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여행에서 유명한 곳을 비껴 걸어봤더니 남은 장면들

얼마 전 LA를 걸었는데, 이상하게도 기억에 오래 남은 건 할리우드 사인도 산타모니카 피어도 아니었다. 편의점 앞에서 커피를 들고 서 있던 사람들, 낮은 담장 너머로 보이던 레몬나무, 골목 끝에서 갑자기 열리던 작은 계단 같은 것들이 더 또렷했다. LA여행은 차로 큰 점들을 찍고 다니면 화려하지만, 동네 안쪽으로 한두 블록만 들어가면 생각보다 조용하고 생활감이 진하다.
나는 이번에 일부러 유명한 관광지보다 사람들이 조금 덜 몰리는 동선을 골랐다. 하루에 3곳 이상 욕심내지 않았고, 점심 전후로 한 동네에 머물렀다. 솔직히 LA는 넓다. 지도상으로 가까워 보여도 차로 25분, 대중교통으로는 50분이 걸리는 일이 흔하다. 그래서 동네 하나를 천천히 걷는 방식이 오히려 덜 지치고, 더 많이 본 느낌이 났다.
리틀도쿄에서 아츠 디스트릭트까지, 낮은 속도의 다운타운
다운타운 LA라고 하면 높은 빌딩과 차가운 도로를 떠올리기 쉬운데, 리틀도쿄와 아츠 디스트릭트 사이를 걸으면 분위기가 조금 다르다. Little Tokyo/Arts District 역에서 내려 1번가 쪽으로 나오면, 큰길의 소음 사이로 오래된 가게 간판과 작은 식당들이 섞여 있다. 관광객도 있지만 할리우드 대로처럼 밀려다니는 느낌은 덜했다.
내가 좋았던 시간은 오전 10시에서 11시 사이였다. 점심 줄이 길어지기 전이라 골목이 느슨했고, 상점들이 하나둘 문을 여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리틀도쿄 안쪽에서 차를 한 잔 마시고, 천천히 아츠 디스트릭트 쪽으로 걸었다. 벽화가 유명하긴 하지만, 사실 벽화보다 인상 깊었던 건 창고 건물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과 오래된 벽돌의 색이었다.
걸어본 동선
- Little Tokyo/Arts District 역에서 시작하면 차 없이도 접근이 편하다.
- 1번가와 3번가 사이를 크게 돌아보면 1시간 30분 정도가 적당했다.
- 주말 오후보다는 평일 오전이 훨씬 한적했다.
근데 이 동네는 밤보다 낮이 편했다. 아츠 디스트릭트 일부 구간은 블록마다 분위기가 달라서, 처음 가는 사람이라면 너무 늦은 시간보다 해가 있을 때 걷는 편이 낫다. LA여행에서 다운타운을 넣고 싶지만 번잡한 중심부가 부담스럽다면 이쪽이 적당한 타협점이었다.
실버레이크 계단길, 관광지가 아닌 산책에 가까운 시간
실버레이크는 이름만 들으면 감각적인 카페와 빈티지 숍이 먼저 떠오르지만, 나는 언덕 주택가 사이에 숨어 있는 계단들이 더 좋았다. 유명한 Micheltorena Stairs는 사진 찍는 사람이 종종 있어서 아주 조용하다고 말하긴 어렵다. 대신 그 주변 골목을 조금 비켜 걸으면 훨씬 차분하다.
계단은 짧게는 50단 안팎, 길게는 숨이 조금 차는 정도로 이어진다. 올라가다 보면 집 앞 화분, 낡은 우편함, 차고 문에 붙은 작은 스티커 같은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LA가 영화 속 도시가 아니라 누군가의 평일이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사실 이런 장면은 사진으로 크게 남기기보다, 그냥 걸으면서 천천히 보는 게 더 잘 맞았다.
실버레이크에서 느낀 점
- 해 질 무렵은 빛이 예쁘지만 주택가라 조용히 걷는 태도가 필요하다.
- 운동화가 편하다. 언덕이 생각보다 가파르다.
- 카페만 찍고 이동하기보다 Silver Lake Meadows 주변까지 묶으면 반나절이 자연스럽다.
