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여행지, 유명한 바다를 지나 골목으로 들어가 봤더니

얼마 전 강원도 동해안을 따라 내려가다가, 이상하게 바다보다 골목 쪽으로 발이 먼저 갔습니다. 주차장 가득한 해변은 그냥 지나치고, 버스 정류장 옆 슈퍼와 낮은 담장, 빨래가 마르는 골목을 따라 걷다 보니 제가 좋아하는 강원도여행지는 따로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강원도는 워낙 이름난 곳이 많습니다. 강릉 경포, 속초 중앙시장, 양양 서피비치처럼 늘 사람이 모이는 장소도 좋지만, 조금만 옆으로 비켜서면 여행보다 생활에 가까운 풍경이 남아 있습니다. 저는 그런 곳에서 오래 걷고, 한참 앉아 있고, 괜히 동네 빵집에서 봉투 하나를 들고 나오는 시간이 더 오래 기억납니다.
강릉 명주동, 바다 없는 강릉이 더 오래 남았다
강릉에 가면 대부분 바다부터 떠올리는데, 저는 명주동 골목을 먼저 걷는 편입니다. 강릉시 관광 안내에도 명주동 골목은 옛 행정 중심지였고, 시청 이전 뒤 한동안 조용해졌다가 문화 공간이 들어오며 다시 색을 찾은 동네로 소개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걸어보면 그 설명이 과장처럼 느껴지지 않아요.
명주예술마당에서 골목 안쪽으로 천천히 들어가면 낡은 목조 주택, 작은 카페, 오래된 담벼락 화단이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관광지처럼 한 지점에서 사진을 찍고 끝나는 곳은 아닙니다. 전체를 빠르게 보면 20분 남짓이면 충분하지만, 저는 두 번 걸었고 중간에 커피를 마시며 거의 2시간을 보냈습니다.
명주동에서 좋았던 걷는 방식
- 강릉역이나 중앙시장 일정과 붙이면 이동 부담이 적습니다.
- 점심 직후보다 오전 늦게 가면 골목 소리가 더 차분합니다.
- 카페만 찍고 나오기보다 명주예술마당 주변 골목을 한 바퀴 도는 쪽이 좋습니다.
솔직히 강릉까지 가서 바다를 안 본다는 게 조금 아쉽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명주동은 강릉 사람들이 살던 시간의 층이 남아 있어서, 바다 앞 카페보다 훨씬 덜 들뜨고 편안했습니다.
고성 왕곡마을, 오래된 집들이 크게 말하지 않는 곳
고성 왕곡마을은 생각보다 조용했습니다. 고성이라는 이름 때문에 바다 쪽 여행을 예상했는데, 왕곡마을은 7번 국도에서 안쪽으로 들어간 분지형 마을입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는 19세기 전후의 기와집과 초가집 50여 채를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고 설명되어 있더군요.
제가 갔을 때 가장 좋았던 건 소리였습니다. 차 소리가 멀어지고, 바람이 지붕 끝을 스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화려한 체험 시설이 앞에 나서는 곳이 아니라서 처음엔 조금 밋밋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근데 10분쯤 걷다 보면 집의 방향, 낮은 담장, 골목의 너비 같은 것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이곳은 생활 공간이기도 해서 조용히 걷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사진을 찍더라도 대문 안쪽을 들여다보지 않고, 큰 소리로 통화하지 않는 정도의 거리감이 잘 어울립니다. 그런 조심스러움 때문에 오히려 여행의 밀도가 생깁니다.
영월 요선암, 물이 만든 곡선을 보러 간 오후
영월 쪽에서는 요선암 돌개구멍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한국관광공사 여행 정보에 따르면 주차 후 낮은 산자락을 끼고 약 200m 정도 걸어 들어가면 미륵암이 나오고, 그 아래 강가에서 너럭바위와 돌개구멍을 볼 수 있습니다. 길이 길지 않아서 큰 준비 없이도 다녀오기 좋았습니다.
