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척 여행지 코스 따라 골목과 바다를 천천히 걸었다

삼척항 근처에선 바다보다 먼저 골목을 보게 됐다. 항구 뒤편으로 집들이 층층이 올라가 있고, 그 사이로 좁은 계단이 이어진다. 바다 사진 한 장 찍고 다음 장소로 떠나기엔 아까운 풍경이었다. 사람이 적은 곳을 좋아한다면 삼척 여행지 코스를 삼척항과 나릿골에서 시작해 덕산해변, 덕봉산으로 이어가도 좋겠다. 장소를 많이 넣기보다 걷는 시간을 넉넉히 둔 하루 동선이다.
삼척항 뒤편, 나릿골의 느린 계단
나릿골 감성마을은 삼척항을 끼고 올라가는 동네다. 관광 안내에 나오는 벽화도 있지만, 이곳에서 오래 눈에 남는 건 집 사이로 잠깐씩 드러나는 항구였다. 계단을 몇 칸 오르면 지붕 너머로 바다가 보이고, 방향을 바꾸면 다시 생활 골목이 나온다. 전망 좋은 곳만 향해 직선으로 올라가기보다 갈림길에서 잠시 멈추는 편이 이 동네와 어울렸다.
사실 나릿골을 ‘숨은 명소’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알려진 마을이고, 사진을 찍으러 오는 사람도 있다. 그래도 큰 해변처럼 한곳에 인파가 몰리는 구조는 아니다. 골목이 좁고 경사가 있으니 편한 신발이 낫다. 차는 골목 안으로 들이기보다 항구 주변에서 주차 가능한 곳을 확인하고 걸어 들어가는 편이 마음 편하다. 문 앞이나 담장에 기대 사진을 찍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이곳은 누군가의 여행지이기 전에 주민의 집 앞이다.
오전에는 삼척항 쪽에서 골목을 올랐다가 다른 길로 내려오는 흐름을 권한다. 정해진 관람 순서가 없어 같은 길을 되짚지 않아도 된다. 다만 계단이 많아서 유모차나 이동에 제약이 있다면 항구 주변의 평탄한 길만 걷는 쪽이 낫다.
항구 아래쪽에서는 목적지 없이 한 바퀴
나릿골에서 내려오면 곧장 차에 타기보다 삼척항 주변을 조금 더 걷게 된다. 배가 묶인 자리와 가게가 이어지는 길은 관광용으로 꾸민 거리와 분위기가 다르다. 어느 골목은 조용하고, 어느 길은 일을 하는 사람들로 분주하다. 그 차이가 항구를 항구답게 만든다.
점심도 이 근처에서 해결하면 동선이 단순하다. 메뉴 하나를 꼭 찾아가야 한다고 정하기보다, 영업 중인 식당의 간판과 손님 분위기를 보고 고르는 쪽이 이 코스에는 잘 맞는다. 바닷가 식당은 날씨나 재료 사정에 따라 영업이 달라질 수 있다. 이른 점심을 먹고 남쪽으로 이동하면 오후를 해변에서 길게 쓸 수 있다.
삼척항에서 근덕면 덕산해변까지는 차로 이동하는 구간으로 잡았다. 대중교통을 쓴다면 버스 운행 간격과 돌아오는 편을 먼저 확인해야 한다. 걷기 좋은 두 곳이라도 그 사이까지 걸어서 잇는 코스로 생각하면 하루가 빠듯해진다. 삼척 문화관광 안내에서 위치를 확인하고, 실제 이동 시간은 출발 전에 지도에서 다시 보는 편이 안전하다.
덕산해변에서는 모래사장보다 주변 길
덕산해변에 닿으면 먼저 바다를 향해 서게 되지만, 금세 시선을 옆으로 돌리게 된다. 해변 끝의 덕봉산과 물길이 한 화면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넓은 모래사장을 끝까지 걷는 대신 산 쪽으로 천천히 방향을 잡으면 풍경이 조금씩 바뀐다. 파도 소리가 가까워졌다가, 물길 옆에서는 바람 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
‘한적한 해변’이라는 말은 날짜에 따라 달라진다. 여름 휴가철과 주말 한낮에는 이곳도 사람이 늘 수 있다. 조용한 시간을 원한다면 성수기를 피한 평일이나 이른 시간대가 더 맞겠다. 바다 가까이 간다고 신발을 벗을 필요는 없다. 모래와 자갈, 젖은 길을 오갈 수 있어 밑창이 편한 신발 한 켤레가 오히려 유용하다.
사진을 찍고 바로 떠나기엔 해변 뒤편의 낮은 길도 괜찮다. 바다를 계속 정면에 두지 않아도 소리가 따라온다. 다만 하천과 바다가 만나는 쪽은 날씨에 따라 물길의 모습이 달라질 수 있으니, 건널 수 있어 보이는 곳이라도 현장 안내와 길 상태를 먼저 살펴야 한다.
덕봉산을 한 바퀴 돌고 하루를 늦춘다
덕봉산 해안생태탐방로는 덕산해변과 맹방해변 사이의 작은 산을 따라 걷는 길이다. 한국관광공사 여행 안내에는 해안을 도는 산책로와 정상으로 향하는 길이 구분돼 있다. 높은 산을 오르는 일정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지만, 계단과 바닷바람은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파도가 높거나 비가 온 뒤라면 걷기 전에 현장 통제 여부를 확인하는 편이 낫다.
이 코스에서 좋았던 건 산을 정복했다는 느낌보다, 조금 전 서 있던 해변을 다른 각도에서 다시 보게 되는 순간이다. 덕산 쪽에서 보던 바다가 굽이를 돌며 달라지고, 건너편 맹방 쪽 풍경도 열린다. 발걸음이 빠르면 금방 지나칠 거리라 사진을 찍지 않을 때도 한두 번 멈췄다. 난간 너머로 내려가거나 파도 가까이에 서지 않아도 볼 것은 충분하다.
삼척 여행지 코스를 이렇게 걸으면 유명한 장소를 빠뜨린 듯할 수도 있다. 그런데 삼척항의 생활 골목에서 시작해 작은 산 둘레의 바다까지 보고 나면, 하루에 네댓 곳을 더 넣을 마음이 잘 생기지 않는다. 돌아갈 때 기억나는 건 큰 장면보다 골목 끝에서 보이던 항구와 발밑에서 들리던 파도 소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