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맛집 찾아 해운대 말고 동네 밥집으로 걸어가봤더니

얼마 전 부산에서 일부러 큰길을 벗어났다
얼마 전 부산에 갔을 때, 제일 먼저 한 일은 유명한 시장이나 바다 앞 식당을 검색하는 게 아니었다. 지하철역에서 한 정거장쯤 떨어진 동네를 골라 천천히 걸었다. 부산맛집이라는 말은 워낙 넓어서, 사실 어디를 가도 간판 몇 개만 지나면 이미 줄 선 집이 보인다. 그런데 저는 그런 곳보다 점심시간이 조금 지나도 동네 분들이 조용히 들어가고, 사장님이 반찬통을 다시 채우는 그런 식당이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이번에 걸었던 곳은 초량과 수정동 사이, 그리고 영도 봉래동 골목 쪽이었다. 관광객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해운대나 광안리처럼 사진 찍는 사람들로 길이 막히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골목 폭은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였고, 낮 1시 40분쯤 되니 식당 안 손님도 절반쯤 빠져 있었다. 그래서 밥 먹는 속도를 괜히 서두르지 않아도 됐다.
초량 골목에서 먹은 백반, 특별한데 조용했다
초량 쪽 골목에서 들어간 작은 백반집은 메뉴판이 아주 단순했다. 된장찌개, 생선구이, 제육볶음 정도. 가격은 1인분 기준 8천 원대였고, 반찬은 다섯 가지가 나왔다. 멸치볶음, 무생채, 콩나물, 김치, 그리고 그날그날 바뀐다는 나물 한 접시. 부산맛집을 찾는다고 하면 보통 돼지국밥이나 밀면을 먼저 떠올리는데, 저는 이런 백반이 오히려 부산의 평일을 더 잘 보여준다고 느꼈다.
찌개는 자극적이지 않았다. 서울에서 먹는 된장찌개보다 멸치 육수 향이 조금 더 또렷했고, 두부가 큼직하게 들어가 있었다. 근데 이 집에서 가장 좋았던 건 맛보다도 분위기였다. 옆자리에는 작업복을 입은 분 두 명이 조용히 밥을 먹고 있었고, 사장님은 텔레비전 소리를 작게 줄여두었다. 식당 안에 오래 앉아 있어도 눈치가 보이지 않는 곳이었다.
- 붐비는 시간은 낮 12시 전후라서 1시 30분 이후가 편했다.
- 혼자 앉기 좋은 2인 테이블이 3개 정도 있었다.
- 반찬 간이 세지 않아 아침 겸 점심으로도 부담이 적었다.
영도 봉래동에서는 국밥보다 골목 분식이 기억났다
영도에 가면 흰여울문화마을이나 태종대 쪽으로 많이 움직이는데, 저는 이번에 봉래동 골목에서 시간을 보냈다. 큰 도로에서 조금만 들어가면 오래된 상가와 주택이 섞여 있고, 오후에는 배달 오토바이 소리보다 동네 어르신들 말소리가 더 잘 들린다. 그 골목에서 만난 분식집은 간판 글자가 조금 바래 있었고, 유리문에는 손글씨로 김밥과 잔치국수 가격이 붙어 있었다.
김밥 한 줄은 3천 원대, 잔치국수는 5천 원대였다. 여행지 물가에 익숙해진 상태라 그런지, 계산할 때 괜히 한 번 더 가격표를 봤다. 국수는 멸치 육수가 맑았고, 고명은 김가루와 부추, 계란지단 정도로 단출했다. 솔직히 화려한 맛은 아니다. 그런데 바람이 조금 차던 날이라 그런지, 따뜻한 국물 한 숟가락이 꽤 오래 남았다.
부산맛집이라는 키워드로 검색하면 사진이 예쁜 곳이 먼저 보인다. 하지만 영도 골목에서 먹은 국수는 사진보다 그 자리의 온도가 더 선명했다. 플라스틱 의자, 오래된 물컵, 냉장고 위에 올려진 귤 몇 개. 이런 것들이 여행을 조금 덜 관광처럼 만들어준다.
사람 적은 시간을 고르면 맛도 다르게 느껴진다
같은 식당이라도 언제 가느냐에 따라 기억이 달라진다. 부산은 특히 주말 점심과 저녁 시간대에 인기 식당 대기가 길어지는 편이다. 제가 다녀본 느낌으로는 오전 11시 이전, 오후 2시 이후, 그리고 저녁 5시 전후가 비교적 한산했다. 물론 가게마다 쉬는 시간이 다르니 문 앞 안내문을 확인하는 습관은 필요하다.
사실 여행 중에 밥 한 끼를 실패하고 싶지 않은 마음은 누구나 있다. 그래서 별점 높은 곳, 리뷰 많은 곳으로 손이 간다. 근데 사람이 너무 많으면 맛을 느끼기 전에 피로가 먼저 온다. 기다리는 동안 주변을 볼 여유도 줄고, 앉자마자 빨리 먹고 나가야 할 것 같은 기분도 든다. 저는 그래서 부산맛집을 찾을 때 리뷰 수보다 사진 속 테이블 간격이나 손님 연령대를 먼저 본다. 동네 분들이 편하게 앉아 있는 집이면 대체로 여행자에게도 크게 불친절하지 않았다.
제가 고르는 기준은 꽤 단순하다
- 역 바로 앞보다 한 블록 이상 들어간 곳을 먼저 본다.
- 메뉴가 10개 넘게 많은 집보다 3~5개 정도인 곳이 편했다.
- 점심 장사 끝 무렵에도 반찬을 새로 내주는 집은 기억에 남았다.
- 관광지 이름을 크게 붙인 간판보다 동네 이름이 들어간 간판이 더 끌렸다.
부산의 맛은 바다 앞에만 있지 않았다
부산에서 맛있는 걸 먹었다고 하면 대개 바다 전망이나 유명한 국밥집을 떠올린다. 물론 그런 곳도 좋다. 저도 돼지국밥 한 그릇을 좋아하고, 밀면 한 젓가락에 여름 기분이 확 살아나는 순간을 안다. 다만 이번 여행에서는 조금 다른 쪽이 마음에 남았다. 초량의 조용한 백반, 영도 골목의 잔치국수, 그리고 식당 밖에서 본 오래된 계단과 빨래 널린 창문 같은 것들.
부산맛집을 찾는 일이 꼭 대단한 한 끼를 찾는 일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어떤 날은 8천 원짜리 백반이 여행 전체의 분위기를 바꾸기도 한다. 사람 많은 곳을 피해서 조금 늦게 걷고, 배가 많이 고파지기 전에 작은 식당에 들어가면 부산은 훨씬 부드럽게 다가온다. 다음에 다시 간다면 저는 또 유명한 거리에서 반 걸음 물러난 골목부터 걸을 것 같다. 거기엔 아직 식지 않은 밥 냄새와, 여행자를 크게 의식하지 않는 부산의 표정이 남아 있으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