솔직히 실버레이크는 유명해진 동네라 완전히 숨은 장소라고 하긴 어렵다. 그래도 중심 상권에서 한 발만 벗어나면 여행자의 속도가 아니라 동네 사람의 속도로 걸을 수 있다. 그 차이가 꽤 크다.
하이랜드파크, 오래된 간판과 생활 소리가 남아 있는 곳
하이랜드파크는 LA여행을 여러 번 다녀온 사람에게 더 잘 맞는 동네라고 느꼈다. 처음 LA에 간다면 바다나 미술관이 더 강하게 다가올 수 있지만, 두 번째나 세 번째 여행이라면 이 동네의 낮은 온도가 반갑다. York Boulevard와 Figueroa Street 주변에는 오래된 극장 간판, 작은 서점, 타코 가게, 레코드숍이 느슨하게 이어진다.
나는 점심을 먹고 일부러 20분쯤 목적 없이 걸었다. 길 하나를 건널 때마다 분위기가 미묘하게 바뀌었다. 새로 생긴 가게와 오래 버틴 가게가 나란히 있는 모습도 LA답다. 멋을 낸 동네이면서도, 아직은 빨래방과 자동차 정비소의 생활 소리가 같이 들린다.
여기서는 뭔가를 많이 사거나 유명한 메뉴를 찾아다니기보다, 한 가게에 오래 앉아 있는 편이 좋았다. 커피 한 잔을 두고 창밖을 보면 사람들이 차에서 내려 빵을 사고, 강아지를 데리고 지나가고, 학교가 끝난 아이들이 가족과 걷는다. 여행인데 이상하게 남의 동네 오후를 잠깐 빌린 기분이 들었다.
LA에서 한적함을 찾을 때 현실적으로 필요한 것
LA는 넓고, 교통은 변수가 많다. 그래서 한적한 장소를 찾겠다고 하루 동선을 너무 촘촘히 짜면 금방 지친다. 내가 직접 다녀보니 오전에는 걸을 동네 하나, 오후에는 쉬어갈 장소 하나 정도가 가장 편했다. 예를 들면 리틀도쿄와 아츠 디스트릭트를 묶고, 다음 날 실버레이크와 에코파크를 묶는 식이다.
대중교통도 생각보다 쓸 만한 구간이 있다. 리틀도쿄는 지하철 접근이 편하고, 다운타운 안쪽은 도보 이동도 가능하다. 반면 실버레이크나 하이랜드파크는 목적지에 따라 버스와 차량 호출을 섞는 편이 수월했다. 렌터카가 있으면 편하지만, 주차 스트레스가 따라온다. 특히 아츠 디스트릭트나 인기 카페 주변은 주차 자리를 찾는 시간이 산책 시간을 잡아먹기도 했다.
- 한 동네에 최소 2시간은 남겨두면 급하게 찍고 나오는 느낌이 줄어든다.
- 오전 9시부터 11시 사이가 사진보다 산책에 좋았다.
- 주택가에서는 큰 소리로 통화하거나 집 안쪽을 촬영하지 않는 게 기본이다.
- LA의 햇빛은 강하다. 물과 얇은 겉옷을 같이 챙기는 편이 낫다.
유명하지 않아서 더 오래 남는 LA여행
이번 LA여행에서 가장 좋았던 순간은 체크리스트를 지웠을 때가 아니었다. 리틀도쿄의 작은 골목에서 바람이 지나가던 시간, 실버레이크 계단 위에서 잠깐 숨을 고르던 순간, 하이랜드파크 가게 창에 비친 오후의 색이 더 오래 남았다. 유명한 장소는 분명 이유가 있지만, 사람 적은 로컬 동네에는 다른 방식의 밀도가 있다.
LA를 처음 간다면 대표적인 장소를 아예 빼기는 어렵다. 나도 그 마음을 안다. 다만 하루쯤은 유명한 이름을 내려놓고, 지도에서 굵게 표시되지 않은 동네를 걸어도 괜찮다. 그때 LA는 조금 덜 화려하고, 조금 더 사람 사는 곳처럼 다가온다. 나는 그런 LA가 더 편했고, 다음에 가도 또 골목을 먼저 걷게 될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