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연휴여행, 유명한 곳을 피해 동네 골목으로 걸어봤더니

얼마 전 추석 연휴 숙소 예약 화면을 보다가 잠깐 멈췄습니다. 이름만 들어도 사람이 몰릴 만한 바닷가와 한옥마을은 이미 가격이 훌쩍 올라 있었고, 사진 속 풍경은 예뻤지만 그 안에 제가 조용히 걸어 들어갈 자리는 별로 없어 보였습니다. 그래서 이번 추석연휴여행은 조금 다르게 잡았습니다. 명절 분위기는 느끼되, 줄 서는 여행 말고 동네 사람이 장을 보고 산책하는 길을 따라가 보기로 했습니다.
제가 고른 곳은 큰 도시의 중심이 아니라, 버스터미널에서 시내버스로 20분쯤 들어가는 작은 동네들이었습니다. 강릉이면 안목보다 주문진 뒤편 주택가, 전주면 한옥마을보다 서학동 골목, 부산이면 해운대보다 영도 봉래동 같은 식입니다. 유명한 간판을 하나 덜어내면 여행은 조금 느려지고, 대신 소리가 또렷해집니다. 대문 여닫는 소리, 방앗간에서 들리는 기계음, 추석 장을 보러 나온 사람들이 나누는 짧은 인사 같은 것들이요.
연휴 첫날, 터미널보다 동네 시장이 먼저였습니다
추석연휴여행에서 제일 먼저 피한 곳은 고속도로 휴게소와 대표 관광지였습니다. 대신 오전 8시쯤 지역 버스터미널에 도착해 근처 재래시장으로 걸었습니다. 명절 전날 시장은 생각보다 붐비지만, 관광객의 붐빔과는 결이 다릅니다. 사람들은 오래 머물지 않고 필요한 것만 빠르게 사고, 가게 주인은 단골의 가족 안부를 묻습니다. 저는 떡집 앞에서 송편 6개짜리 작은 포장을 사고, 시장 끝 분식집에서 국수 한 그릇을 먹었습니다.
가격도 부담이 덜했습니다. 관광지 중심가에서 커피 한 잔이 6천 원을 넘는 곳이 많았는데, 시장 안 식당에서는 잔치국수와 김밥을 합쳐도 8천 원 안팎이었습니다. 대단한 맛집은 아니었지만, 명절 아침에 뜨거운 국물을 앞에 두고 앉아 있으니 그 동네의 하루가 제 여행 안으로 천천히 들어오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사람 적은 길은 지도보다 생활 반경에서 찾았습니다
유명 관광지 옆에도 조용한 길은 있습니다. 다만 검색 화면의 상단에 뜨지 않을 뿐입니다. 저는 보통 초등학교, 우체국, 오래된 목욕탕, 작은 하천을 기준으로 걷습니다. 이 네 가지가 가까이 있으면 대체로 동네의 생활 반경이 보이고, 길이 과하게 꾸며져 있지 않습니다. 사진을 찍으려고 만든 벽화보다, 오래된 담벼락 아래 놓인 화분이 더 오래 눈에 남을 때가 많았습니다.
전주 서학동에서 그랬습니다. 한옥마을 쪽은 한복을 입은 사람들로 꽉 차 있었는데, 도로 하나를 건너 골목 안으로 들어가자 분위기가 금방 낮아졌습니다. 문을 연 작은 책방이 있었고, 그 앞에는 2인용 의자 두 개가 비스듬히 놓여 있었습니다. 카페마다 사람이 줄을 서는 시간에도 그 골목은 거의 비어 있었고, 저는 40분쯤 아무 목적 없이 걸었습니다. 사실 그런 시간이 제일 여행 같았습니다.
