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시도를 천천히 걸어봤더니, 조용한 섬의 표정이 오래 남았다

배에서 내리자마자 느껴진 조용함
얼마 전 삽시도에 다녀왔는데, 선착장에 발을 딛는 순간부터 섬의 속도가 육지와 다르다는 게 느껴졌다. 대천항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는 길은 날씨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지만, 보통 40분 남짓이면 닿는다. 유명한 섬처럼 내리자마자 간판이 몰려 있거나 사람들이 한 방향으로 쏟아지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몇몇 여행객이 배낭을 고쳐 메고, 동네 어르신들은 익숙한 걸음으로 각자 갈 길을 갔다.
삽시도는 충남 보령 앞바다에 있는 섬이다. 이름만 들으면 낯설 수 있는데, 사실 대천항에서 접근성이 나쁘지 않다. 그런데도 섬 안으로 조금만 걸어 들어가면 관광지 특유의 들뜬 소리보다 바람 소리와 생활 소리가 먼저 들린다. 저는 이런 순간을 좋아한다. 어디를 봐야 한다는 압박이 없는 곳, 길을 잘못 들어도 그 길 자체가 풍경이 되는 곳 말이다.
길은 단순한데, 분위기는 꽤 다르다
삽시도에서 가장 좋았던 건 길이 복잡하지 않다는 점이었다. 선착장 주변에서 마을길을 따라 걷다 보면 바다와 밭, 낮은 집들이 번갈아 나타난다. 걷는 속도로 둘러보면 섬의 크기가 몸에 들어온다. 자동차로 훑고 지나가기보다, 적어도 반나절은 천천히 걸어야 이 섬의 느낌이 제대로 남는다.
솔직히 삽시도는 화려한 포토존이 많은 곳은 아니다. 대신 장면과 장면 사이가 좋다. 바닷가로 내려가는 좁은 길, 담장 너머 말라가는 그물, 조용히 닫힌 민박집 문, 점심때쯤 풍겨오던 밥 냄새 같은 것들이 기억에 남았다. 사람 많은 관광지에서는 이런 장면들이 배경처럼 지나가는데, 여기서는 하나씩 눈에 들어왔다.
해변 쪽으로 가면 모래사장이 생각보다 넓게 펼쳐진다. 계절과 물때에 따라 느낌이 달라지는데, 제가 갔을 때는 물이 조금 빠진 뒤라 모래가 단단했고 걷기 편했다. 발자국이 드문드문 남아 있는 해변을 혼자 걷다 보니, 굳이 멀리 온 이유를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기분이 들었다.
사람 적은 시간을 고르면 더 좋은 섬
삽시도는 여름 성수기나 주말에는 분위기가 달라질 수 있다. 그래도 대형 관광지처럼 계속 붐비는 편은 아니고, 시간대를 조금 피하면 조용한 장면을 만날 가능성이 높다. 저는 오전 배로 들어가서 낮 시간을 보내고, 오후 배 시간을 확인해두는 방식이 편했다. 섬 여행은 배 시간이 일정의 기준이 되기 때문에, 즉흥적으로 움직이더라도 돌아가는 배편만큼은 먼저 확인하는 게 좋다.
- 대천항에서 출발하는 배편은 계절과 날씨에 따라 변동될 수 있다.
- 섬 안에서는 편의시설이 많지 않아서 물과 간단한 간식은 미리 챙기는 편이 낫다.
- 걷는 시간이 길어질 수 있으니 미끄럽지 않은 신발이 편하다.
- 식당이나 매점은 운영 시간이 일정하지 않을 수 있어 현지 상황을 보고 움직이는 게 좋다.
근데 준비를 너무 크게 할 필요는 없었다. 삽시도는 무언가를 정복하듯 다니는 섬이 아니라, 비어 있는 시간을 가지고 들어가면 좋은 곳에 가깝다. 저는 계획표를 촘촘하게 세우기보다 선착장, 마을길, 해변 정도만 생각해두고 걸었다. 그렇게 해도 하루가 모자라지 않았다.
삽시도에서 좋았던 건 조용한 생활감이었다
여행지에서 생활감이라는 말을 쓰면 조금 밋밋하게 들릴 수 있다. 그런데 삽시도에서는 그 생활감이 가장 큰 매력이었다. 길가에 세워진 작은 트럭, 바닷바람을 맞으며 말라가는 빨래, 집 앞에 놓인 플라스틱 의자 같은 것들이 섬을 과하게 꾸미지 않게 해줬다. 여행자가 보기 좋게 만든 풍경보다, 누군가의 평범한 하루 옆을 잠깐 지나가는 느낌이었다.
물론 불편한 점도 있다. 카페나 식당 선택지가 많지 않고, 날씨가 흐리면 할 일이 줄어든다. 배가 끊길까 봐 날씨를 계속 보게 되는 것도 섬 여행의 현실이다. 하지만 그 불편함이 삽시도의 속도를 만들기도 한다. 마음대로 안 되는 부분이 있어서 오히려 천천히 보게 된다.
사진보다 걷는 시간이 더 오래 남는다
삽시도에서 찍은 사진을 나중에 보니 생각보다 담백했다. 바다, 길, 낮은 집, 하늘.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진보다 걸을 때의 온도가 더 선명하게 떠올랐다. 바람이 세게 불던 모퉁이, 아무도 없던 해변의 발소리, 선착장으로 돌아오던 길에 보이던 배의 움직임 같은 것들이다.
사실 삽시도는 누군가에게 강하게 추천하기보다, 조용한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슬쩍 알려주고 싶은 섬이다. 유명한 명소를 빠르게 찍고 싶은 사람이라면 심심하게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 적은 길을 걷고 싶고, 여행지에서도 동네의 표정을 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꽤 오래 마음에 남을 가능성이 있다. 저도 다시 간다면 더 많은 곳을 보려고 하기보다, 같은 길을 조금 더 느리게 걸을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