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여행에서 골목을 천천히 걸어보니

평창에 다녀온 뒤 오래 생각난 건 높은 산보다 읍내의 낮은 풍경이었다. 평창 여행이라면 대관령이나 메밀꽃밭부터 떠올리기 쉽다. 그런데 사람 적은 곳을 좋아하는 내게는 시장에서 강 쪽으로 걸어가던 시간이 더 잘 맞았다. 구경할 곳을 빽빽하게 채우지 않고 평창읍과 대화면, 방림면 계촌마을에 시간을 나눠 썼다. 평창은 생각보다 넓어서, 한 동네에 오래 머물겠다고 마음먹는 편이 오히려 편했다.
평창읍에서는 시장을 지나 강으로 걸었다
평창읍에 도착해서 먼저 향한 곳은 평창올림픽시장 일대였다. 장이 서는 날이면 물건을 고르는 사람과 장을 본 뒤 돌아가는 사람이 한 골목에 섞인다. 여행객을 위해 꾸며 놓은 거리와는 걸음의 속도가 다르다. 가게 앞을 막지 않으려고 한쪽으로 비켜 걷다 보면 내가 이 동네에 잠시 들어와 있다는 감각도 선명해진다.
평창군 관광 안내에는 평창장이 매월 끝자리가 5일과 10일인 날 열린다고 적혀 있다. 장날의 활기를 보고 싶다면 날짜를 맞추고, 조용히 읍내를 걷고 싶다면 다른 날이 낫다. 어느 쪽이든 시장은 누군가의 생활 공간이다. 카메라를 들이대기보다 필요한 간식 하나를 사고, 골목을 천천히 빠져나오는 시간이 좋았다.
시장 다음에는 평창강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평창문화관광이 안내하는 바위공원은 시장에서 약 2㎞ 떨어져 있다. 시장과 강변을 한 번에 묶으면 차를 다시 몰고 가까운 곳을 옮겨 다닐 필요가 없다. 바위공원에서는 눈앞의 바위보다 강이 휘어지는 모양을 오래 보게 됐다. 벤치에 앉아 잠깐 쉬는 것만으로도 오전 일정이 충분했다. 다만 강변 공원은 장마철이나 호우 때 출입이 제한될 수 있으니, 비가 많이 온 날에는 현장 안내를 따르는 게 맞다.
대화장은 둘러보는 속도를 늦출수록 좋았다
대화면으로 옮기면 평창읍과 또 다른 시장 풍경을 만난다. 대화장은 매월 끝자리가 4일과 9일인 날 열린다. 장날에는 먼저 한 바퀴 걸으며 무엇을 파는지 보고, 그다음 먹을 것을 골랐다. 서둘러 사진부터 찍을 때보다 사람들의 동선이 눈에 들어왔다. 장바구니를 든 주민이 지나갈 자리를 내주고, 물건을 고르는 사람 뒤에서 잠깐 기다리는 일도 장 구경의 일부였다.
솔직히 이런 곳은 반드시 먹어야 할 메뉴를 정해 두면 재미가 줄어든다. 그날 문을 연 가게와 노점이 다르고, 장이 파한 뒤의 분위기도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시장 안에서 간단히 먹고 주변 거리를 조금 더 걸었다. 큰 볼거리를 기대하면 금방 돌아설 수 있는 동네지만, 상점 간판과 버스가 오가는 길을 보고 있으면 평창의 평범한 오후가 남는다. 사람 적은 여행을 원한다면 장날 한낮보다 장이 끝난 뒤가 한결 느긋하다.
계촌마을에서는 조용히 지나가는 시간이 남았다
걸은 곳은 방림면 계촌마을이었다. 평창문화관광은 이곳을 산과 계곡에 둘러싸인 해발 약 700m의 마을로 소개한다. 축제가 열리는 날에는 분위기가 달라질 테니, 나는 행사가 없는 날의 마을을 더 좋아한다. 골목을 따라 걷다가 집과 밭이 이어지는 곳에서 속도를 늦췄다. 눈에 띄는 간판 하나를 찾아 들어가기보다, 길이 어디로 이어지는지만 보며 걷는 편이 어울렸다.
마을은 누군가의 집 앞까지 둘러보라고 마련된 관광지가 아니다. 사유지로 들어가지 않고, 창문 가까이에서 사진을 찍지 않고, 조용한 길에서는 목소리를 낮췄다. 그런 작은 거리 두기가 있어야 여행객도 편안하게 머물 수 있다. 계촌에서의 시간은 특별한 체험을 했다는 기억보다 잠깐 바람을 쐬고 돌아왔다는 느낌에 가까웠다.
이 길은 하루에 모두 채우지 않아도 된다
평창읍의 시장과 강변은 걸어서 묶기 좋지만, 대화면과 계촌마을까지 넣으면 이동 시간이 길어진다. 차로 간다면 오전에는 평창읍, 오후에는 대화면이나 계촌마을 중 한 곳만 고르는 게 여유롭다.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면 마을 간 버스 간격과 돌아오는 편을 먼저 확인하는 편이 안전하다. 장날과 축제 일정은 계절에 따라 체감 혼잡도가 크게 달라진다.
이번 길에서 가장 좋았던 순간은 어디에 도착했을 때보다 더 걸을지 잠시 쉴지 스스로 정할 수 있었을 때다. 평창 여행이 꼭 넓은 풍경을 찾아 멀리 올라가는 일일 필요는 없다. 시장에서 강으로, 장터에서 조용한 골목으로 조금씩 걸음을 옮겨도 하루가 채워진다. 나는 다음에도 한 동네를 골라 오래 걷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