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교토 여행에서 골목을 따라 걸어봤더니

낯선 도시에서는 이름난 풍경보다 아침 장을 보러 나온 사람의 걸음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일본 교토 여행에서도 그랬다. 유명한 절과 신사를 빼곡히 잇는 대신 동네를 한두 곳씩 천천히 걸었다. 관광객이 전혀 없는 곳을 찾기는 어렵지만, 큰길에서 한 블록만 벗어나도 교토의 다른 속도가 느껴졌다.
데마치야나기에서는 강가부터 걸었다
게이한 전철의 데마치야나기역에서 나오면 가모가와와 다카노가와가 만나는 삼각주 쪽으로 발길이 간다. 다리 위에서 강을 내려다보는 사람, 강가에 앉아 쉬는 사람의 시간이 서로 다르다. 나도 그 흐름에 맞춰 잠시 멈췄다. 관광 명소 앞에서처럼 사진을 찍고 바로 떠나기보다, 어느 쪽 강변으로 걸을지 고르는 시간이 좋았다.
역 주변에는 오래된 상점가와 생활 가게가 이어진다. 상점가의 북적임은 강가의 한적함과 또 달라서 두 곳을 함께 걷는 편이 좋았다. 가게 앞을 막고 사진을 찍거나 조용한 주택가까지 들어갈 필요는 없다. 빵 하나, 간단한 먹거리 하나를 골라 다시 강 쪽으로 돌아오는 정도면 동네의 리듬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이 일대는 시모가모 신사로 향하는 길목이기도 하다. 교토시 관광 안내는 데마치야나기역에서 신사 경내까지 걸어서 약 12분으로 소개한다. 신사를 목적지로 삼아 서두르기보다 강가에서 출발해 걷다가 발길이 닿으면 들르는 식이 내게는 더 편했다. 벚꽃이나 단풍철에는 강변에도 사람이 많으니, 한적한 분위기를 바란다면 평일 이른 시간에 걷는 편이 낫다.
니시진의 골목에는 일하는 도시가 남아 있었다
니시진은 교토의 직물 문화가 이어져 온 동네다. 처음부터 눈에 띄는 풍경이 펼쳐지는 곳은 아니다. 낮은 건물 사이로 가게와 작업장, 평범한 집이 섞여 있다. 그래서 큰길에서 골목으로 들어설 때도 무언가를 찾아내겠다는 마음보다 동네의 하루를 방해하지 않겠다는 마음이 먼저 들었다.
이마데가와 거리에서 북쪽이나 남쪽으로 조금씩 방향을 바꿔 걸으면 거리의 표정이 달라진다. 전통 과자를 파는 가게 앞에는 오래 머문 손님이 있고, 몇 걸음 뒤에는 자전거를 세워 둔 집이 있다. 서쪽의 기타노텐만구 주변처럼 발길이 몰리는 곳도 있지만, 니시진 전체가 같은 밀도로 붐비지는 않는다. 작은 길을 걷다가 문이 열린 가게를 만나면 그때 들어가는 편이, 지도에 저장한 곳을 차례로 찍는 것보다 이 동네와 잘 어울렸다.
다만 이곳은 누군가의 생활 공간이다. 열린 문 너머 작업 모습을 허락 없이 찍지 않고, 좁은 길에서는 통행을 먼저 비켜줬다. 조용한 곳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그 조용함을 깨고 싶지는 않았다. 교토의 오래된 집을 바라보는 일과 그 안에 사는 사람을 존중하는 일은 함께 가야 한다.
후시미에서는 붉은 도리이 대신 운하를 택했다
후시미라는 이름을 들으면 후시미 이나리 신사를 먼저 떠올리기 쉽다. 나는 중심부의 후시미모모야마역으로 가서 오테스지 상점가부터 걸었다. 역을 나오면 상점가 입구가 가까워 길을 잡기도 쉽다. 식재료와 일상용품을 고르는 사람들 사이를 지나 남쪽 운하 쪽으로 향하면 분위기가 조금씩 바뀐다.
후시미는 물길을 따라 물자가 오가던 항구 마을이었고, 지금도 양조장 건물과 운하가 그 흔적을 보여준다. 벤텐바시 부근에서 물길을 바라보면 가게가 이어진 거리와는 다른 고요함이 있다. 교토시 관광 안내에서도 이 일대를 상점가와 운하를 함께 걷는 코스로 소개한다. 배를 타는 사람도 있지만, 내게는 다리에서 물을 보고 강변을 천천히 걷는 시간이 더 기억에 남았다.
양조장이나 식당을 들를 생각이라면 영업일을 그날 확인하는 게 좋다. 문이 닫혀 있어도 산책 자체는 남는다. 상점가에서 간식을 고르고 운하 쪽으로 걸었다가 다시 역으로 돌아오는 동선이면 반나절을 무리 없이 보낼 수 있다. 다만 이 일대도 주말과 꽃이 피는 계절에는 방문객이 늘어난다. ‘숨은 곳’이라는 말만 믿고 텅 빈 거리를 기대하지는 않는 편이 좋다.
오하라에서는 한 걸음 더 느려졌다
교토 시내의 골목도 좋지만, 시간이 하루 더 있다면 북쪽의 오하라로 향할 만하다. 지하철 가라스마선 종점인 국제회관역에서 오하라행 버스를 타면 약 20분 뒤 마을에 닿는다. 교토시 관광 안내가 소개하는 길도 이 경로다. 시내와 풍경이 확연히 달라서, 버스에서 내린 뒤에는 먼저 마을의 길과 밭 사이를 천천히 바라보게 된다.
산젠인은 오하라의 잘 알려진 장소라 경내가 늘 한산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오히려 절로 향하는 길과 마을을 잇는 길에서 속도를 늦출 때 오하라다운 시간이 느껴진다. 버스 시간에 쫓기지 않도록 돌아갈 차편을 먼저 확인하고, 걸을 수 있는 만큼만 걸었다. 밭과 집은 주민의 사유 공간이니 사진 한 장을 위해 경계를 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네 동네를 하루에 묶으면 다시 이동만 남는다. 데마치야나기와 니시진을 하루에, 후시미를 다른 반나절에, 오하라는 여유 있는 날에 두는 편이 좋았다. 교토에서 마음에 남은 것은 특별한 장면을 많이 본 날이 아니라, 길을 하나 덜 정하고 걸었던 오후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