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국장 골목에서 옥경이도넛을 직접 사 먹어봤더니

얼마 전 경주에 갔다가 불국사 쪽 큰길을 벗어나 불국장 골목으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관광버스가 서는 쪽은 늘 조금 북적이는데, 시장 안쪽으로 두세 골목만 들어가도 공기가 금방 달라지더라고요. 그날 제 발걸음을 붙잡은 건 화려한 간판이 아니라, 기름 냄새와 설탕 냄새가 섞여 나오는 작은 도넛집이었습니다. 이름은 옥경이도넛. 이미 방송을 통해 아는 사람은 아는 곳이지만, 막상 현장에 서보면 유명세보다 장날의 생활감이 먼저 느껴지는 집이었습니다.
불국사보다 조금 느린 불국장 골목
옥경이도넛은 경주 불국장 안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불국장은 매달 날짜 끝자리가 4일과 9일인 날에 장이 서는 오일장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4일, 9일, 14일, 19일, 24일, 29일에 맞춰 가면 장터다운 풍경을 볼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만 오일장은 날씨나 상인 사정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질 수 있어서, 일부러 먼 길을 간다면 당일 운영 여부는 한 번 더 확인하는 편이 마음이 놓입니다.
제가 갔던 날은 오전 10시가 조금 지난 시간이었는데, 시장은 이미 하루의 절반쯤을 지나온 얼굴이었습니다. 채소 좌판 앞에서는 대파 한 단 가격을 두고 짧은 흥정이 오갔고, 생선 가게 앞에는 스티로폼 박스에서 물기가 흘렀습니다. 관광지 시장처럼 포토존이 잘 꾸며진 분위기는 아닙니다. 대신 사람 사는 속도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저는 이런 곳이 좋습니다. 예쁘게 가공된 여행보다, 누군가의 평일에 잠깐 섞여 걷는 기분이 들거든요.
옥경이도넛 앞에서 줄을 서는 시간
옥경이도넛은 멀리서도 대충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도넛을 튀기는 냄새가 먼저 오고, 그다음 사람들이 멈춰 선 자리가 보입니다. 줄이 길게 늘어선 맛집 풍경과는 조금 다릅니다. 두세 명이 기다리다가 빠지고, 또 동네 어르신이 와서 몇 봉지 사 가고, 장 본 비닐봉지를 든 분이 잠깐 멈춰 서는 식입니다. 여행객도 있지만 동네 손님이 섞여 있어서 분위기가 과하게 들뜨지 않습니다.
솔직히 저는 도넛을 먹으러 일부러 먼 동선을 짜는 편은 아닙니다. 그런데 시장 도넛은 조금 다르더라고요. 매끈한 카페 디저트가 아니라, 종이봉투 안에서 아직 따뜻한 김이 살짝 올라오는 간식입니다. 옥경이도넛도 그런 쪽에 가깝습니다. 투박하고, 기름기가 있고, 손에 설탕이 묻습니다. 근데 그게 단점처럼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장터라는 장소와 너무 잘 맞았습니다.
맛은 세련됨보다 익숙함에 가깝다
첫입은 바삭하기보다 폭신한 쪽이었습니다. 갓 튀긴 도넛 특유의 고소함이 먼저 오고, 뒤로 설탕의 단맛이 따라옵니다. 요즘 유행하는 진한 크림 도넛처럼 한입에 인상이 강하게 박히는 맛은 아닙니다. 대신 두 개째 손이 가는 맛입니다. 커피보다 종이컵 식혜나 시장표 믹스커피가 더 잘 어울릴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가격은 시장 간식답게 부담을 크게 주는 편은 아니었습니다. 정확한 금액은 방문 시점마다 달라질 수 있지만, 대체로 몇천 원 단위로 가볍게 사 먹는 간식이라는 인상이었습니다. 저는 바로 먹을 것과 숙소에서 먹을 것을 나눠 샀는데, 식은 뒤에는 갓 튀겼을 때보다 기름 향이 조금 도드라졌습니다. 가능하면 시장 근처 벤치나 골목 한쪽에서 따뜻할 때 먹는 쪽이 좋습니다.
사람 적은 여행으로 가려면 시간대가 중요했다
옥경이도넛만 보고 가면 사람에 따라 조금 허전할 수 있습니다. 여기는 목적지 하나를 찍고 인증하는 장소라기보다, 불국장 전체를 천천히 걷다가 중간에 만나는 간식에 가깝습니다. 사람 적은 여행을 원한다면 너무 늦은 점심시간보다 오전 9시 30분에서 11시 사이가 괜찮았습니다. 장은 살아 있고, 아직 발걸음이 과하게 몰리지는 않는 시간대였습니다.
대중교통으로 간다면 불국동행정복지센터 쪽 정류장을 기준으로 잡으면 시장 접근이 수월합니다. 버스에서 내려 몇 분만 걸으면 장터 분위기가 시작됩니다. 차를 가져간다면 장날에는 골목 주차가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저는 조금 떨어진 곳에 세우고 걸어 들어갔는데, 그 편이 오히려 좋았습니다. 시장은 차창으로 지나치면 별것 없어 보이지만, 걸어야 보이는 표정이 있습니다.
- 장날은 매달 4일과 9일로 끝나는 날짜를 기준으로 잡기
- 오전 시간대에 가면 장터 분위기와 한적함을 함께 느끼기 좋음
- 도넛은 가능하면 따뜻할 때 바로 먹는 편이 좋음
- 불국사 방문 전후로 40분에서 1시간 정도 여유를 두고 들르기 적당함
불국사 여행에 작은 생활감을 더하는 곳
경주 여행은 자꾸 큰 이름을 따라가게 됩니다. 불국사, 석굴암, 첨성대, 황리단길. 물론 다 좋은 곳입니다. 그런데 그런 코스만 돌다 보면 경주가 조금 박제된 도시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옥경이도넛이 있는 불국장 골목은 그 반대편에 있습니다. 특별한 해설이 없어도, 좌판을 펴고 걷고 사고 먹는 사람들이 경주의 다른 얼굴을 보여줍니다.
저는 옥경이도넛을 먹고 나서 시장을 한 바퀴 더 돌았습니다. 호박잎을 파는 할머니 앞에 잠깐 섰고, 손수레가 지나가길 기다리며 벽에 붙은 오래된 안내문도 봤습니다. 대단한 사건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시간이 오래 남습니다. 여행에서 꼭 멀리 보고 크게 감탄해야 하는 건 아니니까요.
이런 사람에게 잘 맞는 장소
옥경이도넛은 깔끔한 실내 좌석, 긴 디저트 메뉴, 사진 잘 나오는 접시를 기대하고 가면 조금 심심할 수 있습니다. 대신 오일장 특유의 소리와 냄새, 오래된 골목의 보폭, 바로 튀긴 간식 하나를 좋아한다면 꽤 다정하게 기억될 곳입니다. 불국사 주변에서 관광객 많은 식당가가 부담스러웠던 사람에게도 괜찮은 우회로가 됩니다.
다음에 다시 간다면 저는 도넛을 먼저 사기보다 시장을 한 바퀴 돈 뒤 마지막에 살 것 같습니다. 손에 봉투를 들고 골목을 빠져나오면, 여행이 조금 덜 번잡하고 조금 더 사람 사는 쪽으로 기울어지는 느낌이 납니다. 옥경이도넛은 맛 하나만으로 크게 외치는 장소라기보다, 불국장이라는 작은 생활의 장면 속에 있을 때 가장 자연스럽게 빛나는 간식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