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 여행에서 오래 남은 건 골목의 오후였다

목포역에 내렸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관광 안내판보다 역 앞을 바쁘게 건너는 사람들이었다. 점심 장사를 준비하는 가게, 손수레를 끌고 가는 사람, 익숙한 길을 빠르게 걷는 학생들. 그 틈에 섞여 천천히 걸으니 목포 여행의 속도가 조금 달라졌다. 이름난 장소를 많이 찍고 돌아오는 대신, 원도심 골목에서 반나절을 보내기로 했다.
목포역에서 오거리까지는 천천히 걸었다
역에서 나와 목원동 오거리 쪽으로 향했다. 목포문화관광이 소개하는 옥단이길도 목포역에서 출발해 오거리와 북교동 일대를 잇는다. 전체 길이는 4.6㎞지만, 나는 그 길을 전부 따라가기보다 마음이 가는 골목에서 멈췄다. 오거리에 이르면 길이 여러 방향으로 갈라진다. 처음 온 사람에게는 잠깐 낯설지만, 어느 쪽으로 한 블록만 들어가도 큰길과는 다른 표정이 보인다.
목원동에서는 오래된 건물과 지금 영업하는 가게가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이 좋았다. 간판의 글씨체가 서로 다르고, 가게 앞에 내놓은 물건도 제각각이다. 유명한 사진 명소처럼 한눈에 완성된 풍경은 아니다. 대신 몇 걸음마다 눈길이 머문다. 근대 건물이 남아 있는 거리를 걸을 때도 건물 외관만 보고 지나치기보다, 그 사이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하루를 보내는지 보게 됐다.
북교동 쪽은 큰길에서 조금 벗어나 걷기 좋았다. 길이 휘어지는 곳에서는 다음 골목이 바로 보이지 않아 발걸음이 자연히 느려졌다. 다만 이 일대는 누군가의 집과 일터가 이어지는 동네다. 열린 문 안쪽을 들여다보거나 집 앞에서 오래 사진을 찍는 일은 피했다. 골목 여행에서 조용히 걷는 건 취향인 동시에 주민에게 지킬 예의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산동에서는 보리마당까지 올라갔다
오거리 일대를 걷고 나서는 서산동 시화골목으로 향했다. 처음부터 언덕 위만 바라보면 오르막이 길게 느껴진다. 입구에서 물 한 병을 챙기고, 계단 앞에서는 숨을 고르며 올라가는 편이 좋았다. 골목에는 주민들이 쓴 시와 그림이 남아 있다. 목포문화관광에 따르면 주민과 지역 작가가 함께 만든 길이다. 그래서인지 문구를 읽다 보면 전시장을 관람한다기보다 동네 이야기를 한 줄씩 듣는 기분이 든다.
시화골목에서 좋았던 순간은 벽화 앞보다 길이 잠깐 트이는 지점에 있었다. 지붕이 층층이 겹치고 그 너머로 항구 쪽 하늘이 보인다. 몇 걸음 옮기면 보이던 바다가 다시 담장 뒤로 숨는다. 같은 언덕인데도 골목마다 시야가 달라 자꾸 걸음을 멈추게 됐다. 빨리 올라가 전망만 보고 내려왔다면 놓쳤을 장면들이다.
위쪽 보리마당에서는 잠시 쉬었다. 서산동 집들이 아래로 펼쳐지고, 방금 지나온 좁은 길이 그 사이 어딘가에 숨어 있다. 바람이 불면 시원하지만 그늘이 늘 있는 길은 아니다. 한낮의 뜨거운 시간보다 오전이나 해가 기울기 시작할 무렵이 걷기에 편했다. 비 온 뒤에는 경사진 계단과 골목 바닥을 특히 조심해야겠다 싶었다.
사진을 덜 찍으니 동네가 더 보였다
서산동은 ‘숨은 곳’이라고 부르기에는 이미 알려진 장소다. 시화골목 입구와 전망이 좋은 자리에서는 다른 여행자를 마주칠 수도 있다. 그래도 한 골목 옆으로만 걸으면 분위기가 달라진다. 사람 없는 사진을 기다리기보다 주민의 통행을 먼저 살피고, 길이 비었을 때 짧게 한 장 남겼다. 카메라를 내리자 화분을 돌보는 손길이나 대문 옆에 놓인 의자 같은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런 동네에서는 맛집 한 곳을 꼭 찾아가야 한다는 마음도 내려놓게 된다. 영업 중인 작은 가게에 들어가 잠깐 앉아 쉬고, 다시 걸을 힘이 생기면 다음 골목으로 향하면 된다. 영업시간이 바뀌는 가게도 있으니 특정한 한 집만 믿고 동선을 짜기보다 선택지를 열어두는 편이 마음 편하다. 화장실과 쉴 곳은 목포역이나 큰길 주변에서 미리 살피고 올라가면 언덕에서는 풍경에 집중할 수 있다.
돌아오는 길에도 서두르지 않았다
내려올 때는 올라간 길을 그대로 되짚지 않았다. 방향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다른 골목을 골랐더니 아까 보지 못한 창문과 작은 가게가 나타났다. 목포역에서 목원동을 지나 서산동 보리마당까지 걷는 동안 발보다 눈이 더 바빴다. 걷는 속도와 쉬는 횟수에 따라 반나절이 금방 지난다. 오르막이 부담스럽다면 목원동 골목만 걷고 돌아와도 충분히 목포의 하루를 느낄 수 있다.
목포 여행에서 가장 오래 남은 건 커다란 전망 한 장이 아니었다. 역 앞의 분주함에서 시작해 조용한 언덕 골목에 닿기까지, 사람들이 사는 풍경 사이를 천천히 지나온 시간이었다. 다음에 목포에 오면 보리마당에서 조금 더 오래 앉아 있다가 내려오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