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여행, 유명한 곳을 비켜 걸어봤더니 보인 동네의 얼굴

버스 정류장 하나 덜 가서 내렸을 때
얼마 전 제주도여행을 하면서 이상하게 유명한 이름들이 조금 부담스럽게 느껴졌습니다. 공항에서 차로 20분이면 닿는 바다, 지도 앱에 별점이 수천 개 달린 카페, 사진 찍는 줄이 길게 선 오름까지. 물론 그런 곳도 제주답지만, 저는 그날 사람들 발걸음이 조금 덜 닿는 쪽으로 걷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목적지를 정해두고도 버스 정류장 하나 전에 내렸습니다. 제주시 구도심 쪽 작은 골목이었고, 바람은 세지 않았지만 바다 냄새가 은근히 남아 있었습니다. 관광지 특유의 음악 소리보다 세탁소 문 여닫는 소리, 편의점 앞에서 학생들이 나누는 대화가 먼저 들렸습니다. 사실 그런 순간이 여행의 속도를 가장 천천히 만들어줍니다.
제주도여행을 계획할 때 보통 협재, 성산, 애월, 중문 같은 이름을 먼저 떠올리지만, 그 사이사이에 남아 있는 동네 길도 꽤 깊습니다. 큰 간판보다 낮은 담장, 주차장보다 좁은 골목, 전망대보다 동네 슈퍼 앞 의자가 더 오래 기억에 남을 때가 있습니다.
사람 적은 제주를 찾는 작은 기준
저는 제주에서 한적한 장소를 찾을 때 세 가지를 먼저 봅니다. 첫째는 대형 주차장이 있는지, 둘째는 단체 버스가 들어오기 쉬운 길인지, 셋째는 주변에 유명 카페가 몰려 있는지입니다. 이 조건이 모두 맞으면 편하긴 하지만, 조용히 걷기에는 조금 어려운 경우가 많았습니다.
반대로 버스 배차가 30분에서 60분 정도로 듬성듬성하고, 길 이름이 관광 안내판보다 생활 도로 표지에 가까운 곳은 대체로 한산했습니다. 물론 불편함도 있습니다. 화장실을 찾기 어렵거나, 문을 연 식당이 생각보다 적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불편함까지 감수하면 제주가 조금 덜 소비되는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 오전 8시 전후의 포구는 비교적 조용한 편입니다.
- 해수욕장 바로 옆보다 10분쯤 떨어진 마을길이 걷기 좋았습니다.
- 오름은 정상보다 둘레길 입구 주변이 더 차분할 때가 많았습니다.
- 카페는 유명 메뉴보다 동네 주민이 포장해 가는 곳이 편안했습니다.
솔직히 제주에서 완전히 사람 없는 곳을 찾는 건 어렵습니다. 특히 주말과 연휴에는 작은 마을도 금세 붐빕니다. 다만 인기 있는 시간대를 비껴가면 분위기가 확 달라집니다. 같은 해안도로라도 오후 2시와 아침 7시는 전혀 다른 장소처럼 느껴집니다.
구좌 쪽 마을길에서 오래 걸은 날
가장 오래 기억에 남은 곳은 구좌 쪽의 한 마을길이었습니다. 정확한 이름을 크게 말하고 싶지 않은 곳이 있습니다. 알려지면 그 조용함이 금세 달라질 것 같아서요. 작은 포구와 밭담, 낮은 집들이 이어진 길이었고, 걷는 동안 마주친 여행자는 세 팀 정도였습니다.
길은 특별히 화려하지 않았습니다. 검은 돌담 사이로 무가 자라고 있었고, 빈집 담벼락에는 바람에 바랜 페인트가 남아 있었습니다. 바다는 골목 끝에서 잠깐씩 보였습니다. 제주 바다는 정면으로 크게 보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집과 밭 사이로 조금씩 보일 때 더 생활에 가까워집니다.
