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관광을 조금 비켜 걸었더니 보였던 동네 길 후기

얼마 전 제주에 갔을 때, 저는 바다보다 먼저 마을 버스 시간표를 봤습니다. 이상하게도 제주도관광을 떠올리면 협재, 성산, 중문 같은 이름이 먼저 나오는데, 막상 오래 기억나는 건 그런 곳에서 한 골목쯤 비켜난 조용한 길이더라고요. 렌터카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빠른 길 말고, 일부러 20분쯤 돌아가는 길을 택하면 제주가 조금 다른 얼굴을 보여줍니다.
제가 좋아하는 여행은 줄 서서 인증 사진을 남기는 쪽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동네 슈퍼 앞 평상, 귤 상자 쌓인 창고, 바람 때문에 낮게 자란 돌담, 학교 앞 횡단보도 같은 것들이 더 오래 남습니다. 사실 이런 풍경은 대단한 볼거리라기보다, 누군가의 하루에 잠깐 기대어 있는 느낌에 가깝습니다.
관광지 옆길에서 시작한 제주도관광
제주에서 사람 적은 장소를 찾는 가장 쉬운 방법은 유명한 곳을 완전히 포기하는 게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유명한 곳 근처에서 방향을 조금만 틀면 됩니다. 예를 들어 큰 해변 주차장에 차를 세우지 않고, 마을 안쪽 공영 주차장 근처에 내려 10분 정도 걸으면 분위기가 확 달라집니다. 카페 음악 소리보다 바람 소리가 먼저 들리고, 사람 발걸음보다 밭일하는 경운기 소리가 더 가깝게 느껴집니다.
제주 서쪽에서는 저지리 쪽이 그랬습니다. 저지오름은 이름이 알려진 편이지만, 아침 이른 시간에는 의외로 조용했습니다. 저는 오전 8시 조금 넘어 도착했는데, 한 바퀴 걷는 동안 마주친 사람은 6명 정도였습니다. 오름 자체가 높고 거창한 산행은 아니라서 걷는 부담도 적었습니다. 숲길은 그늘이 많고, 흙길 냄새가 진하게 올라옵니다. 정상에서 바다를 크게 내려다보는 맛보다는, 나무 사이로 천천히 숨을 고르는 시간이 더 좋았습니다.
근데 이런 곳은 날씨가 큰 차이를 만듭니다. 비 온 다음 날엔 길이 미끄러울 수 있고, 바람 센 날엔 숲 안쪽도 생각보다 서늘합니다. 운동화 하나는 꼭 챙기는 편이 낫습니다. 사진만 생각하고 얇은 신발을 신으면 발바닥이 먼저 지칩니다.
낙천리에서 본 의자 많은 마을
낙천리 아홉굿마을은 처음 갔을 때 조금 웃음이 났습니다. 마을 곳곳에 의자가 놓여 있는데, 누군가 일부러 쉬어 가라고 말을 걸어두고 간 것 같았습니다. 유명 관광지처럼 입구부터 동선이 또렷한 곳은 아닙니다. 그래서 더 좋았습니다. 어디부터 봐야 하는지 정답이 없고, 발길이 가는 쪽으로 천천히 움직이면 됩니다.
제가 걸었던 코스는 마을회관 근처에서 시작해 돌담길을 따라 40분쯤 도는 짧은 산책이었습니다. 중간에 밭 사이로 바람이 훅 지나가고, 멀리 오름 능선이 낮게 보였습니다. 제주도관광을 하다 보면 풍경이 너무 극적으로 보여서 오히려 피곤할 때가 있는데, 이곳은 그 반대였습니다. 눈을 크게 뜨지 않아도 되는 풍경. 그냥 편하게 걸어도 되는 동네였습니다.
- 추천 시간대는 오전 9시 전후나 오후 4시 이후입니다.
- 마을 안에서는 큰 소리로 통화하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 상업 시설이 촘촘한 곳은 아니어서 물은 미리 챙기는 게 편합니다.
솔직히 특별한 체험을 기대하면 심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심심함이 이 마을의 장점이라고 느꼈습니다. 여행지에서 계속 감탄해야 한다는 압박이 없으니까요. 의자에 잠깐 앉아 있으면, 먼 데서 개 짖는 소리와 바람에 부딪히는 나뭇잎 소리가 번갈아 들립니다. 그 정도면 충분한 날이 있습니다.
남원 신흥리, 동백이 없어도 괜찮은 동네
신흥리 동백마을은 겨울 동백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꽃이 한창일 때보다 조금 비껴난 계절에 갔던 날이 더 기억납니다. 꽃이 적으니 사람도 적고, 대신 마을의 생활감이 또렷했습니다. 낮은 집 담장 너머로 빨래가 말라가고, 작은 카페 앞에는 동네 어르신들이 잠깐 앉아 있었습니다.
동백이 피는 시기에는 길이 붉게 변해 확실히 아름답습니다. 다만 그때는 방문객도 늘어납니다. 조용한 제주도관광을 원한다면 꽃 절정만 고집하지 않아도 됩니다. 저는 11월 초와 2월 말 사이의 애매한 시기가 오히려 좋았습니다. 풍경은 덜 화려하지만, 마을이 자기 속도로 움직이는 느낌이 남아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걷는다면 1시간 정도만 잡아도 충분합니다. 마을을 크게 소비하듯 훑기보다, 동백나무 아래 그늘과 돌담의 굴곡을 천천히 보는 쪽이 어울립니다. 간혹 사유지처럼 보이는 길이 있으니, 열린 길과 닫힌 길을 구분하는 감각도 필요합니다. 로컬 여행은 조용한 만큼 조심스러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 적은 제주를 찾을 때 보는 것들
제가 제주에서 장소를 고를 때 기준은 꽤 단순합니다. 대형 주차장보다 마을길이 먼저 보이는지, 리뷰 사진이 전부 같은 구도로 찍혀 있지는 않은지, 주변에 초등학교나 작은 포구가 있는지 봅니다. 이런 곳은 대체로 관광의 속도가 느립니다. 오래 머물러도 할 일이 많지는 않지만, 대신 마음이 덜 소란스럽습니다.
다만 조용한 장소라고 해서 무조건 비밀스럽게 다뤄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주민이 사는 곳이면 생활이 먼저입니다. 차는 지정된 곳에 세우고, 밭담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사진을 찍을 때 집 안쪽이 보이지 않게 조심하는 정도. 이 기본만 지켜도 여행자의 발걸음은 훨씬 가벼워집니다.
제가 실제로 챙기는 작은 기준
- 왕복 1시간 안팎으로 걸을 수 있는 길을 고릅니다.
- 식사는 유명 맛집보다 동네 식당 영업시간에 맞춥니다.
- 비 오는 날엔 오름보다 마을길과 작은 책방을 우선합니다.
- 사진보다 길의 분위기를 먼저 봅니다.
제주도관광은 꼭 큰 풍경을 찾아야만 완성되는 여행은 아니었습니다. 어떤 날은 오름 정상보다 버스가 지나간 뒤의 조용한 도로가 더 좋고, 유명 해변보다 마을 포구의 젖은 밧줄이 더 오래 생각납니다. 다음에 제주에 간다면 또 이름난 곳에서 한 걸음 비켜 걸을 것 같습니다. 거기에는 늘 조금 덜 꾸며진 제주가 있고, 저는 그런 제주 앞에서 마음이 가장 편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