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연휴국내여행, 유명 관광지 대신 조용한 항구 동네를 걸어봤더니

지난 설 연휴에 고속도로 휴게소마다 차가 길게 늘어선 걸 보고, 저는 방향을 조금 틀었습니다. 바다를 보러 가되 이름난 해변은 피하고, 사람들이 스쳐 지나가지만 오래 머물지는 않는 동네로 가고 싶었어요. 그렇게 고른 곳이 충남 서천 장항이었습니다. 군산까지는 많이 가도 장항읍 안쪽 골목에서 반나절을 보내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거든요.
설연휴국내여행이라고 하면 보통 가족 단위 숙소, 유명 맛집, 큰 관광지를 먼저 떠올리게 됩니다. 그런데 막상 조용한 시간을 원한다면 기준을 조금 바꾸는 게 낫습니다. 사진으로 이미 익숙한 곳보다, 역과 시장과 강가가 가까이 붙어 있는 작은 동네가 훨씬 편했습니다. 걷는 동안 기다릴 일도 거의 없고, 문 닫힌 가게 앞에서도 묘하게 명절의 온기가 남아 있었어요.
사람이 빠지는 시간에 도착한 장항
제가 장항에 도착한 건 오전 10시 40분쯤이었습니다. 명절 아침 치고는 늦고, 점심 손님이 움직이기엔 조금 이른 시간이었죠. 역 앞은 조용했고 택시 몇 대만 서 있었습니다. 캐리어를 든 사람보다 동네 주민처럼 보이는 분들이 더 많아서, 여행지라기보다 잠시 빌려 걷는 동네 같았습니다.
장항은 대단히 화려한 풍경으로 밀어붙이는 곳은 아닙니다. 대신 거리의 폭, 낮은 건물, 오래된 간판, 철길 주변의 느슨한 공기가 좋습니다. 역에서 시장 쪽으로 걷는 길은 대략 1km 남짓이라 빠르게 걸으면 15분 정도면 닿지만, 저는 사진을 찍고 골목을 들여다보느라 40분 가까이 썼습니다. 명절 연휴에 이 정도 속도로 걸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충분한 이유였습니다.
시장보다 뒷골목이 더 오래 남았다
장항전통시장 근처는 문을 연 집과 닫은 집이 섞여 있었습니다. 명절이라 모든 가게가 활짝 열려 있지는 않았고, 솔직히 식사를 꼭 여기서 해결해야 한다면 선택지가 넓다고 말하긴 어렵습니다. 대신 그 빈틈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셔터가 내려간 가게 앞에 놓인 플라스틱 의자, 골목 안쪽에서 들려오는 TV 소리, 말린 생선 냄새 같은 것들이 관광지의 소음보다 더 또렷하게 남았습니다.
저는 시장 안쪽에서 따뜻한 국물 한 그릇을 먹고, 바로 옆 골목으로 빠졌습니다. 큰길에는 차가 드문드문 지나갔지만 한 블록만 들어가도 발소리가 들릴 만큼 조용했습니다. 유명한 포토존은 없었지만, 낡은 목조 문과 낮은 담벼락 사이로 겨울 햇빛이 비스듬히 들어오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이런 장면은 줄을 서서 찍는 사진보다 오래 갑니다.
강가로 내려가면 명절이 조금 멀어진다
장항에서 마음에 들었던 길은 금강 쪽으로 천천히 내려가는 구간이었습니다. 강 건너편으로 군산이 보이고, 바람은 바다 쪽 냄새를 조금 품고 있었습니다. 차로만 움직였다면 그냥 지나쳤을 거리인데, 걸어서 가니 동네의 높낮이가 보였습니다. 편의점, 작은 식당, 닫힌 미용실, 오래된 여관 간판이 이어지고 그 끝에 강이 나왔습니다.
강변에는 가족 단위 산책객이 몇 팀 있었지만 붐빈다는 느낌은 아니었습니다. 오후 2시가 지나자 오히려 더 조용해졌습니다. 설 당일이나 다음 날에는 점심 이후에 사람들이 친척집으로 돌아가거나 큰 카페로 이동하는 시간이 생기는데, 그 틈을 잘 잡으면 의외로 한적한 길을 만납니다. 저는 벤치에 앉아 20분 정도 강을 봤습니다. 특별한 일을 하지 않았는데도 여행을 했다는 감각이 분명했습니다.
설 연휴에 조용한 국내 여행지를 고르는 기준
몇 해 동안 명절에 국내를 돌아다니며 느낀 건, 사람이 적은 곳은 완전히 비밀스러운 장소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오히려 지도에는 다 나와 있지만 여행자들이 우선순위에 두지 않는 곳에 가깝습니다. 유명 도시 바로 옆의 작은 읍, 종착역 주변, 항구와 시장이 같이 있는 동네, 큰 숙소 단지가 없는 강변이 그랬습니다.
- 유명 관광지에서 차로 20~40분 떨어진 동네를 고르면 체감 인파가 확 줄어듭니다.
- 대형 카페보다 역 앞 다방, 시장 근처 식당, 동네 빵집이 있는 곳이 걷기 좋았습니다.
- 오전 10시 전후나 오후 2시 이후처럼 식사 시간을 살짝 비껴가면 골목이 한결 편합니다.
- 명절에는 휴무가 많으니 식당 한 곳만 믿기보다 간단한 간식과 물을 챙기는 편이 마음이 놓입니다.
이 기준으로 보면 설연휴국내여행은 꼭 멀리 가야 하는 일이 아닙니다. 차가 막히는 방향과 사람들이 몰리는 이름을 피해, 생활권의 바깥쪽을 천천히 밟는 일에 가깝습니다. 저는 장항에서 반나절을 보내고 군산으로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욕심내지 않아서 좋았습니다.
화려하지 않아서 더 편했던 하루
장항을 모두에게 강하게 권하고 싶다는 뜻은 아닙니다. 문 닫은 가게가 많을 수 있고, 날씨가 흐리면 풍경이 조금 쓸쓸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근데 바로 그 점 때문에 명절의 들뜬 피로에서 잠깐 빠져나오기 좋았습니다. 계속 소비하고 이동해야 하는 여행이 아니라, 걷고 멈추고 다시 걷는 하루였으니까요.
사람 적은 국내 여행지는 대개 큰 감탄보다 작은 안도감을 줍니다. 줄을 서지 않아도 되고, 사진을 남기지 않아도 아쉽지 않고, 동네의 평범한 리듬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머물다 올 수 있습니다. 다음 설에도 저는 아마 비슷한 곳을 찾을 것 같습니다. 유명한 목적지의 바로 옆, 명절에도 자기 속도로 흘러가는 조용한 동네로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