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맛집 찾다가 보수동 골목에 오래 머물렀다

얼마 전 보수동 책방골목을 걷다가 점심때를 놓쳤다. 책 한 권만 보고 나오려던 길이었는데, 가게마다 다른 책등을 들여다보느라 발걸음이 자꾸 느려졌다. 부산맛집을 찾을 때도 나는 이런 시간이 좋다. 식당을 먼저 찍어 두고 서두르기보다, 동네를 걷다가 배가 고파지는 쪽. 그날은 책방골목에서 조금 더 걸어 흑교로 근처에서 밥을 먹었다.
보수동이 늘 한적한 건 아니다. 책방골목 입구에는 구경 온 사람이 모이고, 식사 시간에는 동네 식당에도 손님이 찬다. 그래도 큰 관광지처럼 길 전체가 북적이지는 않았다. 몇 걸음만 옮기면 책을 옮기는 사람, 장을 보고 돌아가는 사람의 속도가 보인다. 그 평범한 장면 사이에 점심을 끼워 넣으니 여행이 하루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책방골목에서 밥집까지 천천히 걸었다
보수동에서는 길 찾기를 너무 빡빡하게 하지 않는 편이다. 책방골목을 한 번 지나 흑교로 쪽으로 걸으면 식당들이 있는 생활 도로와 이어진다. 골목 안은 폭이 좁아 누군가 책을 고르고 있으면 자연히 걸음이 늦어진다. 나는 그 틈에 오래된 책 표지를 몇 장 더 봤다. 밥 먹기 전의 짧은 산책으로는 그 정도가 딱 좋았다.
처음 가는 사람이라면 책방골목을 먼저 걷고 식당 이름을 찾아가는 순서가 편하다. 흑교로 60에는 새진주식당이 있고, 흑교로59번길 3에는 물꽁식당이 있다. 부산관광포털에도 두 곳의 위치와 대표 음식이 소개돼 있다. 길 이름이 비슷해도 가게는 서로 다른 골목에 있으니, 가까이 왔다 싶을 때 간판을 한 번 더 보면 된다. 골목에서 주택과 가게 입구가 바로 맞닿아 있어 사진을 찍을 때는 통행을 막지 않도록 조심하게 됐다.
혼자 먹은 육회비빔밥은 의외로 차분했다
그날 내가 들어간 곳은 새진주식당이었다. 이곳은 부산 음식만 떠올리고 온 사람에게 조금 뜻밖의 선택일 수 있다. 대표 음식이 진주식 육회비빔밥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게 로컬 식당은 지역 이름이 붙은 메뉴보다, 그 동네에서 오래 자리를 지킨 가게에 가깝다. 관광 안내에도 오랜 역사를 가진 식당으로 소개돼 있어 발길이 갔다.
비빔밥은 한 그릇으로 식사를 끝낼 수 있어 혼자 걷는 날에 잘 맞았다. 여러 반찬을 한꺼번에 욕심내기보다 밥과 재료를 조금씩 섞어 먹으니 맛의 변화가 천천히 느껴졌다. 육회가 들어간 음식이라 날것을 즐기지 않는 사람에게는 취향이 갈릴 수 있겠다. 솔직히 이곳에서 가장 좋았던 건 특별한 연출보다 식사를 마친 뒤 다시 골목으로 나갈 수 있는 편안함이었다. 한 끼에 여행의 성패를 걸지 않아도 되는 동네다.
점심 무렵에는 손님이 몰릴 수 있으니 조용한 식사를 원한다면 시간을 조금 비켜 가는 편이 낫다. 다만 가게의 운영 시간이나 메뉴, 가격은 달라질 수 있다. 나는 이런 동네 식당에 갈 때 먹을 음식 하나만 생각해 두고, 나머지는 그날 가게 분위기에 맞춘다. 기다리는 사람이 많으면 책방으로 돌아가 한 바퀴 더 걷는 것도 보수동에서는 아깝지 않다.
둘이 간다면 아귀찜도 마음에 남는다
근처 물꽁식당은 아귀요리를 하는 곳이다. 부산관광포털은 아귀찜과 수육, 탕을 소개하면서 아귀찜에 방아잎이 들어간다고 안내한다. 방아잎 향은 익숙한 사람에게는 반갑지만 처음 먹으면 낯설 수 있다. 향에 민감하다면 주문할 때 물어보는 게 좋겠다. 혼자 빠르게 먹는 한 그릇보다, 둘 이상이 앉아 찜 한 접시를 나눌 때 어울릴 만한 선택이다.
두 식당을 하루에 모두 들를 필요는 없다. 새진주식당에서 먹었다면 물꽁식당은 다음 보수동 산책의 이유로 남겨 두면 된다. 나도 여행지에서 맛집 목록을 길게 지우는 날보다, 다음에 와서 먹을 것을 하나 남긴 날을 더 오래 기억한다. 골목을 다시 걸을 핑계가 생기기 때문이다.
식사 뒤에는 책방골목으로 돌아갔다
밥을 먹고 큰길로 곧장 나가지 않았다. 왔던 방향으로 돌아가 책방 앞을 한 번 더 지났다. 들어갈 때는 배가 고파 책 제목이 잘 들어오지 않았는데, 나올 때는 손때 묻은 책등과 가게 안쪽의 조용한 움직임이 보였다. 같은 길도 식사 전후의 속도가 달랐다. 보수동에서는 그 차이를 느끼는 시간이 꽤 즐거웠다.
부산맛집을 찾는 날이라고 꼭 바다를 보며 먹어야 하는 건 아니다. 보수동에서는 밥 한 그릇 앞뒤로 골목의 일상이 따라왔다. 일부러 먼 곳까지 찾아온 여행자이면서도 잠깐은 이 동네에서 점심을 먹는 사람처럼 걸을 수 있었다. 다음에 부산에 오면 새 식당 이름을 더 모으기보다, 남겨 둔 아귀찜을 먹고 책방 사이를 다시 천천히 걸을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