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 골목을 천천히 걸어봤더니 관광지 밖의 시간이 더 오래 남았다

얼마 전 방콕에 며칠 머물렀는데, 이상하게도 왕궁보다 오래 기억난 건 골목 안쪽의 세탁소 냄새와 낡은 철문, 오후 네 시쯤 강가에 앉아 있던 동네 사람들의 뒷모습이었다. 방콕여행을 떠올리면 보통 야시장, 루프톱, 사원 이름이 먼저 나오지만 나는 조금 다른 쪽으로 발이 갔다. 사람이 몰리는 곳을 오래 걷기보다, 지도에서 크게 표시되지 않는 동네를 한 정거장씩 내려 걸었다.
물론 방콕은 어디를 가도 완전히 조용하긴 어렵다. 오토바이는 계속 지나가고, 국수집 냄비는 쉴 새 없이 끓는다. 그런데 그 소란이 관광지의 소란과는 조금 달랐다. 사진을 찍으려고 기다리는 줄 대신, 점심 먹고 돌아가는 회사원과 장을 본 아주머니, 학교 끝난 아이들이 있었다.
탈랏노이, 낡은 골목이 아직 일하는 동네
차오프라야 강 동쪽의 탈랏노이는 방콕에서 가장 좋아하게 된 동네다. 차이나타운 옆이라 유명해질 법도 한데, 큰길에서 한 블록만 들어가면 분위기가 확 낮아진다. 오래된 자동차 부품 가게, 녹슨 엔진, 중국식 가옥, 벽화가 같은 골목 안에 섞여 있다. 예쁘게 꾸민 거리라기보다 오래 쓰인 물건들이 아직 자기 자리에 있는 느낌이었다.
나는 오전 9시 조금 넘어 걸었는데, 이 시간이 좋았다. 카페들은 막 문을 열고 있었고, 골목은 아직 뜨거워지기 전이었다. 사진 명소만 찍고 지나가면 40분이면 끝나지만, 부품 가게 앞에서 멈추고 작은 사당을 보고 강가 쪽으로 빠지면 2시간은 금방 간다. 근처 송왓 로드까지 이어 걸으면 오래된 창고와 새로 생긴 작은 가게들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 추천 시간대: 오전 8시 30분부터 11시 사이
- 걷는 흐름: 탈랏노이 골목, 강가 쪽 골목, 송왓 로드
- 좋았던 점: 관광지 느낌보다 생활감이 진하다
- 아쉬운 점: 좁은 길에 오토바이가 자주 지나가 천천히 비켜서야 한다
쿠디친, 강 건너편에서 속도가 느려지는 오후
방콕여행 중 하루는 일부러 강을 건넜다. 왓아룬 주변은 사람이 많지만, 톤부리 쪽 골목으로 조금만 걸어 들어가면 쿠디친이라는 조용한 동네가 나온다. 포르투갈계 공동체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라 작은 성당, 오래된 집, 골목 사이 과자 냄새가 묘하게 섞여 있다.
여기는 뭔가를 많이 보는 장소라기보다 속도를 낮추는 곳에 가깝다. 골목 폭은 좁고 표지판도 크지 않다. 대신 집 앞에 놓인 화분, 낡은 나무문, 강가 쪽으로 새어 나오는 바람이 좋다. 내가 갔을 때는 오후 3시쯤이었는데, 햇볕은 강했지만 관광객은 손에 꼽을 만큼 적었다. 작은 카페에 앉아 얼음을 넣은 커피를 마셨고, 그 30분이 방콕에서 가장 조용한 시간처럼 느껴졌다.
쿠디친을 걸을 때 좋았던 방식
큰 목적지를 정하고 움직이기보다, 왓아룬이나 왕궁 쪽 일정 뒤에 강을 건너 1시간 반 정도 붙이는 편이 자연스럽다. 이동 거리가 길지 않아도 분위기는 꽤 달라진다. 방콕이 늘 화려하고 빠른 도시만은 아니라는 걸 몸으로 알게 되는 동네였다.
