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코다테여행을 골목으로만 걸어봤더니 남은 장면들

전차에서 내려 바다 냄새 나는 골목으로
얼마 전 하코다테에 갔을 때, 제일 먼저 한 일은 전망대 줄을 확인하는 게 아니라 노면전차 하루권을 손에 쥐고 아무 정류장에나 내리는 일이었습니다. 하코다테여행 하면 보통 야경, 아침시장, 붉은 벽돌 창고를 떠올리는데, 사실 이 도시는 유명한 장소에서 한 블록만 벗어나도 갑자기 생활의 속도로 바뀝니다.
제가 가장 오래 머문 곳은 스에히로초와 오마치 사이의 언덕 아래 골목이었습니다. 관광객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단체로 몰려다니는 분위기는 덜합니다. 낡은 목조주택, 조용한 세탁소, 작은 우체통, 바닷바람에 살짝 벗겨진 간판 같은 것들이 이어집니다. 걸음이 빨라질 이유가 별로 없습니다.
하코다테 노면전차는 배차가 대체로 6~12분 간격이라 크게 계획을 세우지 않아도 괜찮았습니다. 저는 하루에 1만 4천 보 정도 걸었는데, 체감상 절반은 목적지 없는 골목이었습니다. 길을 잃었다기보다 길이 조금씩 옆으로 새는 느낌에 가까웠습니다.
관광지 바로 옆, 조용한 시간이 남아 있는 곳
가네모리 창고 근처는 낮에는 확실히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 창고 뒤편으로 돌아 항구 쪽 길을 조금 따라가면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사진을 찍으려 멈춰 선 사람보다 동네 주민이 자전거를 세우고 장바구니를 고쳐 드는 장면이 더 눈에 들어옵니다.
특히 오후 4시쯤의 항구 골목이 좋았습니다. 해가 완전히 기울기 전이라 건물 벽에 빛이 낮게 붙고, 갈매기 소리도 과하지 않게 들립니다. 유명한 카페나 기념품점 앞에서는 발걸음이 조금 바빠지는데, 이쪽 길에서는 이상하게 말수가 줄어듭니다. 여행지인데도 생활권 안쪽에 조심스럽게 들어온 느낌이 납니다.
- 붉은 벽돌 창고 앞길보다 뒤편 항구길이 훨씬 한산했습니다.
- 사진은 오전보다 늦은 오후가 부드럽게 나왔습니다.
- 바람이 강한 날이 많아 얇은 겉옷은 계절과 상관없이 챙기는 편이 좋습니다.
솔직히 하코다테의 유명 코스만 빠르게 돌면 하루도 충분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지나치면 이 도시가 왜 오래 기억되는지 조금 놓치게 됩니다. 하코다테는 화려해서라기보다, 낡은 골목과 항구의 냄새가 오래 남는 쪽에 가깝습니다.
모토마치 언덕은 위보다 옆길이 더 좋았다
모토마치는 하코다테여행에서 빠지기 어려운 동네입니다. 교회와 옛 영사관, 언덕길이 모여 있어 사람도 제법 많습니다. 그런데 저는 정면에서 위로 오르는 길보다, 언덕 중간에서 옆으로 빠지는 작은 길들이 더 마음에 들었습니다.
하치만자카처럼 이름난 언덕은 바다를 향해 시원하게 열려 있습니다. 물론 멋집니다. 다만 사람들이 같은 자리에서 같은 방향으로 사진을 찍다 보니 오래 머물기는 조금 어렵습니다. 그럴 때 한 골목만 옆으로 틀면 낮은 담장 너머 정원, 오래된 창틀, 천천히 지나가는 우편 배달 오토바이가 보입니다. 그쪽이 제겐 더 하코다테다웠습니다.
