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드라이브 코스 따라 회인과 회남을 천천히 달려봤다

지난가을 회인에 차를 세웠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단풍보다 낮은 지붕들이었다. 큰 관광지를 향해 곧장 달릴 생각으로 왔다면 그냥 지나쳤을 골목이다. 그날은 목적지를 하나씩 찍기보다 회인면에서 회남면까지 천천히 이어 가기로 했다. 호수를 보기 전 동네를 걷고, 호수를 본 뒤에는 차를 멈출 만한 곳에서만 쉬는 가을 드라이브 코스였다.
회인에서는 먼저 차에서 내렸다
회인면 소재지는 걸어서 둘러볼 만한 크기다. 오장환 문학관을 길 찾기의 기준점으로 삼고 주변 길을 걸었다. 문학관과 생가, 인산객사, 회인동헌 내아가 가까운 곳에 있어 차를 여러 번 옮길 필요가 없었다. 충북나드리 안내에도 이 장소들이 회인면 소재지에 모여 있다. 다만 골목은 주민들이 매일 오가는 길이다. 차는 주차가 허용된 자리에 두고 걷는 편이 마음이 편했다.
문학관 앞에서 잠깐 멈추면 여행의 속도가 달라진다. 전시를 오래 보지 않아도 된다. 벽에 걸린 글을 읽고 밖으로 나와 골목을 한 바퀴 도는 것만으로도 이 동네가 관광지 한 곳보다 조금 넓게 보였다. 오래된 건물과 지금 쓰는 집이 같은 길에 있다. 사진을 찍을 때는 대문이나 창문 쪽으로 카메라를 들이대지 않으려 했다. 누군가에게는 여행 풍경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집 앞이니까.
회인향교까지 발길을 늘릴 수도 있다. 문학관에서 약 600m 떨어진 곳으로 안내돼 있지만, 길에서는 거리가 숫자보다 길게 느껴질 때가 있다. 한적한 골목을 더 걷고 싶은 날에만 넣어도 충분하다. 나는 골목을 둘러본 뒤 다시 차에 올라 회남면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이 코스에서는 회인에서 보낸 시간이 호숫길만큼 기억에 남았다.
회남으로 가는 길은 서두르기 어렵다
회인에서 회남 방향으로 내려가면 집과 밭이 드문드문 이어지고, 길의 분위기가 조금씩 바뀐다. 대청호가 시야에 들어오기 전에도 창밖을 볼 만하다. 수확을 마친 밭, 낮게 붙은 마을, 나무마다 다른 잎빛이 번갈아 지나간다. 화려한 단풍 터널을 기대하면 담백할 수 있다. 내게는 그 담백함이 이 길의 좋은 점이었다.
회남면 대청호 주변에는 571번 지방도를 따라 달리는 구간이 있다. 보은군의 관광 안내에서는 이 길을 벚꽃 드라이브 길로 소개한다. 가을에 달려보니 봄꽃 대신 호수와 산의 색이 길을 잡아줬다. 물가가 보이다가 사라지고, 굽이를 돌면 다시 나타난다. 길을 따라가며 풍경이 열리는 순간을 기다리는 쪽이 이 코스와 잘 맞았다.
솔직히 운전 중 마음에 드는 풍경을 발견해도 곧바로 차를 세울 수 있는 길은 아니다. 갓길이 좁거나 굽은 구간에서는 그대로 지나쳤다. 차를 멈출 수 있는 공간을 확인한 뒤에야 창밖을 오래 봤다. 이 길은 빨리 많이 보는 여행보다 천천히 안전하게 지나가는 여행에 가깝다. 운전자가 풍경을 놓쳤다면 다음에 멈출 수 있는 곳에서 같이 보면 된다.
회남대교를 건넌 뒤 호수를 봤다
회남면으로 들어서며 회남대교를 건너는 장면은 이 길에서 가장 시원했다. 다리 위에서는 양옆으로 물길과 산이 펼쳐진다. 그렇다고 다리 위에 멈춰 사진을 찍을 수는 없다. 나는 운전에 집중하고, 건넌 뒤 쉬어 갈 자리를 찾아 호수를 봤다. 차 안에서 스친 풍경과 내려서 본 풍경은 달랐다. 바람 소리와 물가의 적막이 뒤늦게 따라왔다.
대청호는 보는 자리마다 모양이 달라진다. 어떤 곳에서는 넓게 펼쳐지고, 또 어떤 곳에서는 산 사이로 좁게 보인다. 그래서 전망이 가장 좋은 한 지점을 고르려 애쓰지 않았다. 잠시 걸을 수 있는 곳에서 물을 보고, 다시 차에 올랐다. 가을 햇빛이 기울면 같은 호수도 색이 한 단계 낮아진다. 긴 산책을 하지 않아도 계절이 느껴졌다.
이 일대는 큰 관광시설보다 마을과 호숫길이 가까이 붙어 있다. 길가의 작은 공간이 모두 주차장인 것은 아니고, 농로와 집으로 드는 길도 있다. 차를 세우기 전 표지와 통행 공간을 확인하면 좋다. 조용한 곳을 찾아온 만큼 그 조용함을 지키고 싶었다. 차 문을 닫는 소리까지 조금 낮추게 되는 곳이었다.
짧은 코스로 남겨두는 편이 좋았다
이 길은 회인면 소재지에서 걷고, 회남면으로 내려가 대청호 주변을 달린 뒤, 여유가 닿는 곳에서 잠시 쉬는 순서가 자연스러웠다. 문학관 실내 관람을 넣는다면 문 여는 시간과 쉬는 날을 먼저 확인해야 한다. 충북나드리에는 오장환 문학관의 월요일 휴관이 안내돼 있다. 가을 행사나 주말 일정에 따라 동네 분위기도 달라질 수 있다.
출발할 때는 늦은 오후보다 낮 시간이 편했다. 골목을 걷고 호숫길을 달리다 보면 생각보다 자주 속도를 늦추게 된다. 해가 짧아지는 계절이라 차에서 내려 걸을 시간도 남겨두는 편이 좋다. 음식점이나 카페를 꼭 들러야 완성되는 코스는 아니다. 물 한 병과 가벼운 겉옷만 챙겨도 잠깐씩 쉬어 가기 좋았다.
유명한 단풍 명소처럼 한눈에 강한 장면을 주는 길은 아니었다. 대신 회인의 골목과 회남의 물가가 서로 다른 속도로 남았다. 돌아오는 길에는 어디가 가장 예뻤는지보다 어느 지점에서 마음이 느려졌는지를 더 오래 생각했다. 가을 드라이브 코스를 다시 고른다면, 나는 이 두 동네 사이에 반나절쯤 비워둘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