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먼플레이스
제너럴리스트의 色다른 이야기

울진 여행지 골목을 따라 걸어봤더니

Last Updated :
울진 여행지 골목을 따라 걸어봤더니

얼마 전 울진에 갔을 때, 바다보다 먼저 기억에 남은 건 후포항 뒤편의 골목이었다. 큰길에서는 차가 오가고 식당 간판이 눈에 들어오는데, 한 블록만 안쪽으로 걸으면 집 앞에 놓인 화분과 낮은 담장이 보인다. 울진 여행지를 찾으며 기대했던 장면도 사실 이런 것이었다. 누군가의 평범한 하루가 여행자의 걸음과 잠깐 겹치는 곳.

이번에는 후포항에서 시작해 직산항, 월송정 솔숲, 평해읍내까지 천천히 움직였다. 네 곳을 걸어서 한 번에 잇는 코스는 아니다. 동네마다 잠시 차를 세우고 발로 둘러보는 편이 좋았다. 바람이 센 날에는 항구와 숲의 분위기도 꽤 달라지니, 일정은 조금 느슨하게 잡는 게 맞다.

후포항에서는 큰길보다 안쪽 골목이 좋았다

후포항은 울진 남쪽의 큰 항구라서 늘 조용한 곳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어시장 주변은 배가 들어오는 시간이나 식사 시간에 활기가 있다. 그런데 그 활기를 구경한 뒤 항구를 등지고 주택가 쪽으로 몇 걸음 옮기면 걸음의 속도가 달라진다. 가게들이 늘어선 길과 주민들이 오가는 길이 가까이 붙어 있는 점이 후포의 재미였다.

나는 항구를 출발점으로 삼아 시장 주변을 한 바퀴 돌고, 안쪽 골목을 따라 다시 바다 쪽으로 나왔다. 골목은 관광 코스로 꾸민 길이 아니라 집과 일터가 이어지는 생활 공간이다. 그래서 담장 안을 들여다보거나 주민의 집을 배경으로 오래 사진을 찍는 일은 피했다. 길을 막지 않고 걷는 것만으로도 동네의 표정을 충분히 볼 수 있었다.

후포공설시장은 3일과 8일에 장이 서는 오일장이다. 장날에는 동네의 생활감을 가까이 느낄 수 있지만, 한적함을 기대했다면 다른 날이 더 맞을 수 있다. 시장에 가게 된다면 물건을 구경만 하고 지나치기보다 필요한 간식이나 식재료를 조금 사는 편이 마음도 편했다. 영업 여부와 장 분위기는 날씨와 계절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직산항에서는 오래 머물 이유를 만들지 않았다

후포에서 북쪽으로 이동해 직산항에 닿았다. 후포항보다 규모가 작아서, 항구 전체를 둘러보겠다는 계획보다 잠깐 걷겠다는 마음이 어울렸다. 바다를 향해 선 배와 항구 뒤편의 집들을 번갈아 보며 걷다 보니, 멀리서 볼 때 하나의 풍경이던 어촌이 조금씩 구체적인 장소가 됐다.

이곳에서 좋았던 건 특별한 시설이나 사진 찍는 자리가 아니었다. 파도 소리 사이로 차가 지나가고, 일하던 사람이 자기 일을 이어가는 평범한 분위기였다. 다만 항구는 작업장이기도 하다. 그물과 장비가 놓인 곳으로 들어가지 않고, 차량이 오가는 길에서는 가장자리로 붙어 걸었다. 한적한 곳일수록 방문객 한 사람의 움직임이 눈에 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직산항만을 위해 먼 길을 달려올 필요가 있는지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하지만 후포와 월송정 사이를 이동하는 길이라면 짧게 들러볼 만하다. 이름난 전망대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는 시간과 달리, 여기서는 바다 옆에서 사람들이 사는 방식을 조금 가까이 보게 된다.

월송정은 정자에 오르기 전 솔숲을 걸었다

월송정은 이미 잘 알려진 곳이다. 그래도 내가 다시 걷고 싶었던 건 정자에 도착하기 전의 솔숲이었다. 소나무 사이로 들어가면 바다가 바로 눈앞에 펼쳐지지 않아도 파도 소리가 들린다. 발밑을 보며 걷다가 틈 사이로 밝아지는 바다를 발견하는 순간이 좋았다.

정자와 해변을 빠르게 찍고 떠나기보다 숲길에서 속도를 늦춰보면 이곳의 느낌이 달라진다. 주말이나 휴가철에는 방문객이 많을 수 있어, 조용히 걷고 싶다면 평일 오전이 더 어울리겠다. 다만 평일이라고 늘 비어 있는 것은 아니다. 현장에서 사람이 많으면 한쪽으로 조금 더 걸어 자리를 찾는 정도로 생각하는 게 편하다.

모래가 있는 구간과 솔숲 길은 발바닥에 닿는 느낌부터 다르다. 신발에 모래가 들어가는 게 싫다면 해변까지 무리해서 내려가지 않아도 된다. 숲에서 잠깐 바다를 보고 돌아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유명한 울진 여행지라도 어디에 시간을 쓰느냐에 따라 자기만의 기억이 남는다는 걸 여기서 느꼈다.

평해읍내에서 여행이 다시 일상이 됐다

마지막에는 평해읍내로 들어갔다. 월송정에서 바다를 보고 난 뒤 읍내를 걸으면 시선이 다시 사람 사는 곳으로 돌아온다. 가게 앞을 지나고 골목 끝에서 방향을 바꾸는 짧은 산책이다. 뚜렷한 목적지를 정하지 않았더니 오히려 서두를 일이 없었다.

평해장도 2일과 7일에 열리는 오일장이다. 장날의 생기를 보고 싶다면 날짜를 맞추고, 조용한 골목이 목적이라면 장이 없는 날을 고르면 된다. 어느 쪽이 더 낫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시장이 열리는 날에는 발걸음이 느려질 만큼 볼거리가 생기고, 평소에는 동네의 리듬이 더 또렷하게 느껴진다.

차 없이 이동한다면 후포, 직산, 평해 사이의 농어촌버스 운행 시간을 먼저 확인하는 게 좋다. 배차 간격이 여행자의 걸음에 맞춰지지는 않으니까. 차로 움직여도 항구의 작업 차량이나 골목 안 주민 통행을 막지 않는 자리에 주차해야 한다. 하루에 여러 곳을 찍겠다는 욕심을 덜면 이동의 번거로움도 줄어든다.

돌아오는 길에는 월송정의 바다보다 후포 골목의 낮은 담장과 직산항에서 잠깐 멈췄던 시간이 자꾸 떠올랐다. 울진은 큰 풍경이 많은 곳이지만, 내게 오래 남은 울진 여행지는 그 풍경 사이에서 사람들이 하루를 보내는 작은 동네들이었다.

울진 여행지 골목을 따라 걸어봤더니 - 요약
울진 여행지 골목을 따라 걸어봤더니 | 커먼플레이스 : https://commonplace.kr/10910
제너럴리스트의 色다른 이야기
커먼플레이스 © commonplace.kr All rights reserved. powered by modoo.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