제가 쓰는 한적한 동네 기준
- 대표 관광지에서 도보 15분 이상 떨어진 곳
- 프랜차이즈보다 동네 식당과 세탁소가 먼저 보이는 길
- 차량 통행은 있지만 대형 주차장이 없는 골목
- 후기 수가 너무 많지 않은 작은 카페나 책방이 있는 동네
- 오전 9시 이전이나 오후 4시 이후에 걸어도 어색하지 않은 생활권
추석에는 문 닫은 가게도 풍경이 됩니다
연휴 여행을 계획할 때 가장 조심할 점은 영업시간입니다. 특히 추석 당일에는 문을 닫는 식당과 카페가 꽤 많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불편함이 꼭 나쁘지만은 않았습니다. 닫힌 철문 앞에 붙은 손글씨 안내, 가게 안쪽에 쌓인 선물 박스, 골목에 잠깐 세워둔 택배 상자들까지 명절의 표정이 그대로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부산 영도 봉래동을 걸을 때도 그랬습니다. 큰 카페를 찾아갔다가 문이 닫혀 있었고, 대신 근처 슈퍼에서 캔커피를 샀습니다. 바다 쪽으로 내려가는 길에 오래된 조선소 담장이 이어졌고, 골목 사이로는 배 수리하는 냄새와 짠 바람이 같이 올라왔습니다. 관광 안내판이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풍경은 아니었지만, 그 동네가 오래 버텨온 시간이 선명했습니다. 추석연휴여행이라고 해서 꼭 특별한 장면만 찾아야 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족 여행이라면 더 느슨하게 움직이는 게 좋았습니다
명절에는 혼자 떠나는 사람도 있지만, 부모님이나 아이와 함께 움직이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때 유명 관광지를 피하겠다고 너무 외진 곳만 고르면 오히려 피곤해집니다. 제가 해보니 한적한 동네 여행은 이동 시간을 짧게 잡는 게 중요했습니다. 하루에 한 지역만 보고, 식사 장소는 두세 군데 후보를 준비해두는 정도가 적당했습니다.
예를 들어 오전에는 시장과 골목을 걷고, 점심은 동네 백반집이나 국밥집에서 먹고, 오후에는 하천 산책길이나 작은 공원에서 쉬는 식입니다. 이동 거리가 짧으면 가족끼리 대화할 틈이 생깁니다. 차 안에서 서로 예민해지는 시간이 줄고, 걷다가 쉬고 싶을 때 바로 멈출 수 있습니다. 여행을 꽉 채우지 않았는데도 하루가 빈약하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연휴 동네 여행 준비물
- 현금 조금, 작은 시장에서는 아직 편합니다
- 접이식 장바구니, 송편이나 과일을 살 때 좋습니다
- 얇은 겉옷, 아침 골목과 해 질 무렵 하천길은 꽤 서늘합니다
- 물 한 병, 문 닫은 가게가 많을 때 은근히 든든합니다
- 운영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전화 여유, 연휴에는 변수가 많습니다
유명하지 않아서 오래 기억나는 장면들
사람이 적은 곳을 찾아다니다 보면 아주 큰 감탄은 적을 수 있습니다. 대신 작고 오래 가는 장면이 남습니다. 문 앞에 감을 말리는 집, 명절 음식을 나눠 담는 시장 반찬가게, 버스정류장 의자에 앉아 조용히 통화하는 어르신, 오후 햇빛이 비스듬히 내려앉은 골목 같은 것들입니다. 사진으로 보여주면 별것 없어 보이는데, 그 자리에 서 있으면 마음이 조금 누그러집니다.
이번 추석연휴여행에서 가장 좋았던 순간도 유명한 전망대가 아니었습니다. 동네 하천 옆 벤치에 앉아 송편을 하나 먹던 시간이었습니다. 맞은편 아파트 베란다에는 이불이 널려 있었고, 자전거를 탄 아이가 두 번이나 같은 길을 지나갔습니다. 어디 멀리 온 것 같기도 하고, 누군가의 평범한 오후에 잠깐 초대받은 것 같기도 했습니다.
명절 여행은 꼭 큰 계획을 세워야 멋진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사람 많은 곳을 조금 비켜서고, 동네의 속도에 맞춰 걷다 보면 연휴의 피로가 천천히 풀립니다. 내년에도 저는 아마 유명한 이름보다 버스 시간표와 시장 골목을 먼저 볼 것 같습니다. 여행이 일상과 멀어질수록 특별해지는 줄 알았는데, 요즘은 일상에 가까워질수록 오래 남는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