언덕길은 생각보다 체력 소모가 있습니다. 지도상 거리는 짧아 보여도 경사가 있어서 20분 걷고 5분 쉬는 식으로 움직이는 게 편했습니다. 저는 오전 9시 반쯤 올라갔는데, 단체 관광객이 몰리기 전이라 골목 소리가 잘 들렸습니다. 신발은 예쁜 것보다 미끄럽지 않은 쪽이 낫습니다. 비 온 뒤 돌길은 꽤 조심스럽습니다.
조용히 걷기 좋은 동선
전차 스에히로초 정류장에서 내려 언덕 아래 골목을 먼저 걷고, 사람이 늘기 전에 모토마치 쪽으로 천천히 올라가는 흐름이 좋았습니다. 이후 큰길로 바로 내려오지 말고 항구 방향으로 비스듬히 돌아 나오면, 관광지와 생활 골목이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아침시장은 짧게, 생활 시장 쪽은 천천히
하코다테 아침시장은 활기가 있습니다. 해산물 덮밥집도 많고, 여행 온 기분이 선명하게 납니다. 다만 사람 적은 장소를 좋아한다면 오래 머물기보다 이른 시간에 짧게 보고 나오는 편이 맞았습니다. 오전 7시 전후에는 그래도 걸을 만했고, 9시가 가까워질수록 통로가 꽤 북적였습니다.
저는 아침시장에서 간단히 먹고, 하코다테역 뒤쪽과 다이몬 주변 골목으로 걸었습니다. 이쪽은 여행 책자에서 크게 다뤄지는 곳은 아니지만, 오래된 식당과 작은 술집 간판이 이어져 있습니다. 낮에는 문 닫힌 가게가 많아 조금 심심해 보이기도 합니다. 근데 그 심심함이 오히려 좋았습니다. 밤을 보낸 골목이 낮에 잠깐 숨을 고르는 장면 같았습니다.
- 아침시장은 오전 7시 전후가 비교적 편했습니다.
- 다이몬 주변은 낮보다 해 질 무렵에 분위기가 살아납니다.
- 가격은 관광지 식당과 로컬 식당의 차이가 꽤 있어 메뉴판을 천천히 보는 게 좋습니다.
하코다테에서 식사는 유명한 집만 고집하지 않아도 괜찮았습니다. 작은 라멘집에서 카운터에 앉아 먹은 소금라멘 한 그릇이 오래 남았습니다. 손님은 저까지 네 명이었고, 주인은 말수가 적었습니다. 국물은 맑고 담백했는데, 바람 맞고 걸은 뒤라 그런지 괜히 더 따뜻하게 느껴졌습니다.
하코다테산 야경 대신 남긴 밤 산책
하코다테산 야경은 유명합니다. 저도 예전에 한 번 봤고, 분명 아름다웠습니다. 이번에는 사람이 많은 전망대 대신 베이 에어리어 근처 밤길을 걸었습니다. 창고 조명이 물에 비치고, 바람은 낮보다 차가웠습니다. 사람들은 많지 않았고, 가끔 캐리어 끄는 소리만 지나갔습니다.
밤 8시가 넘으면 상점들이 하나둘 닫기 시작합니다. 그 시간이 되면 도시는 관광객을 붙잡으려 애쓰기보다 자기 리듬으로 돌아갑니다. 저는 그 순간이 좋았습니다. 밝은 간판보다 닫힌 셔터, 아직 불 켜진 작은 식당, 전차가 지나가고 난 뒤 잠깐 비는 도로 같은 것들이 여행의 밀도를 만들어줍니다.
하코다테여행을 계획한다면 대표 명소를 전부 빼라는 말은 아닙니다. 다만 일정 중 반나절 정도는 지도에 별표를 찍지 않고 걸어도 충분합니다. 유명한 풍경은 사진으로 남고, 골목에서 만난 조용한 장면은 몸에 남습니다. 저는 다음에 다시 간다면 큰 계획 없이 오마치에서 야치가시라 쪽까지 천천히 걸어볼 생각입니다. 하코다테는 많이 보는 도시라기보다, 조금 덜어내고 걸을 때 더 가까워지는 도시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