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항공 타고 제주 동네 골목만 걸어봤더니 남은 것들

비행기표보다 먼저 골목을 골랐다
얼마 전 제주에 다녀왔는데, 이번에는 유명한 해변 이름을 먼저 적지 않았다. 제주항공 왕복 항공권을 끊어두고 지도에서 큰 관광지 표시를 하나씩 피해 갔다. 렌터카도 하루만 빌리고, 나머지는 버스와 도보로 움직였다. 사실 제주 여행은 비행기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마음이 급해지기 쉽다. 공항에서 협재까지, 성산까지, 우도까지 계산하다 보면 어느새 여행이 체크리스트처럼 변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 다르게 해보고 싶었다.
제주항공을 이용한 이유는 단순했다. 시간대가 다양했고, 김포에서 제주까지 실제 비행 시간은 1시간 남짓이라 짧은 일정에 맞추기 편했다. 수하물을 많이 가져가지 않고 20인치 캐리어 하나와 작은 가방만 챙기니 이동도 가벼웠다. 항공권 가격은 날짜마다 차이가 크지만, 평일 오전이나 늦은 저녁 편은 비교적 부담이 덜했다. 덕분에 숙소도 공항에서 멀지 않은 오래된 동네 쪽으로 잡을 수 있었다.
공항 가까운 동네가 의외로 오래 남았다
제주공항에 도착하면 대부분 바로 차를 빌리거나 버스를 타고 멀리 떠난다. 나도 예전에는 그랬다. 근데 이번에는 공항 근처 동네를 먼저 걸었다. 용담, 삼도, 건입 쪽 골목은 관광지라고 부르기엔 조용하고, 생활감이 더 앞에 서 있는 동네였다. 낮은 담장 너머로 귤나무가 보이고, 오래된 슈퍼 앞에는 플라스틱 의자가 놓여 있었다. 바다까지 나가면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소리가 간간이 들렸다.
특히 용담 해안도로에서 안쪽 골목으로 몇 분만 들어가도 분위기가 달라진다. 바다를 보러 온 사람들은 해안도로에 머물고, 골목 안쪽은 주민들의 속도에 가깝다. 오전 10시쯤 걸었는데 카페보다 세탁소와 식당 문이 먼저 열려 있었다. 사진을 크게 찍을 만한 장면은 많지 않았지만, 이상하게 발걸음이 느려졌다. 여행지에서 너무 잘 꾸며진 풍경보다 이런 흐릿한 일상 쪽이 더 편할 때가 있다.
버스를 타면 보이는 제주가 조금 다르다
제주항공으로 내려온 뒤 바로 렌터카를 타면 편하다. 그건 맞다. 하지만 버스를 하루쯤 섞으면 제주가 조금 다르게 보인다. 이번에는 공항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동문시장 근처까지 갔다가, 다시 작은 길을 따라 산지천 쪽으로 걸었다. 버스 안에는 여행객보다 장을 보고 돌아가는 분들이 많았다. 안내 방송이 지나가고, 창밖으로 낮은 상가와 오래된 간판이 천천히 흘렀다.
동문시장은 유명하지만, 시장 자체보다 주변 골목이 더 좋았다. 큰 길에서 한 블록만 벗어나도 작은 식당과 작업실, 오래된 여관 건물이 이어진다. 점심은 사람이 몰리는 가게 대신 메뉴가 세 가지뿐인 백반집에 들어갔다. 가격은 관광지 중심 식당보다 낮았고, 반찬은 평범했지만 손이 자주 갔다. 솔직히 이런 한 끼가 여행의 분위기를 오래 잡아준다. 특별한 맛집이라는 말보다, 그 동네에서 자연스럽게 먹은 밥이라는 느낌이 남았다.
제주항공 짧은 일정에 맞는 느린 동선
제주항공은 항공편 선택지가 많아서 1박 2일이나 2박 3일처럼 짧은 여행을 짜기 좋다. 다만 짧은 일정일수록 동선을 욕심내면 금방 지친다. 내가 잡은 기준은 하루에 큰 이동을 한 번만 하는 것이었다. 첫날은 공항 근처와 제주시 원도심, 둘째 날은 서쪽 작은 마을 하나. 이렇게 나누니 이동 시간이 줄고 걷는 시간이 늘었다.
서쪽에서는 애월의 유명 카페 거리를 피해서 조금 안쪽 마을길을 걸었다.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15분쯤 들어가니 밭담과 낮은 집들이 이어졌다. 바람은 세고, 길은 조용했다. 사람이 아주 없지는 않았지만 단체 관광객이 몰리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중간에 작은 무인 매점이 있어 물을 샀고, 근처 정자에서 한참 쉬었다. 이런 장소는 지도 앱 별점으로 찾기 어렵다. 오히려 버스 정류장 이름, 초등학교, 마을회관 같은 표시를 보고 걷다 보면 만나는 경우가 많았다.
사람 적은 제주를 찾을 때 본 기준
- 공항에서 30분 안팎으로 닿지만 대형 주차장이 없는 동네
- 해변 바로 앞보다 한두 블록 안쪽 골목
- 카페 이름보다 마을회관, 포구, 작은 시장을 기준으로 잡은 길
- 오전 9시 전후나 오후 4시 이후처럼 단체 이동이 적은 시간
이 기준이 항상 맞는 건 아니다. 그래도 유명 장소 옆의 조용한 길을 찾는 데는 꽤 도움이 됐다. 제주에서는 1km만 떨어져도 공기가 달라지는 순간이 있다. 같은 바다라도 누가 얼마나 머무는지에 따라 완전히 다른 여행이 된다.
싼 항공권보다 더 중요했던 것
제주항공을 타고 다녀온 이번 여행에서 좋았던 건 항공사 자체보다 일정의 가벼움이었다. 저비용항공사를 이용하면 좌석 간격이나 서비스에서 아쉬운 부분이 있을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비행 안에서 뭔가를 기대하기보다, 도착 후 몸이 덜 피곤한 시간대를 고르는 쪽에 더 신경 썼다. 너무 이른 첫 비행은 하루를 길게 만들어주지만, 잠이 부족하면 조용한 골목도 귀찮게 느껴진다.
수하물도 줄이는 편이 낫다. 제주 골목은 은근히 경사가 있고, 버스와 도보를 섞으면 캐리어가 금방 짐이 된다. 작은 배낭 하나면 가장 좋고, 캐리어가 필요하다면 숙소에 먼저 맡기는 동선이 편했다. 또 날씨가 자주 바뀌니 얇은 바람막이는 꼭 챙기는 편이 좋다. 바람이 센 날에는 체감온도가 생각보다 내려간다.
이번 제주에서 가장 오래 기억나는 장면은 유명한 포토존이 아니었다. 공항으로 돌아가기 전, 동네 빵집 앞 벤치에 앉아 비행기 소리를 들으며 빵 하나를 먹던 시간이었다. 여행이 꼭 멀리 들어가야 깊어지는 건 아니구나 싶었다. 제주항공으로 짧게 다녀와도, 목적지를 조금 덜 채우면 제주가 더 천천히 보인다. 나는 아마 다음에도 큰 이름보다 작은 정류장 이름을 먼저 볼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