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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여행에서 골목으로 들어가 봤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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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여행에서 골목으로 들어가 봤더니

파리에서 걷던 날, 다뉴브역 계단을 올라오자마자 발걸음이 조금 느려졌다. 큰 명소 앞에서 지도를 펴고 순서를 따지던 때와는 달랐다. 출근하는 사람과 장을 보고 돌아오는 사람이 지나가는 길에서, 나도 잠깐 이 동네의 하루에 섞인 기분이었다. 그날은 19구의 라 무자이아 골목에서 시작해 뷔트 쇼몽 공원 가장자리를 지나 뷔트 베르제르까지 걸었다.

파리 여행이라고 하면 화려한 건물부터 떠올리기 쉽다. 나도 그런 풍경을 좋아한다. 다만 사람이 빽빽한 곳을 하루 종일 걷고 나면, 여행지의 얼굴보다 줄을 서 있던 시간이 더 선명하게 남곤 한다. 이번에는 목적지를 적게 잡고 골목에서 오래 머물렀다. 돌아와서도 생각나는 건 유명한 장면보다 어느 집 앞에 놓인 화분과 조용히 닫히던 대문 소리다.

다뉴브역에서 시작한 작은 골목 산책

라 무자이아는 파리 19구에 있다. 지하철 7bis호선 다뉴브역에서 나와 무자이아 거리 쪽으로 걸으면 낮은 집들이 이어지는 길을 만난다. 파리 관광청 안내에는 이 일대가 옛 석고 채석장 터에 들어선 노동자들의 집에서 시작됐다고 적혀 있다. 그런 이야기를 알고 보니 건물의 높이와 골목의 폭이 더 눈에 들어왔다. 높은 아파트 사이에 관광용으로 꾸며 놓은 구역이 아니라, 지금도 누군가 살고 있는 동네였다.

거리에서 옆으로 난 좁은 길을 하나씩 들여다보았다. 입구는 비슷해 보여도 안쪽의 표정은 조금씩 달랐다. 담장 위로 가지가 넘어온 집이 있고, 작은 계단 앞에 화분을 모아 둔 집도 있었다. 차가 다니기 어려울 만큼 폭이 좁은 길에서는 발소리까지 크게 들렸다. 사진을 찍으려 휴대전화를 들었다가 내렸다. 창문과 현관이 바로 길을 향한 주거지라서, 사람의 생활을 배경처럼 소비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곳을 걸을 때는 한 지점만 찍고 되돌아가기보다 무자이아 거리를 중심에 두고 양옆 골목을 천천히 오가는 편이 좋았다. 길이 복잡하게 뻗어 있어 처음에는 같은 곳을 다시 지난 줄 알았다. 그래도 길을 잃었다는 느낌보다는 집과 나무의 작은 차이를 발견하는 재미가 컸다. 솔직히 강한 볼거리를 기대하면 심심할 수도 있다. 그 심심함 덕분에 오래 걸을 수 있는 동네이기도 했다.

뷔트 쇼몽 옆을 지나며 속도를 늦췄다

라 무자이아에서 서쪽으로 걸음을 옮기면 뷔트 쇼몽 공원 쪽으로 이어진다. 공원 자체는 동네 사람도 많이 찾는 곳이라 늘 한적하다고 말하기 어렵다. 내가 좋았던 시간은 공원에 닿기 전후였다. 골목을 빠져나와 차 소리가 다시 들리고, 공원 담장 너머로 나무가 보이는 짧은 구간. 조용한 주택가와 넓은 도시 풍경이 몇 걸음 사이에서 바뀌었다.

공원에서는 무리해서 곳곳을 둘러보지 않았다. 앉을 자리가 보이면 잠시 쉬고, 다시 걸을 마음이 들 때 일어났다. 파리 여행 일정표에는 이런 시간이 잘 들어가지 않는다. 그런데 낯선 도시에서 쉬어 가는 방식까지 평소처럼 해보니 그날의 기억이 훨씬 또렷했다. 물 한 모금을 마시며 지나가는 사람을 바라보는 일도 여행의 한 장면이었다.

두 동네를 한 번에 걷는다면 편한 신발이 필요하다. 마지막에 오르막과 계단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나는 중간에 빵집에 들러 간단히 먹을 것을 샀지만, 어느 가게가 열어 있을지 정해 두지는 않았다. 골목 구경이 목적이라면 식사 시간까지 촘촘히 묶지 않는 편이 마음이 편했다. 대신 큰길로 나왔을 때 잠깐 쉬어 갈 곳을 찾았다.

뤼 마냉 계단 위에서 만난 또 다른 파리

뷔트 베르제르로 갈 때는 뤼 마냉 17번지 부근의 계단을 기준으로 삼았다. 파리 관광청이 소개하는 산책 동선에도 나오는 길이다. 계단을 오르는 동안에는 평지에서 걸을 때보다 숨이 조금 찼다. 위에 도착해 돌아보니 거리가 한층 아래로 내려가 있었다. 몇 분 전까지 자동차 소리를 따라 걷다가 갑자기 작은 언덕 동네에 올라선 셈이다.

뷔트 베르제르는 19구의 작은 주거지다. 조르주 라르드누아 거리와 주변 길을 천천히 걷자 낮은 집과 식물이 번갈아 나타났다. 언덕의 가장자리에서는 멀리 몽마르트르 쪽 풍경도 보였다. 높은 곳에 올랐으니 사진부터 찍어야겠다는 마음은 금방 사라졌다. 난간 근처에 잠시 서서 바람을 쐬는 쪽이 이 장소와 더 잘 맞았다.

여기도 주민들의 생활 공간이다. 좁은 길을 여럿이 막아서거나 집 안쪽을 향해 렌즈를 들이대면 이 동네가 주는 고요함부터 깨질 것 같았다. 잠깐 머물고, 지나갈 자리를 남겨 두고, 다시 걸었다. 유명 전망대처럼 넓은 공간은 아니지만 도시가 멀리 보이는 순간과 바로 옆집의 일상이 한 화면에 들어오는 점이 오래 남았다.

많이 보지 않은 하루가 더 길게 기억났다

이 산책의 시작은 다뉴브역, 끝은 뷔트 베르제르에서 내려와 콜로넬 파비앵역 쪽이었다. 지하철역 이름을 두 개만 정해 두고 그 사이의 길은 조금 느슨하게 걸었다. 오르막이 부담스럽거나 비가 오는 날이라면 뷔트 베르제르를 빼고 라 무자이아 주변에서 시간을 더 보내도 좋겠다. 길의 재미가 집과 나무 사이에 있어서, 급하게 걸으면 금세 지나쳐 버린다.

물론 이 동선이 언제나 텅 비어 있는 것은 아니다. 공원 주변은 시간에 따라 북적일 수 있고, 좁은 골목에서 다른 산책객과 마주치기도 한다. 내가 걸은 때에는 큰 명소에서 느끼던 밀림이 없었다. 사람 수를 약속할 수는 없어도, 관광객의 속도에 맞춰 움직이지 않아도 된다는 점은 분명했다.

그날 파리에서 본 것은 새로운 명소라기보다 낯선 도시의 평범한 오후였다. 누군가의 집 앞을 조용히 지나고, 계단에서 숨을 고르고, 멀리 보이는 지붕을 잠깐 바라보았다. 다음에 파리 여행을 가더라도 이런 동네 한 곳에는 하루의 빈칸을 남겨 두고 싶다. 오래 기억나는 순간은 대개 그 빈칸에서 생겼다.

파리 여행에서 골목으로 들어가 봤더니 -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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