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먼플레이스
제너럴리스트의 色다른 이야기

주말여행지 찾다가 배다리 골목을 천천히 걸었다

Last Updated :
주말여행지 찾다가 배다리 골목을 천천히 걸었다

지난 주말 동인천역에서 내려 배다리 쪽으로 걸었다. 멀리 가기엔 조금 지쳤고, 그렇다고 집에만 있기엔 아쉬운 날이었다. 바다가 보이는 인천 대신 책방과 오래된 집이 남아 있는 동네를 골랐다. 역 앞의 차 소리를 지나 골목에 들어서니 걸음이 저절로 느려졌다.

동인천역에서 배다리까지

배다리 헌책방 골목은 동인천역에서 걸어서 10분 남짓이다. 처음부터 작은 가게를 찾아 헤매기보다 ‘배다리 헌책방 골목’을 목적지로 잡고 가면 길이 편하다. 역 주변에는 차가 많고 횡단보도도 몇 번 건너야 한다. 조용한 산책은 골목에 들어간 뒤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느긋해진다.

이름만 들었을 때는 물가에 놓인 다리를 떠올렸다. 지금은 그런 풍경이 보이지 않는다. 인천광역시의 지역유산 안내에는 예전 이 일대의 낮은 땅으로 물때에 맞춰 작은 배가 드나들었고, 그 주변에 시장이 형성됐다고 적혀 있다. 그 이야기를 알고 걸으니 평범한 길 이름에도 오래된 동네의 시간이 붙어 있는 것 같았다.

배다리는 아주 깊숙이 숨어 있는 장소는 아니다. 헌책방 골목은 알려진 여행지이고, 주말에는 사진을 찍는 사람도 만날 수 있다. 내가 좋았던 건 골목 하나를 벗어났을 때였다. 큰길의 소음이 조금 멀어지고, 빨래가 널린 창과 낮은 담장이 이어졌다. 유명한 장면을 찾아온 사람들 사이에서도 동네의 평소 표정이 남아 있었다.

헌책방에서는 한 권만 오래 봤다

헌책방 앞에서는 자꾸 속도를 늦추게 된다. 새 책처럼 반듯하게 진열된 책도 있지만, 여러 사람이 지나간 흔적이 책등에 남은 책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책 제목을 훑다가 낯익은 작가 이름 앞에서 멈췄다. 살 책을 정하고 들어간 건 아니어서 한참을 둘러봤는데, 그 시간이 이번 걸음에서 가장 느렸다.

인천광역시는 배다리 헌책방 골목을 지역의 일상을 보여 주는 장소로 소개한다. 실제로 걸어 보니 책방만 따로 떼어 보는 것보다 주변 문구점과 작은 가게, 오가는 주민을 함께 보는 편이 좋았다. 관광을 위해 새로 꾸민 거리라기보다 지금도 쓰이는 동네 길에 책방이 남아 있는 느낌이었다.

책방마다 문을 여는 날과 시간이 다르다. 내가 갔을 때도 모든 문이 열려 있지는 않았다. 특정 책방을 꼭 들를 생각이라면 출발 전에 영업 여부를 확인하는 게 좋겠다. 반대로 열린 곳에 잠깐 들어가 책 한 권을 고르는 정도라면, 예상과 다른 문 앞에 서게 되는 일도 크게 아쉽지 않다.

오래된 가게를 구경할 때는 사진보다 먼저 책을 보는 편이 마음이 편했다. 좁은 통로에서는 다른 손님이 지나갈 자리를 비켜 주고, 마음에 드는 책이 있으면 값을 묻는다. 조용한 장소를 좋아한다고 하면서 그곳을 내 촬영 배경처럼 쓰고 싶지는 않았다.

창영동 쪽 골목에서는 생활 소리가 들렸다

헌책방 거리에서 조금 더 걸어 창영동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여기부터는 목적지를 하나씩 찍는 산책보다 갈림길에서 천천히 방향을 고르는 산책에 가까웠다. 오래된 벽 옆에 새로 칠한 대문이 있고, 작은 계단 끝에는 다른 집의 현관이 보였다. 특별한 시설이 없어도 눈이 자꾸 머무는 길이었다.

한 골목에서는 집 안에서 들리는 그릇 소리가 길까지 흘러나왔다. 조금 더 가니 차 한 대가 지나갈 만큼의 폭을 두고 사람들이 서로 비켜 걸었다. 사람이 적다는 건 아무도 없는 풍경이 아니라, 동네가 자기 속도로 움직이는 모습을 볼 여유가 있다는 뜻인 듯했다.

주택가에 들어가면 발걸음과 카메라를 함께 조심하게 된다. 문이 열린 집 안을 들여다보지 않고, 누군가의 창 앞에 오래 서 있지 않았다. 학교 주변도 지나게 되는데, 이 길에서는 건물을 자세히 촬영하기보다 그대로 걸어가는 편이 자연스러웠다. 여행자에게는 잠깐 머무는 장소지만 누군가에게는 매일 오가는 길이다.

배다리의 모든 골목이 한적한 건 아니다. 차가 다니는 길도 있고, 행사나 장이 열리는 날에는 분위기가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주말 오전에 도착해 헌책방 거리를 걷고, 사람이 모이기 시작하면 옆 골목으로 발길을 돌리는 흐름이 편했다. 조용함을 찾아왔어도 동네의 활기까지 피할 필요는 없었다.

반나절만 비워도 충분한 주말여행지

이 길에 하루 일정을 꽉 채울 필요는 없었다. 동인천역에서 배다리로 걸어가 헌책방을 둘러보고, 창영동 골목을 천천히 걷다가 다시 역 쪽으로 돌아왔다. 책방에서 오래 머무는 시간을 포함해 두세 시간 정도를 비우니 서두르지 않을 수 있었다. 걷는 거리는 길 선택에 따라 달라지니 편한 신발 하나면 충분하다.

식사는 골목 안의 한 가게를 미리 정해 두기보다 걷다가 마음에 드는 곳을 고르는 편이 이 동네와 잘 맞았다. 다만 작은 가게는 쉬는 날이 제각각이다. 먹고 싶은 곳이 뚜렷하다면 확인하고 출발하는 게 낫다. 화장실도 언제든 눈앞에 있는 코스는 아니어서 역에 있을 때 미리 다녀오면 발걸음이 가볍다.

돌아오는 길에는 손에 든 책 한 권이 여행 기념품이 됐다. 배다리에서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 장면은 멋진 벽화나 유명한 간판이 아니었다. 책방 문을 나서자마자 들리던 생활 소리, 그리고 그 소리를 방해하지 않고 지나갈 수 있었던 짧은 골목이었다. 주말여행지는 꼭 먼 곳일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그 길에서 다시 했다.

주말여행지 찾다가 배다리 골목을 천천히 걸었다 - 요약
주말여행지 찾다가 배다리 골목을 천천히 걸었다 | 커먼플레이스 : https://commonplace.kr/10622
제너럴리스트의 色다른 이야기
커먼플레이스 © commonplace.kr All rights reserved. powered by modoo.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