다만 이곳은 계절과 날씨에 따라 인상이 꽤 달라질 것 같습니다. 비가 온 뒤에는 물소리가 커지고 바위가 미끄러울 수 있고, 건조한 날에는 암반의 결이 더 또렷하게 보입니다. 저는 물이 많지 않은 날에 갔는데, 그래서인지 둥글게 파인 바위의 선이 더 선명했습니다.
- 운동화는 꼭 신는 편이 낫습니다.
- 강가 암반은 사진보다 실제로 더 미끄럽게 느껴집니다.
- 요선정까지 같이 오르면 짧은 산책 코스로 균형이 좋습니다.
영월은 강원도여행지 중에서도 속도가 느린 편입니다. 큰 카페나 전망대보다 계곡, 정자, 작은 읍내 식당이 하루의 리듬을 만들어 줍니다. 저는 그런 느린 조합이 꽤 마음에 들었습니다.
정선 나전역, 오래 머물지 않아도 좋은 간이역
정선 나전역은 일부러 큰 기대를 내려놓고 가는 편이 좋습니다. 예전 석탄 산업의 흔적이 남은 간이역이고, 1960년대 분위기의 역사로 복원되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최근에는 주변 공간을 휴식 거점으로 손보는 움직임도 있어서, 방문 전 현장 상황은 한 번 확인하는 게 좋겠습니다.
제가 좋았던 건 역 자체보다 역 앞의 느슨한 공기였습니다. 기차 시간이 촘촘하지 않은 곳 특유의 빈 시간이 있어요. 사진을 몇 장 찍고 바로 떠나는 사람도 있었지만, 저는 플랫폼 주변에 앉아 있다가 정선 쪽 산빛이 조금씩 바뀌는 걸 봤습니다.
나전역 하나만 보고 멀리 이동하면 아쉬울 수 있습니다. 정선 읍내, 아우라지, 북평면 작은 식당과 묶으면 하루가 자연스럽습니다. 유명 관광지만 이어 붙인 일정과 달리, 중간중간 비는 시간이 생기는데 저는 그 빈칸이 좋았습니다.
사람 적은 강원도를 고르는 작은 기준
제가 다녀보니 한적한 강원도여행지를 고를 때는 이름보다 위치를 먼저 보게 됩니다. 바다 바로 앞, 대형 주차장 옆, 방송에 자주 나온 시장 안쪽은 아무래도 사람이 몰립니다. 대신 중심 관광지에서 차로 10~20분 벗어난 마을, 옛길, 간이역, 작은 문화 공간은 훨씬 조용했습니다.
- 주말이라면 오전 10시 전이나 오후 4시 이후가 한결 낫습니다.
- 식사는 유명 맛집보다 동네 백반집, 막국수집을 고르면 대기 시간이 줄어듭니다.
- 하루에 장소를 많이 넣기보다 2~3곳만 느리게 보는 편이 로컬 여행에 맞습니다.
- 운영 시간과 보수 공사 여부는 방문 전 공식 안내를 확인하는 편이 안전합니다.
길을 잡을 때 참고한 공식 정보는 강릉시 관광포털의 명주동 골목 안내, 한국관광공사의 영월 요선암 여행 정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고성 왕곡마을 설명이었습니다. 이런 자료는 큰 방향을 잡는 데 좋고, 실제 분위기는 결국 현장에서 걷는 속도에 따라 달라졌습니다.
저는 강원도를 갈 때마다 점점 덜 유명한 곳을 찾게 됩니다. 멋진 전망 하나보다, 동네 어귀에 놓인 낡은 의자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골목의 오후가 더 오래 남을 때가 많거든요. 사람이 적은 여행은 특별한 비밀 장소를 찾는 일이라기보다, 남들이 서두르는 길에서 한 발 늦게 걷는 일에 가깝다고 느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