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온천보다 조용했던 일본 겨울 여행지, 골목 따라 직접 걸어본 후기

얼마 전 겨울 끝자락에 일본을 다녀왔는데, 사람 많은 전망대나 쇼핑 거리보다 오래 기억에 남은 건 눈 쌓인 동네 골목이었다. 가게 문이 반쯤 닫힌 오후, 슈퍼 앞에 세워진 자전거, 김이 새어 나오는 작은 식당 같은 장면들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일본 겨울 여행지라고 하면 삿포로 눈축제나 오타루 운하를 먼저 떠올리기 쉽지만, 솔직히 나는 그런 곳보다 버스가 하루 몇 번 안 다니는 동네에서 더 편하게 숨을 쉬었다.
눈 구경보다 동네의 속도가 좋았던 곳
첫 번째로 기억나는 곳은 홋카이도 비에이 외곽 마을이었다. 비에이는 이미 꽤 알려진 여행지지만, 역 주변을 조금 벗어나면 분위기가 달라진다. 택시 투어로 유명한 나무들을 찍고 끝내는 코스 말고, 작은 길을 따라 30분쯤 걸어보면 눈밭 사이로 집들이 낮게 이어진다. 사람 소리보다 제설차 지나가는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아침 9시쯤 비에이역에 도착했을 때 기온은 영하 8도 정도였다. 카페가 전부 열린 시간도 아니어서 역 안 대합실에 잠깐 앉아 장갑을 다시 끼웠다. 근데 그 느린 시작이 좋았다. 여행지에 왔다는 흥분보다 동네 하루에 잠깐 끼어든 느낌이었다. 눈밭은 예뻤지만, 더 인상 깊었던 건 집 앞 눈을 치우던 할머니가 지나가는 사람에게 고개만 살짝 숙이던 장면이었다.
관광지 옆, 한 정거장 물러난 겨울
교토에서는 아라시야마 대신 사가노 뒷길을 오래 걸었다. 아라시야마 대나무숲은 겨울 평일에도 사람이 적지 않다. 사진을 찍으려면 기다려야 하고, 골목은 생각보다 금방 붐빈다. 그런데 JR 사가아라시야마역에서 반대 방향으로 빠져 주택가 쪽을 걸으면 분위기가 툭 바뀐다. 관광객이 줄고, 빨래가 걸린 집과 작은 절, 동네 빵집이 나온다.
나는 낮 2시쯤 그 길을 걸었다. 겨울 교토는 해가 기울기 시작하면 골목 그림자가 빨리 길어진다. 대단한 명소가 계속 나오는 길은 아니었다. 대신 120엔짜리 캔커피를 손에 들고, 문 닫힌 채소가게 앞을 지나고, 오래된 담장 아래 낙엽이 모여 있는 걸 봤다. 사실 이런 여행은 사진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누가 보면 그냥 동네 산책인데, 바로 그 점 때문에 오래 머물게 된다.
사가노 골목에서 좋았던 점
- 아라시야마 중심부보다 체감 인파가 확실히 적었다.
- 역에서 멀지 않아 길을 잃어도 부담이 작았다.
- 큰 카페보다 동네 빵집과 작은 찻집이 더 잘 어울렸다.
- 오후 3시 이후에는 겨울빛이 낮게 들어와 골목 분위기가 부드러웠다.
바닷바람이 차가워서 더 조용했던 마을
일본 겨울 여행지 중에서 바다 마을을 고른다면 나는 가나자와에서 조금 내려간 나나오를 떠올린다. 화려한 온천 거리와는 다르게, 나나오는 생활감이 더 앞에 있는 항구 도시였다. 역 앞은 조용했고, 큰 간판보다 오래된 상점이 많았다. 바람은 꽤 매서웠다. 체감기온이 낮아서 20분만 걸어도 귀가 얼얼했다.
그런데 바닷가 겨울은 묘한 매력이 있다. 여름처럼 들뜬 분위기가 없고, 항구 근처 식당도 손님을 크게 끌어모으는 느낌이 아니다. 점심으로 먹은 생선구이 정식은 1,000엔대였고, 밥과 된장국이 뜨거워서 한동안 말이 없어졌다. 관광객을 위한 과한 친절보다, 동네 사람이 늘 먹는 밥상에 가까웠다. 여행 중 그런 밥을 만나면 괜히 마음이 느슨해진다.
온천보다 골목이 먼저였던 규슈의 겨울
규슈에서는 벳푸보다 유후인 외곽이 더 조용했다. 유후인 중심 거리는 주말이면 생각보다 사람이 많다. 기념품 가게와 디저트 가게 앞에는 줄도 생긴다. 하지만 긴린코 호수만 보고 돌아서지 않고, 논과 민가가 이어지는 길로 15분 정도 빠지면 전혀 다른 겨울이 나온다. 산 아래로 김이 옅게 올라오고, 물길 옆에는 서리가 남아 있었다.
나는 숙소 체크인 전 시간이 비어서 그 길을 걸었다. 캐리어를 역 보관함에 넣고 작은 배낭만 멨다. 걷다 보니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만한 길이 나왔고, 그 옆으로 밭과 낮은 집들이 있었다. 온천 마을이라기보다 조용한 시골 동네에 가까웠다. 유명한 료칸을 예약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발이 차가워질 때쯤 들어간 공동탕의 입욕료는 몇백 엔 정도였고, 뜨거운 물에 앉아 있으니 그날 걸었던 길이 천천히 풀렸다.
겨울 일본 골목 여행에서 챙기면 좋은 것
- 방수 되는 신발은 거의 필수에 가깝다. 눈보다 녹은 물이 더 불편했다.
- 작은 현금은 여전히 편하다. 동네 목욕탕과 식당은 카드가 안 되는 곳도 있었다.
- 해 지는 시간이 빠르니 오후 4시 이후 이동은 짧게 잡는 편이 낫다.
- 버스 배차가 1시간 이상 벌어지는 곳도 있어 돌아오는 시간을 먼저 봐두는 게 마음이 편했다.
사람 적은 일본 겨울 여행지를 고르는 내 기준
내가 겨울 일본 여행지를 고를 때 보는 건 유명도보다 이동의 끝부분이다. 큰 도시에서 기차로 1시간 안팎, 그리고 역에서 걸어서 20분쯤 더 들어갈 수 있는 동네를 좋아한다. 너무 외진 곳은 겨울에 위험하거나 불편할 수 있고, 반대로 너무 가까운 곳은 이미 사람이 많다. 그 중간쯤이 좋다. 편의점은 하나쯤 있지만, 기념품 가게가 줄지어 있지는 않은 곳.
또 하나는 계절의 단점이 오히려 분위기가 되는 곳이다. 눈이 많아 불편한 비에이, 바람이 센 나나오, 해가 빨리 지는 교토 골목, 조용해서 약간 심심한 유후인 외곽처럼 말이다. 이런 곳은 여행 일정표에 굵게 표시할 만한 장면이 적을 수 있다. 대신 돌아와서 사진을 넘기다 보면, 별것 아닌 길모퉁이에서 오래 멈추게 된다.
일본 겨울 여행지는 꼭 눈축제나 유명 온천만으로 채우지 않아도 충분했다. 하루에 한두 곳만 정하고, 나머지는 동네 슈퍼와 작은 식당, 역 앞 벤치에 맡겨도 여행은 생각보다 깊어진다. 나는 앞으로도 사람이 몰리는 시간표에서 조금씩 비켜나 걸을 것 같다. 겨울의 일본은 화려한 장면보다 조용한 생활의 온도가 더 오래 남는 계절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