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2박 3일, 유명한 곳을 비껴 걸어봤더니 남은 장면들

얼마 전 제주에 다녀왔는데, 이번에는 일부러 이름난 관광지 앞에서 방향을 틀어봤습니다. 사진으로 많이 본 바다보다 동네 슈퍼 앞 평상, 버스가 하루 몇 번 서는 정류장, 밭담 사이로 난 좁은 길이 더 오래 남을 때가 있거든요. 제주도2박3일여행코스라고 하면 보통 동쪽, 서쪽, 남쪽을 빽빽하게 채우지만 저는 조금 다르게 움직였습니다. 하루에 두세 곳만 정하고, 남는 시간은 걷거나 앉아 있는 쪽으로요.
렌터카는 있으면 편하지만, 이번 코스는 운전 피로를 줄이는 쪽으로 잡았습니다. 공항에서 너무 멀리 달리지 않고, 첫날은 제주시 서쪽의 오래된 동네, 둘째 날은 조천과 구좌의 조용한 길, 셋째 날은 다시 공항으로 돌아오기 좋은 해안 마을을 엮었습니다. 이동 시간은 한 번에 30~50분 정도로 끊었고, 붐비는 시간대인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 사이는 식당보다 동네 산책에 두었습니다.
첫날, 공항에서 멀리 도망가지 않기
제주에 도착하면 이상하게 빨리 멀리 가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듭니다. 그런데 첫날부터 서귀포나 성산까지 달리면, 풍경은 보지만 몸이 먼저 지칩니다. 저는 공항에서 차로 20분 안팎인 도두동과 이호동 주변에서 천천히 시작했습니다. 바다는 가깝지만 큰 관광지처럼 사람이 몰리지는 않고,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면 빨래 널린 집과 오래된 식당 간판이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도두봉은 유명해졌지만, 정상만 찍고 내려오는 대신 아래쪽 주택가와 포구를 같이 걸으면 분위기가 꽤 달라집니다. 해 질 무렵보다 오후 4시 전후가 오히려 편했습니다. 노을 시간에는 사람들이 확 늘어나거든요. 포구 근처 작은 분식집이나 동네 카페에서 잠깐 쉬면 첫날의 속도가 낮아집니다. 제주에 왔다는 느낌을 크게 외치지 않아도, 바람 냄새가 먼저 알려줍니다.
첫날 동선
- 공항 도착 후 숙소에 짐 맡기기
- 도두동 골목과 포구 천천히 걷기
- 이호동 해안도로는 차보다 도보로 짧게 보기
- 저녁은 숙소 근처 동네 식당에서 간단히 먹기
첫날 숙소는 제주시 안쪽을 권합니다. 바다 바로 앞 숙소도 좋지만, 2박 3일 일정에서는 동선이 더 중요했습니다. 특히 늦은 비행기로 도착한다면 숙소까지 1시간 넘게 이동하는 건 생각보다 피곤합니다. 여행의 첫 장면을 넉넉하게 남기려면, 멀리 가는 것보다 덜 움직이는 선택이 낫습니다.
둘째 날, 조천에서 구좌까지 느린 길
둘째 날은 조천 쪽으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함덕 해변은 워낙 알려져 있으니 오래 머물기보다, 조금 떨어진 신흥리나 북촌리 쪽으로 걸어 들어가는 편이 좋았습니다. 밭담과 낮은 집, 바다 쪽으로 열린 좁은 길이 이어져서 관광 코스라기보다 누군가의 생활 반경에 잠깐 들어온 느낌이 듭니다. 그래서 더 조심스럽게 걷게 됩니다.
북촌리는 4.3의 기억이 남아 있는 마을이기도 해서, 가볍게 인증 사진을 찍는 곳으로만 대하면 마음이 불편합니다. 마을길을 걸을 때는 큰 소리로 떠들지 않고, 집 안이 보이는 골목에서는 카메라를 내려놓는 게 좋습니다. 여행자는 잠깐 지나가지만, 그곳은 누군가에게 매일의 자리니까요.
점심은 구좌로 넘어가 세화나 평대 주변에서 먹었습니다. 세화 오일장이 열리는 날이면 시장 쪽이 조금 붐비지만, 장날 특유의 소리가 있어 좋습니다. 장이 없는 날에는 평대리 안쪽 골목이 훨씬 한적합니다. 카페도 해안가보다 마을 안쪽을 고르면 대기 없이 앉을 확률이 높았습니다. 커피 맛보다 창밖에 보이는 돌담과 나무 그림자가 더 오래 남는 곳들이 있습니다.