방끄라차오, 방콕 옆에 접어둔 초록색 페이지
방콕에서 가장 의외였던 곳은 방끄라차오였다. 행정구역으로는 도심 한가운데 느낌과 조금 떨어져 있지만, 여행자 입장에서는 방콕 일정에 넣기 좋은 초록 섬 같은 곳이다. 배를 타고 짧게 건너면 공기가 확 바뀐다. 고층 건물 대신 나무가 많고, 길은 자전거 속도에 맞춰져 있다.
나는 반나절만 잡았는데도 충분했다. 자전거를 빌려 천천히 돌고, 중간에 작은 수로 옆에서 쉬었다. 유명 시장이 열리는 날에는 사람이 제법 많을 수 있어서, 조용한 시간을 원하면 평일 오전이 낫다. 근데 너무 이른 시간보다 9시 이후가 편했다. 자전거 대여점도 열고, 그늘도 아직 견딜 만하다.
- 머문 시간: 약 4시간
- 이동 느낌: 배 이동 후 자전거로 천천히 도는 방식
- 어울리는 사람: 쇼핑보다 산책과 바람을 좋아하는 여행자
- 주의할 점: 좁은 길이 있어 속도를 내지 않는 편이 좋다
프라카농, 숙소 근처에서 만난 생활형 방콕
프라카농은 화려한 이름으로 소개되는 동네는 아니지만, 나는 숙소를 이 근처에 잡았던 날이 꽤 편했다. 수쿰윗 라인의 번잡함은 남아 있으면서도 중심가보다 한 박자 내려와 있다. 큰 쇼핑몰보다 시장, 국수집, 빨래방, 동네 카페가 눈에 먼저 들어온다.
저녁 6시쯤 역 주변을 걸으면 퇴근하는 사람들과 길거리 음식 노점이 겹친다. 관광객용으로 반짝이는 분위기보다는 실제로 누군가의 하루가 지나가는 장면에 가깝다. 팟카파오 한 접시와 생수까지 해도 부담이 크지 않았고, 혼자 앉아 먹기에도 눈치가 보이지 않았다. 방콕에 여러 번 온 사람이라면 이런 동네에 하루쯤 머물러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 적은 방콕을 찾는 작은 기준
방콕에서 한적한 장소를 찾을 때 나는 유명하지 않은 이름보다 시간대를 먼저 본다. 같은 골목도 오전 10시와 오후 8시는 완전히 다르다. 탈랏노이는 오전, 쿠디친은 늦은 오후, 방끄라차오는 평일 오전이 내겐 가장 편했다. 반대로 주말 시장 시간이나 해 질 무렵의 강변 명소는 예상보다 붐빌 수 있다.
또 하나는 이동 수단이다. 택시로 점만 찍듯 이동하면 동네의 결이 잘 보이지 않는다. BTS나 배를 타고 내려서 15분쯤 걸을 때, 그 도시의 표정이 조금씩 열린다. 편의점 앞 플라스틱 의자, 학교 앞 노점, 골목 안쪽 세탁소 같은 장면이 그때 들어온다.
- 하루에 동네를 2곳 이상 무리하게 넣지 않기
- 점심 직후의 더운 시간에는 실내 카페나 숙소에서 쉬기
- 좁은 골목에서는 사진보다 통행을 먼저 생각하기
- 현금을 조금 준비해 작은 가게에서 편하게 쓰기
방콕은 유명한 장소가 많은 도시라 오히려 작은 장면을 놓치기 쉽다. 그런데 골목을 천천히 걷다 보면, 이 도시는 관광객에게 보여주려고 만든 표정 말고도 여러 얼굴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내게 방콕여행은 점점 더 그런 쪽으로 기울고 있다. 덜 유명한 동네에서 조금 덜 찍고, 조금 더 오래 바라보는 여행. 그 시간이 이상하게 오래 남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