그날 저는 약 3km 정도를 천천히 걸었습니다. 빠르게 걸으면 40분이면 충분한 거리였지만, 사진을 찍고 의자에 앉고 작은 슈퍼에서 물을 사느라 1시간 30분쯤 걸렸습니다. 근데 그 정도 속도가 딱 좋았습니다. 여행을 많이 다닐수록 일정표에 적힌 개수보다 한 장소에서 멈춘 시간이 더 오래 남는다는 생각을 합니다.
작은 포구가 좋은 이유
제주의 포구는 유명 해변보다 표정이 작습니다. 배가 묶여 있고, 그물 냄새가 나고, 방파제 끝에는 낚시하는 분들이 조용히 앉아 있습니다. 사진으로 크게 티 나는 장면은 아니지만, 실제로 가면 마음이 안정되는 쪽에 가깝습니다.
특히 규모가 작은 포구는 20분만 머물러도 동네의 리듬이 보입니다. 트럭이 들어와 잠깐 멈추고, 어르신이 방파제 쪽을 한번 보고 지나가고, 강아지가 길가 그늘에 누워 있습니다. 저는 이런 장면들이 제주도여행의 균형을 맞춰준다고 느낍니다. 화려한 바다만 보고 돌아오면 어쩐지 제주를 반쯤만 본 것 같거든요.
조용한 제주 여행에서 챙기면 좋은 것들
사람 적은 장소를 찾아다닐수록 준비는 조금 더 현실적이어야 합니다. 유명 관광지처럼 모든 게 가까이 있지 않습니다. 물 한 병, 얇은 바람막이, 보조배터리 정도는 기본으로 챙기는 게 좋았습니다. 제주는 맑다가도 바람이 바뀌면 체감 온도가 금방 내려갑니다.
교통도 미리 봐야 합니다. 렌터카가 있으면 편하지만, 마을 안쪽 길은 주차가 애매한 곳이 많습니다. 저는 가능하면 마을 입구나 공영주차장에 세워두고 걸었습니다. 좁은 골목까지 차를 몰고 들어가면 여행자 입장에서는 편해도 동네 입장에서는 불편할 수 있습니다.
- 지도 앱에서 목적지보다 주변 버스 정류장과 화장실을 먼저 확인했습니다.
- 마을 안에서는 큰 소리로 통화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 사유지처럼 보이는 밭담 안쪽은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 가게가 작을수록 영업시간 변동이 잦아 전화 확인이 편했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조금 조심스럽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로컬 여행은 결국 누군가의 일상 안으로 잠깐 들어가는 일입니다. 여행자가 조금 천천히 움직이면 동네도 덜 피곤하고, 여행도 덜 급해집니다.
제주도여행이 조금 조용해지는 순간
제주를 여러 번 다녀오면서 느낀 건, 좋은 장소가 꼭 멀리 숨어 있는 건 아니라는 점입니다. 유명한 해변에서 15분만 벗어나도 다른 공기가 있습니다. 번화한 카페 거리 뒤편 골목에도 빨래가 널려 있고, 시장 옆 작은 길에는 관광객보다 장을 보러 나온 주민이 더 많습니다.
저는 그런 장면을 볼 때 여행이 일상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아도 된다고 느낍니다. 꼭 거창한 풍경을 가져가지 않아도 됩니다. 조용한 길에서 들은 바람 소리, 슈퍼 앞 평상에 잠깐 앉아 있던 시간, 포구에서 아무 말 없이 본 물결 같은 것들이 여행을 오래 붙잡아줍니다.
다음 제주도여행을 간다면 유명한 곳을 완전히 빼지는 않을 생각입니다. 다만 하루 중 반나절 정도는 지도에 크게 표시되지 않은 길을 비워두고 싶습니다. 제주가 보여주는 가장 다정한 얼굴은, 사람들이 몰리는 순간보다 조금 비켜난 시간에 더 자주 나타났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