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가볼만한곳, 동피랑 말고 조용한 골목만 걸어봤더니

통영은 바다보다 골목에서 먼저 조용해졌다
얼마 전 통영에 다녀왔는데, 이상하게도 유명한 전망대보다 시장 뒤편 골목이 더 오래 기억에 남았다. 통영 하면 보통 동피랑, 케이블카, 중앙시장, 루지 같은 이름이 먼저 떠오르지만, 사람 많은 곳을 조금만 비껴가면 바람 소리가 더 또렷하게 들리는 동네가 있다. 나는 그런 길을 좋아한다. 사진을 찍으려고 줄 서지 않아도 되고, 가게 앞 평상에 앉은 어르신 눈치를 보며 천천히 걸어도 되는 곳.
이번 통영 여행은 일부러 빠르게 움직이지 않았다. 하루에 세 곳 정도만 잡고, 버스와 도보를 섞었다. 관광지 개수로 치면 별것 없지만, 걷는 시간은 꽤 길었다. 중앙시장 근처에서 시작해 서피랑, 해저터널, 봉평동 쪽으로 이어지는 동선이었고, 차가 없어도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 다만 통영은 언덕이 많아서 편한 신발은 거의 필수에 가깝다.
서피랑은 동피랑보다 낮은 목소리의 동네였다
통영 가볼만한곳을 찾다 보면 동피랑 벽화마을이 자주 보인다. 물론 동피랑도 예쁘다. 그런데 솔직히 주말 낮에는 카메라 든 사람이 많아서 골목을 걷는 느낌보다 방문객 흐름에 밀리는 느낌이 먼저 온다. 그래서 나는 길을 조금 틀어 서피랑으로 갔다.
서피랑은 중앙시장과 강구안에서 걸어서 15분 안팎이면 닿는다. 99계단, 피아노계단, 서포루 쪽으로 이어지는 길이 대표적인데, 이름난 포인트가 있어도 분위기는 꽤 차분하다. 계단을 오르면 항구와 낮은 지붕들이 한눈에 들어오고, 바람이 방향을 바꿀 때마다 바다 냄새와 빨래 냄새가 번갈아 올라온다.
나는 평일 오후 3시쯤 갔는데, 한 시간 동안 마주친 여행객은 열 명 남짓이었다. 카페가 빼곡한 동네는 아니고, 골목마다 생활의 흔적이 더 많다. 그래서 더 조심스럽게 걷게 된다. 담벼락을 배경으로 크게 떠드는 것보다, 잠깐 멈춰서 지붕선과 바다선을 보는 쪽이 이 동네와 더 잘 맞았다.
서피랑에서 좋았던 작은 순간
- 서포루 근처에서 내려다본 강구안의 배들이 생각보다 가까웠다.
- 계단 폭이 좁은 구간이 있어 천천히 오르게 되는데, 그 속도가 오히려 좋았다.
- 동피랑보다 상업적인 느낌이 덜해서 동네 산책에 가까웠다.
통영 해저터널은 화려하지 않아서 더 오래 남았다
서피랑에서 내려와 조금 더 걸으면 통영 해저터널 방향으로 갈 수 있다. 이름만 들으면 거창한 시설을 기대할 수도 있는데, 실제로는 꽤 담백하다. 길이는 약 483m 정도로 알려져 있고, 미수동과 당동을 잇는 보행 터널이다. 바다 아래를 걷는다는 사실을 알고 들어가면 묘한 기분이 든다.
터널 안은 시원하고 조용했다. 여름이면 잠깐 숨 고르기 좋고, 비 오는 날에도 걷기 나쁘지 않다. 다만 일부러 이곳 하나만 보러 멀리 이동하기보다는, 서피랑이나 강구안 산책과 함께 묶는 편이 자연스럽다. 통영의 오래된 생활 동선을 따라가다 보면 만나는 장소라고 생각하면 기대치가 딱 맞는다.
사실 요즘 여행지는 너무 자주 예쁘게 꾸며진다. 조명, 포토존, 큰 글씨 간판이 많아질수록 장소가 가진 원래의 온도는 조금씩 흐려진다. 해저터널은 그런 면에서 무심하다. 그래서 좋았다. 벽면을 따라 걷다 보면 관광보다 이동에 가까운 감각이 남고, 그 감각이 통영이라는 도시와 꽤 잘 어울렸다.
봉평동과 박경리기념관 쪽은 시간을 넉넉히 두고 가면 좋다
조금 더 조용한 통영 가볼만한곳을 찾는다면 봉평동 방향도 괜찮다. 박경리기념관은 통영 시내 중심부와는 살짝 떨어져 있어서, 이동 시간이 애매하다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만큼 사람의 밀도가 낮다. 기념관 주변은 큰 소리로 소비되는 여행지라기보다, 천천히 읽고 걷는 쪽에 가깝다.
나는 이곳에서 오래 머문 편이다. 전시를 모두 꼼꼼히 본 것도 있지만, 건물 밖으로 나와 주변의 조용한 길을 걷는 시간이 좋았다. 관광버스가 몰리는 느낌은 거의 없었고, 평일 기준으로는 관람객도 많지 않았다. 문학에 큰 관심이 없더라도 통영이 단지 바다 풍경만의 도시가 아니라는 걸 느끼기에는 충분했다.
근데 이곳은 동선이 조금 갈린다. 중앙시장 중심으로만 움직일 계획이라면 일부러 넣기 애매할 수 있다. 반대로 통영에서 하루를 더 머물거나, 붐비는 장소를 피하고 싶은 여행이라면 좋은 쉼표가 된다. 나는 점심 이후에 들렀다가 해 질 무렵 다시 시내로 돌아왔는데, 그 느린 흐름이 꽤 잘 맞았다.
사람 적은 통영을 걷는 작은 방법
통영에서 한적한 장소를 찾는 요령은 의외로 단순했다. 유명한 이름을 완전히 피하기보다, 그 주변의 옆길을 고르면 된다. 중앙시장도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 사이는 꽤 붐비지만, 골목 하나만 벗어나면 건어물 냄새와 오래된 간판이 남아 있는 조용한 길이 나온다. 강구안도 메인 산책로보다 골목 안쪽 식당가 뒤편이 더 생활에 가깝다.
- 주말보다 평일 오전이나 오후 늦은 시간이 훨씬 걷기 편했다.
- 택시만 타면 놓치는 골목이 많아서, 한 구간 정도는 도보로 남겨두는 편이 좋았다.
- 사진 명소를 먼저 찍고 이동하기보다, 시장과 언덕 사이를 연결해서 걸으면 통영의 결이 더 잘 보였다.
- 비 오는 날에는 해저터널이나 작은 카페를 중간 쉼터로 넣으면 동선이 덜 피곤했다.
통영은 생각보다 작고, 또 생각보다 깊다. 바다를 보러 갔다가 계단에서 오래 서 있게 되고, 유명한 벽화보다 낡은 대문 색이 더 눈에 들어오는 도시다. 통영 가볼만한곳을 검색하면 이름난 장소가 먼저 나오지만, 내게는 그 사이사이에 놓인 조용한 길들이 더 통영다웠다. 다음에 다시 간다면 더 적게 보고, 더 오래 걸을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