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은행나무 명소를 찾아 마을길을 걸어봤다

지난가을 경북의 은행나무를 찾아다니며 오래 기억에 남은 건 노란 잎보다 그 나무까지 걸어가는 길이었다. 이름난 관광지에서는 사진을 찍고 곧장 다음 장소로 옮기기 바빴는데, 작은 마을에서는 담장과 밭, 낮은 지붕을 지나며 걸음이 저절로 느려졌다. 경북 은행나무 명소를 찾는다면 나무 한 그루 앞에 머무는 여행도 꽤 좋다.
상주 두곡리, 김천 조룡리, 영천 임고서원을 골랐다. 셋 다 오래된 은행나무가 있지만 분위기는 서로 다르다. 마을 안의 나무, 서원 곁의 나무, 넓은 마당에서 바라보는 나무다. 세 곳을 하루에 서둘러 잇기보다 마음에 드는 한 곳을 정해 주변까지 천천히 걷는 편이 이 여행에는 잘 맞았다.
상주 두곡리에서는 나무보다 먼저 마을이 보였다
상주시 은척면 두곡리 은행나무를 찾아갈 때는 내비게이션에 ‘상주 두곡리 은행나무’를 넣었다. 목적지에 가까워지자 큰 관광 안내판을 기대하며 달리던 마음부터 내려놓게 됐다. 이곳은 구경거리가 줄지어 선 거리가 아니라 누군가 매일 오가는 마을이다. 나무를 보러 왔어도 집 앞과 밭 사이에서는 목소리를 낮추고, 차를 세울 자리도 통행에 방해가 되지 않는지 먼저 살피게 된다.
경상북도 문화유산 안내에는 이 나무가 두곡리 640 일대에 자리한 오래된 나무로 소개돼 있다. 가까이 서면 줄기의 두께가 먼저 눈에 들어오지만, 조금 물러서서 봐야 가지가 마을 위로 어떻게 퍼지는지 보인다. 사진 한 장을 남기고 나서도 잠깐 더 서 있었다. 바람에 잎이 움직이는 동안 주변의 평범한 풍경이 나무와 한 장면이 됐다.
솔직히 이곳에는 긴 산책로나 빽빽한 편의시설을 기대하지 않는 게 좋다. 조용한 동네에 들러 오래된 나무를 만난다는 마음으로 가면 오히려 아쉬울 게 적다. 낙엽이 쌓였을 때도 예쁘겠지만, 그 잎을 치우며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일상의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천 조룡리에서는 서원 뒤쪽까지 천천히
김천시 대덕면 조룡리의 은행나무는 섬계서원과 함께 찾으면 길을 잡기 쉽다. ‘섬계서원’ 또는 ‘김천 조룡리 은행나무’로 목적지를 확인하고, 도착해서는 서원 주변을 서두르지 않고 걸었다. 경상북도 문화유산 안내에는 나무가 조룡리에 있다고 적혀 있다. 나무만 화면 가득 담을 때보다 서원의 담과 함께 바라볼 때 이 장소의 표정이 더 잘 남았다.
두곡리가 마을의 생활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이었다면, 조룡리는 한 자리에 오래 머문 시간을 떠올리게 했다. 커다란 줄기와 낮은 건물을 번갈아 보다가 뒤로 몇 걸음 더 물러섰다. 나무의 크기를 사진에 다 넣으려 애쓰는 것보다,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올려다본 모양을 기억하고 싶었다. 서원은 문화유산이기도 하니 출입이 제한된 공간이나 닫힌 문 안쪽으로는 들어가지 않는 게 좋겠다.
김천이라는 도시 이름만 듣고 시내 골목 여행을 상상했다면 이곳은 조금 다른 방향이다. 대덕면의 마을길을 따라 들어가는 나들이에 가깝다. 그래서 한 장소에 머무는 시간을 넉넉히 두는 편이 좋았다. 이동 시간을 촘촘히 계산해 두면 길에서 만나는 조용한 풍경을 놓치기 쉽다.
영천 임고서원에서는 조금 멀리 서서 봤다
영천시 임고면 양항리의 임고서원 은행나무는 앞의 두 곳보다 서원의 공간감이 또렷하다. ‘임고서원’을 목적지로 삼으면 된다. 경상북도 문화유산 안내에는 이 나무가 양항리 491에 있으며, 오래전 서원을 이곳에 다시 지을 때 옮겨 심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정확히 몇 해를 살았는지 헤아리는 일보다 자리를 옮긴 뒤에도 계속 계절을 맞았다는 이야기가 더 오래 남았다.
여기서는 나무 바로 아래보다 조금 떨어진 자리가 좋았다. 가지가 뻗은 모양과 서원 건물이 한눈에 들어온다. 노란 잎이 많을 때는 색에 먼저 시선이 가지만, 잎이 적은 날에는 굵은 줄기와 가지의 선이 더 잘 보일 것 같다. 단풍이 가장 짙은 며칠만 기다리지 않아도 오래된 나무를 보는 재미는 남는다.
서원에 행사가 있거나 방문 동선이 바뀌는 날도 있을 수 있다. 출발하기 전 영천시 관광 안내에서 운영 정보를 확인하면 헛걸음을 줄일 수 있다. 주변은 한적해 보여도 누군가 관리하고 사용하는 장소다. 마당을 걸을 때도 그 점을 잊지 않으려 했다.
노란 날을 맞히는 것보다 걷는 시간을 남겼다
은행잎이 노랗게 변하는 날짜는 해마다, 또 같은 해에도 지역과 날씨에 따라 다르다. ‘몇 월 며칠이 절정’이라는 말 하나만 믿고 먼 길을 떠나기보다 출발 직전의 사진이나 지역 관광 안내를 확인하는 편이 낫다. 비가 오거나 바람이 강하게 분 뒤에는 며칠 사이 풍경이 달라질 수 있다. 아침저녁으로 쌀쌀해지는 계절이라 얇은 겉옷도 챙겼다.
사람이 적은 시간을 원한다면 주말 한낮보다 평일이나 이른 시간을 생각할 만하다. 다만 조용한 마을일수록 이른 아침의 자동차 소리와 대화 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 주택 앞에 오래 서 있지 않고, 떨어진 잎도 눈으로만 보는 편이 편안했다. 세 곳 모두 화려한 시설보다 나무와 그 자리를 둘러싼 풍경이 중심이다.
돌아오는 길에는 어느 나무가 가장 컸는지보다 어느 길에서 가장 천천히 걸었는지가 떠올랐다. 경북의 가을을 꼭 많은 장소로 채울 필요는 없겠다. 마을길 끝에 나무 한 그루가 기다리고 있다면, 그날의 여행은 그것으로 충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