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캠핑카로 작은 동네를 다녀와 보니

얼마 전 중고캠핑카를 몰고 충북 괴산의 청천면에 다녀왔다. 어디를 꼭 봐야겠다는 계획은 없었다. 차를 세워두고 동네를 천천히 걷다가, 배가 고프면 점심을 먹고 돌아올 생각이었다. 집을 나설 때 챙긴 것도 물 한 병과 얇은 겉옷, 충전선 정도였다.
목적지를 작게 잡으니 보이는 것들
청천면에 도착해서는 먼저 차가 다니는 큰길을 따라 걸었다. 가게 앞에서 물건을 내리는 사람, 문을 반쯤 열어둔 수리점, 자전거를 끌고 지나가는 주민이 눈에 들어왔다. 조금 더 들어가니 차 소리가 멀어지고 골목 안쪽에서 그릇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특별한 장면은 아니었는데, 그래서 오래 서 있게 됐다.
걸음은 일부러 느리게 했다. 한 블록을 지나고 또 한 블록을 돌아 나오는 데 20분 남짓 걸렸지만, 같은 길도 방향을 바꾸니 다르게 보였다. 큰길에서는 간판을 먼저 보게 되고 골목에서는 집 앞의 화분이나 말리는 빨래에 눈이 갔다. 남의 생활 공간인 만큼 카메라는 가방에 넣어두었다.
유명한 장소에서는 다음 순서를 생각하느라 지금 있는 곳을 놓칠 때가 있다. 이날은 그런 순서가 없었다. 문이 열린 가게가 있으면 잠깐 들여다보고, 좁은 길에서 주민을 만나면 옆으로 비켜섰다. 별것 없는 듯한 시간이 이 동네에 와서 가장 좋았던 시간이다.
중고캠핑카는 쉬어 갈 자리를 만들어줬다
이 차를 타고 다니면서 달라진 건 이동 거리보다 멈추는 방식이다. 오전에 걷고 돌아와 차 문을 열었을 때, 익숙한 담요와 물병이 그대로 있었다. 잠깐 앉아 신발을 벗고 쉬었다. 차 안에서 대단한 요리를 하거나 밤을 보내지 않아도, 바깥에서 보낸 시간을 한 번 끊어주는 작은 방처럼 느껴졌다.
물론 오래된 차답게 손이 가는 부분도 있다. 문을 닫을 때는 한 번 더 확인하게 되고, 짐을 아무렇게나 쌓으면 달리는 동안 덜컹거린다. 그래서 출발 전에는 수납장 걸쇠를 살피고 바닥에 둔 물건을 치운다. 여행지에 닿아서는 차가 설 수 있는 곳인지 표시를 보고 주차한 뒤 걸어 다녔다. 골목 입구를 막거나 주민의 집 앞을 차지하고 싶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중고캠핑카가 있으면 어디서든 오래 머물 수 있을 줄 알았다. 막상 다녀보니 차보다 중요한 건 멈출 곳을 고르는 감각이었다. 그날도 차 안에 있는 시간은 길지 않았다. 동네에 도착해서 쉬고, 걷다가 돌아와 물을 마시는 정도면 충분했다.
점심 뒤에 걸은 골목이 더 기억난다
점심은 걷다 눈에 들어온 식당에서 먹었다. 메뉴를 오래 고르지 않고 따뜻한 한 끼를 먹은 뒤 다시 밖으로 나왔다. 오전보다 거리에 사람이 조금 늘어 있었다. 가게 앞에서 짧게 인사를 나누는 목소리와 그릇을 거두는 소리가 골목으로 흘러나왔다.
식사를 마치고 바로 운전대를 잡았으면 그 장면은 못 봤을 것이다. 차는 그대로 두고 큰길 반대쪽으로 천천히 걸었다. 몇 분 지나지 않아 처음 지나온 길과 이어졌고, 아까는 못 본 좁은 길도 나타났다. 길을 잘못 든 줄 알고 멈췄다가, 익숙한 가게 간판을 보고 웃었다. 작은 동네에서는 이런 식으로 길이 다시 만난다.
이날 사진은 몇 장 남지 않았다. 찍으려고 멈춘 순간보다 그냥 걸은 시간이 더 길었기 때문이다. 돌아와 사진을 보니 어디였는지 설명하기 어려운 담벼락과 길모퉁이가 있었다. 그래도 그 앞에서 어떤 소리가 났는지는 기억났다.
돌아오는 길은 조금 덜 서둘렀다
해가 낮아지기 전에 차로 돌아와 바닥의 흙을 털고 물병을 제자리에 꽂았다. 반나절 동안 걸은 거리는 길지 않았다. 차를 타고 멀리 왔으니 더 둘러봐야 한다는 생각도 잠깐 들었다. 하지만 마음에 남은 건 무언가를 많이 본 날이 아니라, 한 골목을 두 번 지나며 조금 다르게 본 시간이었다.
중고캠핑카 덕분에 갈 수 없는 곳을 간 건 아니다. 버스나 승용차로도 이 동네에 올 수 있었을 것이다. 내게 이 차가 좋은 이유는 돌아갈 시간을 재촉하지 않고 잠깐 앉아 있을 자리를 준다는 데 있다. 다음에도 목적지는 크게 잡지 않으려 한다. 익숙하지 않은 동네에서 걷고, 쉬고, 다시 걷는 하루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