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여행에서 바다보다 오래 기억난 골목들, 직접 걸어본 조용한 하루

바다를 보러 갔다가 골목에 오래 머물렀다
얼마 전 강릉에 다녀왔는데, 이상하게도 제일 또렷하게 남은 건 바다보다 동네 골목이었다. 강릉여행이라고 하면 보통 경포대, 안목해변, 커피거리부터 떠올리게 되지만, 솔직히 사람 많은 곳에 오래 있으면 여행을 왔는지 줄을 서러 왔는지 헷갈릴 때가 있다. 그래서 이번에는 일부러 유명한 동선에서 반 발짝씩만 비켜 걸었다.
강릉은 생각보다 그런 틈이 많은 도시다. 큰길에서는 관광지 특유의 밝은 소리가 나는데, 골목으로 5분만 들어가면 빨래가 널린 집, 낮은 담장, 오래된 슈퍼, 동네 어르신들이 앉아 있는 의자가 나온다. 그 풍경이 참 좋았다. 여행지라기보다 누군가의 평일을 잠깐 빌려 걷는 느낌이었다.
초당동은 순두부보다 골목이 먼저였다
초당동은 순두부로 유명해서 식사 시간에는 꽤 붐빈다. 그런데 식당가를 살짝 벗어나면 분위기가 금방 달라진다. 골목 폭은 차 한 대가 천천히 지나갈 정도이고, 낮은 집들 사이로 소나무가 보인다. 저는 점심시간을 피해서 오후 2시쯤 걸었는데, 그때가 가장 좋았다. 식당 앞 대기줄은 줄어들고, 동네는 다시 조용해지는 시간이다.
초당동 골목의 매력은 화려하지 않다는 데 있다. 예쁜 카페 간판보다 낡은 기와와 오래된 대문이 더 눈에 들어온다. 걷다 보면 관광객이 한꺼번에 몰리는 구간과 동네 사람이 실제로 사는 구간이 아주 얇게 붙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 경계에서 천천히 걸으면 강릉이 조금 다르게 보인다.
- 추천 시간대는 오후 2시부터 4시 사이
- 식당가 바로 옆 골목보다 한두 블록 더 들어간 길이 한적함
- 차량이 다니는 좁은 길이 많아 사진 찍을 때는 길 한가운데 오래 서 있지 않는 편이 좋음
명주동은 오래된 동네의 속도가 남아 있다
강릉여행 중 조용한 동네를 찾는다면 명주동은 꽤 괜찮은 선택이다. 요즘 감성 공간이 조금씩 생기면서 알려지긴 했지만, 여전히 동네의 속도가 느리다. 카페 몇 곳과 작은 책방, 오래된 건물이 섞여 있는데, 전체 분위기는 과하게 꾸민 관광지가 아니라 낡은 동네가 자기 리듬을 지키는 쪽에 가깝다.
제가 걸었던 날은 평일 오후였고, 1시간 정도 골목을 돌았는데 마주친 여행객은 열 명 남짓이었다. 큰 카메라를 든 사람보다 장바구니를 든 주민이 더 많았다. 이런 비율이 마음을 편하게 만든다. 어디를 꼭 찍어야 한다는 압박이 없고, 그냥 벽의 색이나 창문 모양을 보며 천천히 걷게 된다.
명주동에서는 목적지를 촘촘히 잡지 않는 게 좋았다. 작은 전시 공간이나 카페를 하나 정도만 정해두고, 나머지는 발길 닿는 대로 움직이는 편이 동네와 잘 맞는다. 사실 조용한 여행은 효율이 낮아야 재미있다. 30분 만에 다 보는 곳보다, 30분 동안 별일 없이 머무는 곳이 오래 남을 때가 있다.
남대천 근처에서 강릉의 생활감을 만났다
바다에서 조금 떨어져 남대천 쪽으로 가면 강릉의 표정이 또 달라진다. 강변 산책로는 계절에 따라 느낌이 많이 바뀌는데, 사람이 몰리는 해변 산책로와는 결이 다르다. 제가 갔을 때는 자전거 타는 분 몇 명, 천천히 걷는 동네 주민, 벤치에 앉아 통화하는 사람이 전부였다. 바람도 바다 쪽보다 부드럽게 느껴졌다.
남대천 근처는 사진으로 크게 자랑할 만한 장면이 계속 나오는 곳은 아니다. 대신 여행 중 살짝 지친 몸을 풀어주기에 좋다. 카페에서 커피를 들고 20분만 걸어도 충분하다. 강릉역이나 중앙시장 쪽 일정과 이어 붙이기도 편해서, 유명한 장소 사이에 넣기 좋은 숨 고르기 코스다.
제가 걸어본 느린 동선
- 강릉역에서 출발해 명주동 골목을 먼저 걷기
- 점심은 초당동에서 먹되 붐비는 시간을 살짝 피하기
- 오후에는 남대천 근처에서 산책하며 속도 낮추기
- 바다는 해 질 무렵 짧게 보고 숙소로 돌아가기
사람 적은 강릉여행을 하려면 시간을 조금 비틀면 된다
강릉이 붐비는 도시가 된 건 맞다. 주말 점심의 초당동, 오후의 안목해변, 성수기 경포 일대는 조용한 여행과 거리가 멀다. 그런데 시간을 1시간만 비틀어도 체감이 꽤 달라진다. 아침 8시 전의 바닷가, 오후 2시의 동네 골목, 저녁 식사 전의 강변은 같은 도시가 맞나 싶을 만큼 한산하다.
저는 이번에 강릉을 걸으면서 유명한 곳을 피한다기보다, 유명한 곳의 가장 붐비는 표정을 피하는 게 중요하다고 느꼈다. 같은 초당동도 정오와 오후 3시는 완전히 다르고, 같은 바다도 낮 1시와 해 질 무렵은 다른 여행지가 된다. 사람 적은 로컬 장소를 찾는 일은 지도에 없는 비밀 장소를 캐내는 일만은 아니다. 시간을 다르게 쓰는 일이기도 하다.
강릉여행을 계획한다면 하루를 너무 빽빽하게 채우지 않는 쪽을 권하고 싶다. 맛집 두 곳, 카페 세 곳, 해변 네 곳을 돌면 남는 건 체크 표시뿐일 때가 많다. 대신 동네 하나를 천천히 걷고, 마음에 드는 골목에서 잠깐 멈추고, 바람이 괜찮은 벤치에 앉아보는 시간이 있으면 강릉은 훨씬 조용하게 다가온다. 저는 다음에도 강릉에 가면 제일 먼저 바다가 아니라 골목으로 들어갈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