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은행나무 명소를 찾다가 세간리 한 그루에 마음이 갔다

가을 여행지를 고를 때면 저는 사진에 많이 등장하는 길보다, 나무 한 그루를 보러 천천히 들어가는 동네가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경남 은행나무 명소를 찾다가 마음에 남은 곳도 의령군 유곡면 세간리였어요. 길게 늘어선 은행나무 터널은 없지만, 오래된 은행나무와 느티나무, 곽재우 장군 생가가 한 마을 안에 모여 있습니다. 노란 잎을 보는 시간에 마을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곳입니다.
세간리에서는 길보다 나무 한 그루를 보게 됩니다
찾아갈 곳은 ‘의령 세간리 은행나무’입니다. 의령군 문화관광 안내에 나온 위치는 유곡면 세간리 808-2예요. 처음 가는 길이라면 넓은 범위의 마을 이름보다 이 이름이나 지번으로 길을 찾는 편이 분명합니다. 은행나무는 마을 동쪽, 곽재우 장군 생가 앞에 있고 현고수라 불리는 느티나무는 마을 입구 쪽에 있습니다.
의령군은 은행나무의 나이를 약 600년으로 추정하고, 높이는 24.5m, 둘레는 약 9.1m로 안내합니다. 숫자를 알고 가도 실제로 눈길을 붙드는 건 크기 자체보다 나무가 서 있는 자리일 듯해요. 단독으로 꾸민 전망 공간이 아니라 주민의 생활이 이어지는 마을 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사진을 몇 장 찍고 돌아서는 일정이라면 이곳의 좋은 부분을 놓치기 쉽습니다.
은행잎이 노랗게 물드는 날에는 나무 아래만 바라보기보다 조금 물러서서 생가 쪽 풍경까지 함께 담아보는 편이 좋겠습니다. 다만 마을길은 방문객의 촬영 공간이기 전에 주민이 오가는 길입니다. 차가 지나갈 자리나 집 앞을 막지 않고, 떨어진 열매와 나뭇가지는 그대로 두는 것이 이 장소를 오래 즐기는 방법이겠지요.
현고수에서 생가까지, 짧게 이어 걷는 길
세간리의 걸음은 마을 입구 현고수에서 시작해 은행나무와 곽재우 장군 생가로 이어 잡으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현고수는 ‘북을 매단 나무’라는 뜻의 이름을 지닌 느티나무예요. 의령군 안내에는 임진왜란 때 곽재우가 이 나무에 북을 매달아 의병을 모았다는 이야기가 전합니다. 은행나무 한 그루를 보러 왔다가, 가까운 나무 한 그루 앞에서 발걸음이 다시 느려지는 이유입니다.
은행나무 앞의 생가도 함께 보면 좋습니다. 의령군에 따르면 현재의 건물은 옛 자리에 2005년 복원한 것입니다. 오래된 나무와 복원된 집을 같은 시대의 풍경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서로 다른 시간을 품은 장소로 바라보면 마을이 더 또렷하게 보입니다. 현고수의 이야기를 읽고 생가 앞 은행나무로 걸어가는 짧은 동선만으로도 세간리에 올 이유는 충분합니다.
이런 곳에서는 걷는 거리를 일부러 늘릴 필요가 없더군요. 나무의 앞과 옆에서 모양이 어떻게 달라 보이는지 보고, 안내문을 읽은 뒤 잠깐 주변을 둘러보는 정도가 잘 어울립니다. 조용한 마을을 찾아왔으니 머무는 방식도 조용하면 좋겠습니다.
노란 잎을 기다릴 때는 날짜보다 상태를 봅니다
은행나무 여행은 달력만 믿고 떠나면 아쉬울 때가 있습니다. 같은 경남이어도 해마다 기온과 비, 바람에 따라 노랗게 물드는 때와 잎이 떨어지는 속도가 달라지니까요. 10월 말부터 11월 사이를 염두에 두되, 방문 직전에는 의령군의 최근 안내나 사진에서 잎 상태를 확인하는 편이 낫습니다. 특히 비바람이 지난 뒤라면 며칠 차이로 풍경이 꽤 달라질 수 있습니다.
사람 적은 풍경을 좋아한다면 평일 낮에 여유를 두고 걷는 일정이 어울립니다. 그렇다고 한적함을 약속할 수는 없어요. 단풍이 가장 예쁠 때에는 작은 마을에도 방문객이 모일 수 있습니다. 주말이라면 사진 한 장을 위해 길 한가운데 오래 서 있기보다, 다른 사람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며 나무를 보는 시간이 오히려 편안할 것 같습니다.
차를 가져간다면 주차 가능 여부와 현장 안내를 먼저 확인하고, 좁은 마을길이나 집 앞에는 세우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은행나무는 보호받는 천연기념물이기도 합니다. 나무에 기대거나 보호 구역 안으로 들어가기보다 정해진 자리에서 바라봐 주세요. 열매가 떨어지는 계절에는 바닥을 살피며 걷는 것도 필요합니다.
화려한 단풍길 대신 세간리가 남기는 것
의령 세간리 은행나무는 긴 산책로를 기대하고 찾아갈 곳은 아닙니다. 대신 마을 입구의 현고수, 생가 앞의 은행나무, 그 사이의 짧은 길이 한 번에 이어집니다. 경남 은행나무 명소라는 말에 흔히 떠올리는 노란 터널과는 다른 매력이 있어요. 한 그루를 보려고 걸음을 늦추다 보면, 그 나무 곁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시간도 조금은 생각하게 됩니다.
잎이 절정인 날도 좋겠지만, 조금 덜 노랗거나 이미 몇 장 떨어진 날에도 세간리는 제 이야기를 잃지 않을 듯합니다. 오래된 나무가 마을의 평범한 하루 옆에 계속 서 있다는 것. 저는 그런 풍경이 유난히 오래 마음에 남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