳까지 한꺼번에 걸어가면 골목 산책의 여유가 피로로 바뀔 것 같아 버스를 탔다. 혈지옥의 붉은 연못은 바다지옥의 파란색과 나란히 떠올리게 된다. 용권지옥은 간헐천이 솟는 장면을 기다려야 할 수 있어서, 도착하자마자 입구의 안내부터 확인하는 편이 좋다.
동선을 짤 때 알아두면 편한 숫자도 있다. 벳푸지옥조합 안내 기준으로 일곱 곳의 운영 시간은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다. 성인 공통 관람권은 2,400엔이고 구입한 날과 다음 날까지 쓸 수 있으며, 각 지옥에는 한 번씩 입장할 수 있다. 하루에 모두 돌 여유가 없다면 이틀로 나눌 수 있다는 뜻이다. 버스 시간과 요금은 바뀔 수 있으니 출발 전 현지 안내를 확인하면 발걸음이 한결 가볍다.
다시 철륜에 돌아와 천천히 먹은 점심
지옥을 보고 돌아온 뒤에는 철륜의 지옥찜 공방 근처에서 한참 쉬었다. 온천 증기로 식재료를 익히는 지옥찜은 이 동네에서 오래 이어진 방식이다. 김이 오르는 찜통을 보고 있으면 조금 전까지 구경하던 지열이 사람의 식탁에도 닿아 있다는 게 실감 난다. 점심시간에는 방문객이 몰릴 수 있어 서두르지 않고 기다릴 시간을 남겨두는 편이 낫다.
식사 뒤에는 근처 오타니 공원까지 천천히 걸었다. 공원에서도 김이 올라오지만, 입장권을 내거나 다음 순서를 확인할 필요는 없다. 잠깐 앉아 쉬다가 다시 골목으로 나왔다. 벳푸 온천 지옥순례의 화려한 색은 분명 인상적이다. 그래도 내게 오래 남은 건 작은 길 위로 피어오르던 김과, 그 옆을 아무렇지 않게 지나가던 동네의 오후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