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나라 여행을 떠나 짠타부리 골목을 걸었다

방콕에서 며칠을 보내고 나니 따뜻한 나라 여행에도 조용한 시간이 필요해졌다. 그때 찾아간 곳이 태국 동부의 짠타부리였다. 바다를 보러 가는 길에 스쳐 지나가기 쉬운 도시인데, 강가의 오래된 집과 동네 가게 사이를 걷는 시간이 오래 남았다. 유명한 장면을 찾아다니기보다 그곳의 하루에 잠깐 섞여 있고 싶을 때 어울리는 곳이었다.
방콕을 벗어나니 걸음이 느려졌다
방콕 에까마이 동부 버스터미널에서 짠타부리행 버스를 탔다. 길이 막히지 않으면 세 시간 남짓 걸리지만, 이동하는 날에는 반나절을 비워 두는 편이 마음 편하다. 차창 밖으로 높은 건물이 줄어들고 낮은 집과 나무가 많아지는 동안, 여행의 속도도 조금씩 내려갔다.
도착해서는 강변 옛 동네와 가까운 곳에 짐을 풀었다. 이곳은 하루에 여러 명소를 찍고 돌아가기보다 적어도 하룻밤 머물며 아침과 저녁을 모두 보는 편이 좋았다. 같은 길도 가게 문이 열리기 전과 사람들이 저녁을 먹으러 나올 때의 표정이 달랐다.
시내에서 강변으로 향하는 길에는 관광객을 위한 가게만 늘어서 있지 않다. 오토바이가 지나가고, 장을 본 사람이 봉지를 들고 걷고, 문을 반쯤 연 가게 안에서는 평소처럼 일이 이어진다. 내가 좋아하는 로컬 여행의 장면은 대개 이런 사이에 있었다. 사진을 찍을 만한 곳을 찾지 않아도, 조금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멈추게 된다.
찬타분 강변에서는 한 길을 두 번 걸었다
찬타분 강변 옛 동네는 강을 따라 약 1킬로미터 이어진다. 태국 관광 당국의 안내에도 오래된 집과 상점이 남아 있는 거리로 소개된다. 짧아 보이는 거리인데 실제로는 한 번에 지나가기 어려웠다. 나무 창틀을 올려다보다가 골목 안쪽을 기웃거리고, 물가 쪽으로 걸음을 옮기다 보면 시간이 금방 간다.
처음에는 길 끝까지 걸었다가 같은 길을 천천히 되돌아왔다. 갈 때 눈에 띈 것은 오래된 건물의 모양이었고, 돌아올 때 보인 것은 그 안에서 계속되는 생활이었다. 식탁을 닦는 손, 가게 앞에 놓인 의자, 햇볕을 피해 그늘로 자리를 옮기는 사람들. 이 거리가 편안했던 이유는 오래된 풍경이 잘 보존돼 있어서만은 아니었다.
다만 이름이 알려진 강변 거리인 만큼 언제나 텅 비어 있는 곳은 아니다. 가게 앞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도 있고, 걷는 속도를 늦추기 어려운 구간도 있다. 조용히 보고 싶다면 오전에 먼저 걸어 보고, 마음에 드는 골목은 사람이 적은 시간에 다시 찾는 편이 낫다. 나는 두 번째 걸음에서야 강가의 소리와 집들의 간격이 눈에 들어왔다.
오래된 주택 가운데는 지금도 누군가 살거나 일하는 곳이 있다. 열린 문이라고 해서 안으로 들어가거나 카메라를 들이대지는 않았다. 골목을 좋아할수록 그 안의 일상을 방해하지 않는 거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잠시 머문 사람이 가져갈 수 있는 것은 사진보다 그 길을 걸을 때의 감각이면 충분했다.
농부아에서는 시장보다 동네가 기억났다
다음에는 시내에서 남쪽으로 약 10킬로미터 떨어진 농부아로 갔다. 이동 거리가 짧아 보여도 걸어서 이어갈 만한 코스는 아니다. 차량으로 다녀오고, 돌아오는 교통편도 미리 생각해 두면 골목에서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 짠타부리와 농부아를 하루에 묶는다면 강변은 오전, 농부아는 낮 시간으로 나누는 동선이 무난했다.
농부아는 오래된 나무집과 지역 간식으로 알려진 동네다. 주말에는 간식을 파는 거리가 열려 방문객이 모인다. 태국 관광청 안내에 나온 운영 시간도 자료마다 조금씩 달라, 특정 시각에 맞춰 촘촘히 움직이기보다는 출발 전에 그날의 운영 여부를 확인하는 편이 안전하다. 평일의 한적함을 기대한다면 시장 가판대가 많이 열리지 않을 수도 있다.
나는 골목의 작은 가게 앞에서 발걸음을 늦췄다. 무엇을 사야 제대로 왔다고 할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느낌이 좋았다. 간식 하나를 골라 잠깐 쉬고, 다시 걷다가 물길 가까이에서 동네가 이어지는 모습을 바라봤다. 시장이 열리는 날의 활기와 조용한 날의 생활감은 서로 다른 얼굴이다. 사람을 피하고 싶다면 주말의 유명한 시간대는 조금 비켜 가는 편이 맞겠다.
농부아를 강변 거리와 비교하면 분위기의 차이가 더 선명하다. 찬타분 강변에서는 오래된 건물을 따라 길게 걷게 되고, 농부아에서는 가게와 집 사이를 짧게 오가며 머물게 된다. 둘 다 크고 화려한 볼거리를 기대하고 가면 심심할 수 있다. 반대로 별다른 일 없이 동네를 걷는 시간을 좋아한다면 그 심심함이 여행의 여백이 된다.
따뜻한 날씨에도 걷는 시간은 골라야 했다
따뜻한 나라 여행이라고 해서 하루 종일 걷기 좋은 것은 아니었다. 짠타부리는 연중 온화한 편이지만 습하고 비가 많은 지역이다. 특히 한낮에는 그늘이 적은 길에서 금세 지칠 수 있다. 나는 아침에 긴 구간을 걷고, 가장 더운 시간에는 앉아서 쉬었다가 저녁 무렵 다시 나왔다. 작은 물병 하나와 편한 신발이 여행 계획표보다 쓸모 있었다.
태국의 우기는 대체로 5월 중순부터 10월 중순까지 이어지지만, 비가 오는 양상은 해마다 다르다. 짠타부리도 비가 잦은 편이라 맑은 사진 한 장을 위해 일정을 빽빽하게 짜면 아쉬울 수 있다. 비를 피할 시간을 남겨 두고 숙소를 잡으면 젖은 골목을 바라보는 시간도 하루의 일부가 된다.
짠타부리에서 특별한 일을 많이 하지는 않았다. 버스를 타고, 강변을 걷고, 농부아에서 잠깐 멈췄다. 그런데 돌아와서 생각나는 것은 관광지의 이름보다 같은 골목을 두 번 걸었을 때 달라 보이던 풍경이다. 따뜻한 나라 여행이 늘 바다와 휴양지로 향할 필요는 없겠구나. 누군가의 평범한 하루가 흐르는 동네에서도 충분히 오래 머물고 싶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