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 여행 1박 2일 골목을 걷다 보니 하루가 길어졌다

순천역에 내려 큰길로 나왔을 때, 서두르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이번 순천 여행 1박 2일에는 이름난 관광지를 여러 곳 묶어 넣지 않았다. 역 가까운 마을에서 시작해 시장과 강변을 걷고, 다음 날 구도심 골목을 돌아볼 생각이었다. 순천의 생활 속으로 조금 들어가 보고 싶었다.
첫날, 순천역 뒤 조곡동에서 걸음을 늦췄다
짐을 맡기고 조곡동 철도문화마을로 향했다. 순천역 가까이에 있는 옛 철도관사 마을이다. 순천시 관광 안내에서 마을 이름을 보고 찾아갔지만, 막상 걸어 보니 안내판보다 집 사이의 간격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낮은 담과 오래된 건물이 남아 있고, 그 사이로 지금도 사람들이 드나든다.
골목 하나를 지나는 데 오래 걸리지는 않는다. 그런데 자꾸 멈추게 됐다. 사진을 찍으려고 찾아온 사람에게는 오래된 집이 풍경이지만, 누군가에게는 현관 앞일 테니까. 창문 가까이 카메라를 들이대지 않고 길에서 보이는 만큼만 봤다. 이곳은 조용한 마을을 전시장처럼 대하지 않을 때 더 편안했다.
마을박물관도 함께 볼 생각이라면 순천시 관광 안내의 운영 시간을 출발 전에 확인하는 편이 좋다. 골목 산책은 그와 별개로 천천히 할 수 있지만, 마을 안에서는 목소리를 낮추는 게 자연스럽다.
아랫장에서는 장보다 사람의 속도를 구경했다
점심 무렵에는 아랫장 쪽으로 갔다. 순천시 안내에 따르면 아랫장은 매달 2일과 7일로 끝나는 날에 장이 선다. 장날에는 물건도 사람도 훨씬 많다. 나는 한적하게 걷고 싶어 장이 크게 서지 않는 날을 골랐다. 문을 연 가게 사이로 지나가며 식사할 곳을 찾으니, 시장이 관광 코스보다 동네의 부엌처럼 느껴졌다.
시장에서 한 끼 먹고 동천 쪽으로 걸었다. 아랫장 근처의 소리에서 조금씩 멀어지는 과정이 좋았다. 강변에서는 목적지를 정해 두지 않고 걷다가 앉을 자리를 찾았다. 가게 앞에서는 발걸음이 빨라지다가 물가에 닿으니 다시 느려졌다. 하루 일정에 빈 시간을 남겨 두길 잘했다 싶었다.
숙소는 다음 날 갈 구도심 쪽으로 잡았다. 순천역에서 너무 멀지 않고, 아침에 웃장으로 움직이기 편한 곳이면 충분했다. 숙소에 짐을 내려놓고 저녁 골목을 한 번 더 걸었는데, 낮에 지나온 길도 불이 켜지니 낯설었다. 순천에서 보낸 첫날은 어딘가를 많이 봤다는 기분보다 오래 걸었다는 감각으로 남았다.
둘째 날 아침은 웃장 국밥과 매산등 골목
다음 날에는 웃장으로 향했다. 순천시 관광 안내에 따르면 웃장은 매달 5일과 10일로 끝나는 날이 장날이다. 붐비는 시장이 부담스럽다면 날짜를 보고 일정을 맞추는 게 좋다. 나는 국밥 골목에서 아침을 먹고 주변을 걸었다. 뜨거운 국물 앞에서는 휴대전화를 꺼낼 생각도 잠깐 잊었다. 식사를 마친 뒤에야 가게들이 하나둘 하루를 시작하는 모습이 보였다.
웃장에서 매산등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오르막이 조금 있어 아침을 먹은 뒤 천천히 걷기에 알맞았다. 이 일대에는 오래된 건물과 지금 사는 집이 가까이 놓여 있다. 특별한 장면을 찾으려고 골목을 계속 꺾기보다, 길이 허락하는 데까지만 올라갔다가 돌아왔다. 주민이 오가는 길에서는 한쪽으로 비켜서는 일이 사진 한 장보다 먼저였다.
사실 순천의 조용한 곳을 찾는다고 해서 하루 종일 아무도 없는 길을 만날 수는 없다. 웃장에는 밥 먹는 사람이 있고 매산등에는 사는 사람이 있다. 그 일상을 방해하지 않으며 잠깐 걷는 것, 내가 좋아하는 로컬 여행은 그 정도 거리에 있다.
문화의거리에서 역으로 돌아가기까지
돌아가는 열차까지 시간이 남아 문화의거리와 그 주변 골목을 걸었다. 순천시가 걷기 여행지로 소개하는 곳이지만, 거리 안에서는 가게와 작업 공간의 문이 열리고 닫히는 평범한 낮이 이어졌다. 어느 가게에 들어갈지 미리 정하지 않고, 걷다 눈에 들어온 곳에서 잠시 쉬었다. 일정을 촘촘히 채웠다면 놓쳤을 시간이다.
이 동선은 두 시장의 장날에 따라 분위기가 크게 달라진다. 장 구경이 목적이라면 날짜를 맞추고, 조용한 골목을 더 오래 걷고 싶다면 장날을 피하는 편이 낫다. 역과 조곡동을 묶고, 구도심에서는 웃장·매산등·문화의거리를 이어 걸으면 이동에 쓰는 시간도 줄어든다. 다만 골목에는 오르막과 좁은 길이 있으니 편한 신발이 좋았다.
순천역으로 돌아갈 때 가장 또렷하게 떠오른 건 유명한 풍경이 아니었다. 조곡동의 낮은 담, 시장에서 잠깐 멈춘 아침, 동천 곁에서 아무 일도 하지 않던 시간이었다. 다음에 순천에 와도 아마 이 길들을 다시 걸을 것 같다. 그때는 어느 골목에서 조금 더 오래 머물지 궁금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