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크리스마스 여행 강릉 명주동을 걸어봤더니

크리스마스 무렵 강릉에 갔을 때, 바다보다 먼저 명주동 골목으로 걸어 들어갔다. 반짝이는 장식 앞에서 사진을 찍는 여행도 좋지만, 그날은 오래된 집 사이를 천천히 걷고 싶었다. 명주동에는 시간을 맞춰 봐야 할 큰 행사가 없었다. 대신 생활하는 동네에 잠깐 발을 들인 듯한 편안함이 있었다. 조용한 국내 크리스마스 여행을 생각한다면 이런 하루도 꽤 오래 남는다.
강릉역에서 바다 대신 시내 쪽으로
강릉역에 내리면 바다로 향하는 사람이 많다. 나는 시내 쪽으로 걸었다. 역에서 월화거리 부근까지는 걸어서 20분 남짓. 거기서 조금 더 들어가면 강릉대도호부 관아와 명주동 골목을 만날 수 있다. 처음부터 명주동으로만 곧장 가기보다, 거리의 간판과 오가는 사람을 보며 걷는 편이 이 여행에는 잘 어울렸다.
월화거리와 시장 주변은 사람이 모이는 구간이다. 한적함을 기대했다면 여기서 조금 당황할 수도 있다. 그런데 길 하나를 지나 명주동 안쪽으로 들어가면 걸음의 속도가 달라진다. 차가 지나가는 큰길과 좁은 생활 골목이 가까이 붙어 있어서, 붐비는 곳을 벗어나는 데 긴 이동이 필요하지 않았다. 크리스마스 당일에도 어느 골목이나 비어 있을 거라고 기대하기보다는, 사람이 모이는 곳에서는 잠깐 걷고 조용한 길에서는 오래 머무는 편이 좋다.
관아와 성당 사이에서 천천히 걷기
강릉대도호부 관아 앞에 서면 명주동이 그저 예쁜 카페가 모인 동네는 아니라는 게 느껴진다. 강릉의 옛 중심지였던 자리에 관아가 남아 있고, 가까운 곳에 임당동성당이 있다. 걸어 다닐 만한 거리에 서로 다른 시절의 건물이 놓여 있다. 일부러 순서를 빽빽하게 정하지 않아도 길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나는 관아 주변에서 걸음을 늦춘 뒤 성당 쪽으로 향하는 길이 좋았다. 겨울에는 나뭇잎이 시야를 가리지 않아 건물의 선과 낮은 담이 더 또렷하게 보인다. 성당은 크리스마스에 예배와 방문객이 있을 수 있는 공간이다. 안에 들어가는 일을 여행 일정처럼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고, 현장의 안내와 예배 시간을 먼저 살피는 게 좋겠다. 밖에서 조용히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골목의 분위기를 느끼기에는 충분하다.
이 구간은 유명한 사진 한 장을 남기려고 서두르면 금방 끝난다. 관아를 지나고, 길 건너 작은 가게들을 보고, 다시 성당 쪽으로 걷다 보면 같은 거리가 조금씩 다르게 보인다. 관광지 한 곳에 오래 머무는 여행과는 다른 재미였다.
명주동 골목은 가게보다 길이 기억에 남았다
명주동에는 오래된 건물을 고쳐 쓰는 문화 공간과 카페가 있지만, 어느 한 가게를 목적지로 정할 필요는 없었다. 남문로 쪽 골목을 따라 걷다가 낡은 벽과 새 간판이 나란히 있는 모습을 보고, 모퉁이에서는 다음 길이 어디로 이어질지 잠깐 살폈다. 화려하게 꾸민 거리보다 그런 평범한 장면이 더 편했다.
물론 이곳도 주민이 사는 동네다. 골목이 좁고 집과 가게가 가까워서 사진을 찍다 보면 문 앞을 막기 쉽다. 나는 열린 가게 안에서 쉬고, 주택 앞에서는 발걸음을 옮기는 쪽이 마음 편했다. 사람 적은 장소를 좋아할수록 그곳의 일상을 건드리지 않는 거리가 필요하다. 골목의 매력도 그 일상이 그대로 있을 때 오래 간다.
걷다가 추워지면 문을 연 가게에서 따뜻한 음료 한 잔을 마시면 된다. 다만 크리스마스 전후에는 작은 가게의 휴무나 영업시간이 달라질 수 있다. 꼭 들르고 싶은 곳이 있다면 출발 전에 확인하고, 그렇지 않다면 쉬어 갈 곳을 현장에서 고르는 편이 이 동네와 잘 맞는다. 가게 한 곳이 닫혀 있어도 걸을 길은 남아 있다.
사람 적은 크리스마스를 원한다면
명주동이 언제나 조용한 것은 아니다. 주말이나 연휴에는 인기 있는 카페와 큰길에 사람이 몰릴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이곳을 ‘아무도 없는 숨은 곳’처럼 기대하기보다, 붐비는 길에서 한두 골목 벗어나 천천히 걸을 수 있는 동네로 기억한다. 일정이 자유롭다면 늦은 오후에 도착해 해가 짧아지는 모습을 보며 걷는 것도 좋겠다. 어두워진 뒤에는 좁은 골목을 더 찾기보다 밝은 큰길로 돌아오는 편이 편하다.
겨울 강릉은 걷는 동안 손이 금방 차가워진다. 바다까지 이어서 갈 생각이라면 시간을 넉넉히 두고, 명주동만 볼 날이라면 두꺼운 겉옷과 편한 신발을 챙기는 정도면 충분하다. 짧게 돌아보고 떠나기보다 관아 주변, 성당으로 이어지는 길, 명주동 안쪽 골목을 나누어 걸으면 한 동네의 여러 표정을 볼 수 있다.
내게 그날의 크리스마스는 특별한 장식보다 평범한 골목으로 남았다. 강릉까지 와서 바다를 보지 않느냐는 말을 들을 수도 있겠지만, 어느 집 앞을 지나며 속도를 늦추고 낯선 동네의 하루를 조용히 바라본 시간이 좋았다. 여행이 꼭 일상에서 멀리 벗어나는 일일 필요는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