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여행, 유명한 곳보다 골목을 오래 걸어봤더니 남은 것들

낯선 도시에서 먼저 골목으로 들어갔다
얼마 전 베트남여행을 다녀왔는데, 이상하게 이름난 장소보다 숙소 뒤편의 좁은 골목이 더 오래 기억에 남았다. 호찌민이나 다낭처럼 큰 도시를 가면 누구나 한 번쯤 들르는 시장, 전망 좋은 카페, 유명한 식당이 있다. 그런데 그런 곳은 오전 10시만 넘어도 사람 소리와 오토바이 경적이 한꺼번에 밀려와서, 여행을 한다기보다 줄을 따라 움직이는 느낌이 들 때가 많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일부러 조금 늦게 움직이고, 중심가에서 15분쯤 벗어난 동네를 걸었다. 지도 앱에서 별점 4.8짜리 장소를 찾기보다, 숙소 주인이 아침마다 가는 쌀국수집이나 현지 사람들이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골목을 먼저 봤다. 사실 그런 곳은 사진으로 보면 특별해 보이지 않는다. 간판도 낡았고, 메뉴판에 영어가 없는 경우도 많다. 근데 막상 앉아 있으면 그 도시의 하루가 아주 천천히 지나가는 게 보인다.
관광지보다 조용했던 동네의 시간
호찌민 1군에서 벗어나 3군 쪽 주택가를 걸었을 때였다. 중심가에서는 500m만 이동해도 카페와 상점이 빽빽했는데, 골목 안쪽은 분위기가 전혀 달랐다. 낮 2시쯤이라 그런지 문을 반쯤 닫은 작은 가게들이 많았고, 집 앞 그늘에는 사람들이 낮잠을 자거나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오토바이는 많았지만 이상하게 급한 느낌은 덜했다.
다낭에서도 비슷했다. 미케비치 앞 큰길은 언제나 여행객으로 붐볐지만, 해변에서 안쪽으로 10분만 걸어 들어가면 빨래가 바람에 흔들리는 골목이 나왔다. 작은 반미 가게에서 2만 동짜리 반미를 사 먹었는데, 유명 맛집에서 먹은 것보다 기억이 선명하다. 빵은 조금 더 거칠었고, 고수 향은 세게 올라왔고, 아주머니는 계산하면서 별말 없이 얼음차를 한 컵 내주셨다. 그런 장면은 검색 결과 상단에 잘 나오지 않는다.
- 호찌민 1군보다 3군과 10군 쪽 주택가가 한결 조용했다.
- 다낭은 해변 바로 앞보다 안쪽 생활 골목이 느긋했다.
- 하노이는 호안끼엠 호수 주변보다 서호 북쪽 골목이 걷기 편했다.
로컬 장소를 찾을 때 내가 보는 것들
베트남여행에서 사람 적은 장소를 찾고 싶다면, 유명한 지명보다 시간대를 먼저 보는 게 좋았다. 같은 시장도 오전 7시에는 생활의 공간이고, 오후 2시에는 잠깐 비어 있는 공간이 된다. 반대로 저녁 7시 이후에는 여행객과 현지인이 한꺼번에 몰려 전혀 다른 분위기가 된다. 나는 보통 오전 6시 30분에서 8시 사이, 또는 오후 1시에서 3시 사이를 좋아한다. 햇빛은 강하지만 골목은 의외로 조용하다.
또 하나는 의자다. 가게 앞에 낮은 플라스틱 의자가 네다섯 개 놓여 있고, 손님이 오래 앉아 있는 곳이면 대체로 동네 사람의 장소였다. 회전이 빠른 유명 식당은 편하긴 하지만 머무는 맛이 조금 덜하다. 반면 이런 작은 가게는 메뉴가 두세 개뿐이라 고르기도 쉽고, 말이 잘 통하지 않아도 손짓으로 충분히 주문할 수 있었다.
걷기 좋은 기준
- 큰 도로에서 한 블록 안쪽으로 들어간 길
- 구글 지도 리뷰가 100개 이하인 작은 식당이나 카페
- 숙소 직원이 실제로 자주 간다고 말한 장소
- 오전 장사가 끝난 뒤 잠깐 느슨해지는 시장 주변
물론 모든 골목이 편안한 건 아니다. 밤늦은 시간에 조명이 거의 없는 길은 피했고, 귀중품은 숙소에 두고 나왔다. 베트남은 오토바이가 워낙 많아서 길을 건널 때도 천천히, 예측 가능하게 움직이는 게 중요했다. 여행 분위기에 취해서 너무 깊숙이 들어가기보다, 내가 돌아올 길을 계속 확인하는 편이 마음이 놓였다.
기억에 남은 건 특별한 풍경보다 생활감이었다
하노이에서 가장 오래 머문 곳은 의외로 작은 호수 옆 동네였다. 관광 명소로 소개되는 곳은 아니었고, 벤치 몇 개와 운동기구가 있는 평범한 공간이었다. 아침 6시가 조금 넘자 어르신들이 천천히 팔을 돌리고, 학생들은 교복을 입고 자전거를 탔다. 근처 노점에서는 분짜 냄새가 올라왔고, 나는 뜨거운 커피를 들고 30분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 시간이 좋았던 이유는 조용해서만은 아니었다. 누군가의 일상 속에 잠깐 앉아 있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유명한 풍경은 사진으로 남기 쉽지만, 이런 장면은 설명하기가 애매하다. 어디가 예뻤냐고 물으면 딱 짚어 말하기 어렵다. 대신 그날의 습도, 컵에 맺힌 물방울, 오토바이가 지나간 뒤 남은 기름 냄새 같은 것들이 오래 남는다.
베트남여행을 준비하는 사람에게 꼭 유명한 곳을 빼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처음 가는 도시라면 대표적인 장소도 분명 필요하다. 다만 하루 일정 중 2시간 정도는 목적지를 비워두면 좋겠다. 길을 잃지 않을 만큼만 걷고, 마음에 드는 가게가 보이면 들어가고, 너무 시끄러우면 다시 한 골목 옆으로 빠지는 식으로.
다음에 간다면 더 천천히 머물고 싶다
이번 베트남여행에서 알게 된 건, 조용한 장소가 꼭 멀리 있지는 않다는 점이었다. 유명 관광지 바로 옆에도 사람이 적은 길은 있고, 큰 카페 뒤편에도 동네 사람들이 가는 작은 가게가 있다. 차이는 찾는 방식에 있었다. 빠르게 체크하고 이동하는 여행에서는 그런 장소가 잘 보이지 않는다.
나는 다음에 베트남에 간다면 도시 하나를 정해 최소 사흘은 같은 동네에 머물 생각이다. 첫날은 큰길을 걷고, 둘째 날은 골목을 보고, 셋째 날은 전날 지나쳤던 가게에 다시 앉아보고 싶다. 여행이 꼭 더 많은 장소를 보는 일일 필요는 없으니까. 어떤 도시는 유명한 풍경보다, 낯선 골목에서 아무렇지 않게 흘러가던 오후로 오래 남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