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여행에서 우암동 골목을 천천히 걸어봤더니

부산에 갈 때마다 바다부터 보러 갔는데, 지난번에는 버스 창밖의 항구 풍경이 마음에 남아 우암동에서 내렸다. 크레인과 컨테이너가 보이는 큰길에서 몇 걸음만 들어가면 낮은 집들이 이어진다. 부산여행이라고 하면 해변의 푸른색을 먼저 떠올리기 쉽지만, 이날 내가 오래 바라본 건 집 앞에 놓인 화분과 골목 끝의 가파른 계단이었다.
걸어보니 우암동 소막마을은 하루를 꽉 채울 관광 코스라기보다 한두 시간 천천히 머물기 좋은 동네였다. 여전히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 발걸음을 늦추게 된다. 길을 찾으려고 멈춰 서는 시간까지 이 동네를 걷는 방식에 들어 있었다.
큰길에서 소막마을로 들어가는 짧은 길
내가 길을 잡을 때 기준으로 삼은 곳은 ‘우암동 소막마을 주택’이었다. 부산 관광 안내에는 남부중앙새마을금고 정류장에서 내려 걸어가는 길이 소개돼 있다. 버스를 타고 왔다면 이 이름을 먼저 확인하는 편이 골목 입구를 찾기 쉽다. 다만 정류장에 도착했다고 바로 마을 한가운데인 것은 아니다. 큰길의 차 소리를 뒤로하고 안쪽으로 조금 들어가야 집들이 가까워진다.
이름이 낯설어 처음에는 소와 관련된 마을인가 싶었다. 실제로 이곳에는 소를 검역하던 시설의 흔적이 있다. 부산시의 기록을 읽고 나서야, 해방 뒤와 한국전쟁 시기에 사람들이 비어 있던 소막사를 삶의 공간으로 바꾸었다는 사연을 알았다. 골목을 걷는 동안 그 이야기를 계속 떠올렸다. 오래된 건물을 보기 전에 누군가의 집이었고, 지금도 생활이 이어지는 동네라는 걸 기억하고 싶었다.
길은 넓고 반듯하게 이어지지 않는다. 갈림길에서 어느 쪽이 맞는지 잠깐 망설이기도 했다. 그럴 때는 멀리 있는 목적지보다 가까운 골목의 흐름을 따라갔다. 주민이 지나가면 길을 비켜서고, 집 문 앞에서는 카메라를 내려놓았다. 조용한 장소를 좋아해서 찾아온 만큼 그 조용함을 깨지 않고 걷는 게 좋았다.
전시관에서 보고 골목에서 다시 본 것
소막마을 주택에 들르면 마을 이름 뒤의 시간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만날 수 있다. 밖에서 볼 때는 오래된 동네의 한 건물처럼 느껴졌는데, 안에서 소막이 주거 공간으로 쓰인 과정을 접하고 나오니 골목의 폭과 집의 모양이 다르게 보였다. 설명을 먼저 읽고 걷는 편이 나에게는 맞았다. 눈에 띄는 장식보다 평범해 보이는 구조에 오래 시선이 머물렀기 때문이다.
전시관을 나온 뒤에는 일부러 걸음을 줄였다. 담벼락 옆에 자리를 내준 화분, 집과 집 사이의 좁은 틈, 오르막 끝에서 조금씩 달라지는 시야가 보였다. 골목이 워낙 생활 가까이에 있어서 사진만 찍으며 빠르게 돌기에는 어색했다. 누군가에게는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일 테니까. 몇 걸음 걷고 멈추는 식으로 돌아다녔더니 한 구역을 보는 데도 생각보다 시간이 걸렸다.
사람이 적다는 말도 조심해서 쓰고 싶다. 내가 걸은 때에는 관광객 무리가 거의 보이지 않아 한적했지만, 언제나 비어 있는 동네라는 뜻은 아니다. 주민에게는 관광객 수와 관계없이 분주한 하루일 수 있다. 그래서 이곳의 매력을 ‘숨겨진 포토존’으로 부르기보다, 가까이서 볼수록 오래된 생활의 층이 드러나는 골목이라고 말하고 싶다.
우암동 골목시장 지나 동항성당까지
마을을 걷다가 조금 더 올라가고 싶다면 우암동 골목시장 쪽에서 동항성당 방향을 잡을 수 있다. 시장 주변에는 장을 보러 온 사람들의 발걸음이 있고, 골목은 점점 경사져 숨이 약간 찬다. 평지 산책을 기대했다면 편한 신발이 필요하다. 나도 중간에 한 번 멈춰 뒤를 돌아봤는데, 집 지붕 너머로 항구의 구조물이 보였다. 방금 전까지 가까이 있던 생활 풍경과 일하는 항구가 한 화면에 들어오는 게 묘했다.
동항성당은 소막마을의 역사와도 이어진다. 부산시 기록에 따르면 한국전쟁 때 이 언덕에 공소가 세워졌고, 이후 성당은 동네와 시간을 함께했다.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부산항은 해변에서 보는 바다와 다르다. 배와 크레인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반짝이는 수평선을 기대하고 올라왔다면 조금 낯설 수도 있다. 나는 오히려 그 낯섦이 좋았다. 부산의 바다가 일터이기도 하다는 사실이 눈앞에서 느껴졌다.
성당 주변은 사람들이 오가는 공간이라 조용히 둘러봤다. 전망을 더 오래 보고 싶어도 통행을 막는 자리에 서 있지 않았고, 건물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지도 현장에서 확인했다. 내려올 때는 올라왔던 길을 되짚었다. 같은 골목인데 내려가는 방향에서는 부두가 보였다가 사라지고, 올라올 때 지나친 작은 가게가 눈에 들어왔다. 한 번 걸은 길을 다시 걸어도 지루하지 않았다.
이 동네에서는 천천히 걷는 편이 좋았다
우암동에서는 유명한 장면 하나를 보고 돌아오기보다 소막마을 주택과 골목시장, 동항성당 사이를 자기 속도로 걷는 시간이 좋았다. 길을 헤매지 않으려고 출발점을 정해두되, 골목 안에서는 시계를 자주 보지 않았다. 오르막이 있으니 물을 챙기고, 해가 지기 전 밝을 때 걸으면 발밑과 갈림길을 보기에도 편하다.
부산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기억난 건 특별한 전망보다 집 사이로 잠깐 보였던 항구였다. 바다가 늘 여행객을 위해 펼쳐져 있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암동에서는 누군가의 하루 곁을 잠시 지나왔고, 그래서 내 발소리도 조금 작아졌던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