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키지여행이 아쉬운 날 배다리 골목을 걸었다

얼마 전 패키지여행 일정표를 보다가 한 장소에 머무는 시간이 생각보다 짧다는 걸 새삼 느꼈다. 이동과 숙소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건 분명 편하다. 다만 내 마음에 오래 남는 장면은 이름난 명소보다 길을 잘못 들어선 골목에서 만날 때가 많았다. 그날은 인천 배다리로 갔다. 책방 하나에 들어갔다가 마음에 드는 책을 찾을 때까지 서 있어도 되는 오후를 보내고 싶었다.
도원역에서 천천히 들어간 골목
도원역에서 나와 우각로 쪽으로 걸었다. 창영초등학교를 지나 배다리 헌책방거리로 이어지는 길이다. 인천관광공사가 소개하는 인천둘레길에도 도원역, 우각로, 창영초등학교, 배다리가 차례로 들어간다. 길 찾기가 걱정된다면 이 지점들을 차례로 지도에 찍어두면 편하다. 나는 골목 입구에서 한 번 방향을 확인한 뒤에는 휴대전화를 가방에 넣었다.
역 주변의 차 소리가 조금씩 멀어지자 오래된 건물과 작은 가게가 눈에 들어왔다. 배다리는 관광객을 위해 말끔하게 꾸민 거리라기보다 누군가 계속 살아온 동네에 가깝다. 학교 앞을 지날 때는 통행을 막지 않으려고 걸음을 좁혔고, 주택가에서는 카메라를 꺼내기보다 주변을 그냥 보며 걸었다. 조용한 골목을 좋아해서 찾아온 만큼 그 조용함을 해치고 싶지는 않았다.
헌책방에서는 시계를 덜 보게 됐다
헌책방거리에서는 간판보다 책등을 먼저 보게 됐다. 바깥에 놓인 책을 훑다가 한 권을 집어 들고, 다시 놓고, 다른 책방으로 옮겨갔다. 책방마다 다루는 책과 문을 여는 시간이 달라서 특정 가게만 목표로 삼으면 허탕칠 수도 있다. 몇 곳이 닫혀 있어도 골목 자체를 걷겠다는 마음으로 가면 발걸음이 한결 가볍다.
예전에 패키지여행을 할 때는 ‘다음 장소로 이동할 시간’이 늘 머릿속에 있었다. 배다리에서는 읽던 책의 첫 장이 궁금해 잠시 서 있는 시간이 허락됐다. 대신 볼거리가 연달아 나타나는 곳은 아니다. 화려한 풍경을 기대하면 금방 한 바퀴를 돌았다고 느낄 수 있다. 나는 그 사이사이, 책방 앞에서 사람을 기다리고 가게 문을 여닫는 평범한 모습이 좋았다.
한적한 시간을 원한다면 동선을 짧게
배다리만 보고 돌아간다면 두세 시간 정도를 비워두는 편이 좋겠다. 헌책방거리를 천천히 걷고, 쉬어갈 곳을 찾아 앉았다가, 마음이 남으면 송현근린공원 쪽으로 발을 옮기는 식이다. 인천관광공사가 안내하는 둘레길은 도원역에서 배다리를 거쳐 동인천역까지 이어지지만, 그 길을 전부 걸을 필요는 없다. 나는 발이 피곤해질 무렵 동인천역 방향으로 내려왔다.
사람이 적은 곳을 찾는다면 방문 시각도 조금 생각해야 한다. 주말 행사나 단체 방문이 있는 날에는 같은 골목도 다른 표정을 보인다. 내가 걸은 날에는 책방 앞에서 오래 서 있어도 길을 비켜줘야 할 일이 드물었지만, 언제나 한적하다고 약속할 수는 없다. 책방에 꼭 들어가고 싶다면 떠나기 전에 그날 영업 여부를 확인하는 게 좋다. 닫힌 문 앞에서 아쉬워하는 시간도 여행의 일부지만, 멀리서 왔다면 이야기가 다르니까.
일정표 바깥에 남는 장면
패키지여행은 낯선 지역을 처음 만날 때 든든하다. 이동 거리가 길거나 함께 가는 사람의 걸음이 다를 때는 특히 그렇다. 반면 내가 좋아하는 여행은 작은 구역 하나를 정해두고 그 안에서 시간을 넉넉히 쓰는 쪽이다. 배다리에서는 책을 사지 않고 나와도 괜찮았고, 눈에 띄는 사진 한 장을 건지지 못해도 아쉽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가방 속 책 한 권이 자꾸 손에 닿았다. 그 책을 어느 책방에서 골랐는지보다, 고르기 전 골목을 얼마나 천천히 걸었는지가 더 또렷했다. 다음에 인천에 가면 새 장소를 여러 곳 보태기보다 배다리의 다른 골목으로 한 번 더 돌아 들어가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