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평창 여행에서 오래 기억난 건 동네 길이었다

얼마 전 평창읍에 갔을 때, 가장 오래 서 있었던 곳은 이름난 전망대가 아니라 시장 옆 골목이었다. 가게 앞에 놓인 빈 상자와 천천히 지나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 동네의 하루가 먼저 보였다. 강원도 평창 여행이라고 하면 넓은 풍경부터 떠올리기 쉽지만, 이번에는 평창읍 안에서 걸음을 늦춰 보기로 했다. 시장에서 골목으로, 골목에서 평창강으로 이어지는 짧은 동선이었다.
시장에서는 장을 보는 속도로 걸었다
평창전통시장을 첫 자리로 잡았다. 시장은 여행자에게도 반갑지만, 누군가에게는 저녁 찬거리를 사러 오는 평범한 곳이다. 그 차이를 생각하며 천천히 걸으니 눈에 들어오는 것도 달랐다. 무엇을 먹을지부터 고르기보다 가게 문이 열려 있는지, 사람들이 어느 길로 오가는지 보게 됐다. 좁은 길에서는 장바구니를 든 사람에게 먼저 자리를 내주는 편이 마음도 편했다.
평창문화관광 안내에는 평창장이 매월 끝자리가 5일과 10일인 날 열린다고 적혀 있다. 장날의 활기가 좋다면 날짜를 맞추면 되고, 사람 적은 동네가 목적이라면 장이 서지 않는 평일도 괜찮다. 내가 좋았던 쪽은 후자였다. 시장을 한 바퀴 돌고 가까운 골목으로 들어갔을 때, 조금 전의 소리가 금세 뒤로 멀어졌다. 다만 장이 없는 날에는 문 닫은 가게도 있으니 식사를 한 곳에서 꼭 해결하겠다는 계획은 느슨하게 잡는 게 좋겠다.
골목은 특별한 표지판이 없어도 걸을 만했다. 시장 쪽으로 다시 나올 수 있는 길을 골라 천천히 돌았다. 집 앞과 가게 앞은 누군가의 생활 공간이라 사진을 찍을 때도 발걸음을 멈추게 된다. 사실 이런 여행에서는 사진 한 장보다 길을 방해하지 않고 지나온 기억이 더 오래 남는다.
평창강에 닿으니 걸음이 더 느려졌다
시장 근처에서 걷다가 강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평창읍에는 평창강을 따라 걸을 수 있는 공간이 있고, 강변의 평창바위공원도 함께 둘러볼 만하다. 평창문화관광 안내를 보면 바위공원은 시장에서 약 2㎞ 떨어져 있다. 그 거리가 부담스럽다면 바위공원까지 가야 한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물이 보이는 곳까지 걷고, 마음에 드는 자리에서 돌아와도 이 동선의 맛은 충분하다.
강가에서는 목적지를 향해 걷는 사람보다 잠깐 쉬는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시장 골목이 생활의 소리로 채워져 있었다면, 이쪽은 물소리와 바람이 그 사이를 넓혀 주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강변은 날씨에 따라 인상이 크게 바뀐다. 햇볕을 피할 그늘이 적게 느껴지는 구간도 있으니 한낮에 오래 걷기보다 시간을 넉넉히 두는 편이 좋았다. 비가 많이 왔거나 출입 안내가 있다면 물가로 내려가지 않는 것이 맞다.
평창바위공원까지 걸을 생각이라면 돌아오는 길도 미리 가늠해 두면 편하다. 같은 길을 되짚어도 풍경이 똑같지는 않다. 갈 때는 강 쪽을 봤다면 돌아올 때는 맞은편 동네와 가게들이 보인다. 이 작은 차이 덕분에 짧은 산책이 왕복 이동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노산성은 시간을 남겨 두고 올랐다
강변에서 시선을 들면 노산성 쪽 풍경도 여행에 들어온다. 평창문화관광은 노산성을 평창강이 굽이치는 곳의 산성으로 소개한다. 나는 이름에 이끌려 올라갔지만, 올라가는 길에서는 성보다 발밑을 더 자주 보게 됐다. 평지 산책 뒤에 걷기에는 경사가 느껴지는 구간이 있어 속도를 늦췄다. 편한 신발을 신고, 해가 남아 있을 때 움직이는 쪽이 어울린다.
노산성에서 좋았던 건 높은 곳에 올랐다는 성취감보다 조금 전 걸었던 동네를 다시 바라보는 순간이었다. 시장과 강이 서로 떨어진 장소가 아니라 한 동네의 하루 안에 있다는 게 보였다. 산성에 관한 설명을 길게 읽지 않아도 풍경을 보는 시간이 있었다. 다만 성벽이나 경사진 곳에서는 가까이 다가가 사진을 남기려 하지 않았다. 이곳은 잠깐 들러도 좋지만, 서두르면 올라온 길만 기억에 남을 것 같다.
하루를 빽빽하게 채우지 않아도 좋았다
이번 동선은 평창전통시장, 근처 골목, 평창강, 여유가 있으면 노산성까지였다. 걷는 시간만 계산해 일정을 채우기보다 시장에서 먹을 것을 고르고 강가에서 쉬는 시간을 남겨 두었다. 대중교통으로 온다면 평창읍으로 가는 편과 돌아가는 편을 먼저 확인하는 게 좋다. 평창군 버스정보시스템에서 운행 정보를 확인할 수 있고, 현장에서 기다리는 시간까지 생각하면 마음이 한결 느긋해진다.
솔직히 이 길에는 한 장의 사진으로 설명할 만한 장면이 계속 이어지지는 않는다. 그래서 좋았다. 시장에 물건이 들어오고, 골목에서 누군가 인사를 나누고, 강가에서 잠깐 쉬는 사이에 여행자도 동네의 속도를 조금 빌려 쓸 수 있다. 평창을 다시 찾는다면 또 새로운 장소를 많이 넣기보다, 이 길을 다른 계절에 한 번 더 걸어 보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