둘째 날 동선
- 오전 9시 전 조천으로 이동
- 신흥리 또는 북촌리 마을길 산책
- 점심 전후 구좌 세화, 평대 쪽으로 이동
- 오후에는 비자림 대신 평대 안쪽 숲길이나 해안 마을 걷기
비자림은 좋은 숲이지만, 성수기와 주말에는 조용한 여행과 조금 멀어질 때가 있습니다. 숲을 꼭 보고 싶다면 개장 직후에 가거나, 구좌의 작은 마을길을 선택하는 것도 괜찮습니다. 실제로 저는 오후 3시쯤 평대리 안쪽 길을 걸었는데, 40분 동안 마주친 여행자가 네 팀도 되지 않았습니다. 바람이 세게 부는 날이라 말소리보다 나뭇잎 소리가 더 컸습니다.
셋째 날, 돌아가기 전 가까운 동네에 머물기
마지막 날은 욕심을 내기 쉽습니다. 비행기 시간이 오후라면 한 곳 더 갈 수 있을 것 같고, 지도에는 아직 저장해둔 장소가 많이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2박 3일 제주 여행에서 마지막 날을 꽉 채우면, 공항 가는 길이 내내 초조해집니다. 저는 애월의 유명 카페 거리 대신, 하귀나 외도 쪽 해안 마을을 짧게 걸었습니다.
하귀에서 외도로 이어지는 길은 바다가 크게 펼쳐지는 구간도 있지만, 중간중간 생활감이 섞여 있습니다. 낚시하는 사람, 산책 나온 주민, 문을 막 연 작은 가게들이 보여서 여행지와 동네의 경계가 흐립니다. 사진을 많이 찍기보다 벤치에 앉아 20분쯤 바람을 맞기 좋았습니다. 마지막 날에는 이런 시간이 더 필요합니다. 이미 본 풍경을 마음 안에서 천천히 눌러 담는 시간요.
공항까지는 차로 20~30분 정도를 잡으면 되지만, 렌터카 반납과 셔틀 이동을 생각하면 최소 1시간 30분 전에는 움직이는 게 편했습니다. 특히 연휴나 여름 성수기에는 주유소와 반납장 대기 시간이 길어집니다. 저는 마지막 식사를 공항 근처가 아니라 외도 안쪽 작은 식당에서 했습니다. 메뉴가 화려하진 않았지만, 옆자리 주민들이 자연스럽게 인사하는 분위기가 좋았습니다.
사람 적은 제주를 위해 미리 덜어낸 것들
이번 제주도2박3일여행코스에서 일부러 뺀 장소도 많습니다. 너무 유명한 카페, 사진 줄이 생기는 해변, 주차장부터 복잡한 숲길은 제외했습니다. 대신 동네마다 한 시간 정도 걸을 시간을 넣었습니다. 사실 여행 코스를 짤 때 가장 먼저 빼야 하는 건 장소가 아니라 조급함일지도 모릅니다.
- 하루 이동 거리는 길게 잡아도 80킬로미터 안쪽
- 식사는 유명 맛집 한 곳보다 동네 식당 두 곳 후보로 준비
- 해 질 무렵 인기 해변은 피하고 오후 늦게 골목 산책
- 사진보다 걷는 시간을 먼저 확보
- 마을 안에서는 주민 생활 공간을 먼저 배려
제주는 생각보다 넓고, 2박 3일은 생각보다 짧습니다. 그래서 모든 방향을 다 보려 하면 섬이 아니라 체크리스트만 남습니다. 이번에는 공항에서 멀지 않은 북쪽과 동북쪽에 집중했더니, 오히려 장면이 선명했습니다. 포구의 낮은 파도, 밭담 위로 앉은 새, 문 닫힌 슈퍼 앞 의자 같은 것들이요.
다시 간다면 조금 더 비워둘 일정
다시 이 코스로 간다면 둘째 날 오후 일정을 더 비워둘 것 같습니다. 여행 중 가장 좋았던 순간은 계획한 장소에 도착했을 때가 아니라, 길을 잘못 들어 조용한 귤밭 옆에 차를 세웠을 때였습니다. 10분만 있으려 했는데 바람이 좋아서 30분을 머물렀습니다. 그런 시간은 일정표에 적어둘 수 없지만, 여행이 끝난 뒤 제일 먼저 떠오릅니다.
제주도2박3일여행코스를 찾는다면 이름난 곳을 모두 담으려는 마음을 조금 내려놓아도 괜찮습니다. 첫날은 가까운 포구, 둘째 날은 조천과 구좌의 마을길, 셋째 날은 공항 가까운 해안 동네. 이 정도만으로도 제주가 꽤 다르게 보입니다. 유명한 장면을 덜어낸 자리에, 이상하게 더 오래 남는 조용한 장면들이 들어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