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박4일해외여행으로 타이난 골목을 걸어봤더니, 관광지보다 오래 남은 순간들

얼마 전 3박4일해외여행으로 대만 타이난에 다녀왔는데, 이상하게도 유명한 사원보다 동네 세탁소 앞 플라스틱 의자들이 더 오래 기억에 남았다. 아침 7시쯤 골목을 걸으면 오토바이 시동 소리와 두유 냄새가 같이 올라오고, 가게 셔터가 절반쯤 열린 풍경이 여행의 시작처럼 느껴졌다.
타이난은 타이베이처럼 빠르지 않았다. 지하철로 모든 동선을 해결하는 도시도 아니고, 유명 관광지를 이어 붙이면 하루가 꽉 차는 도시도 아니다. 그래서 3박 4일이라는 시간이 오히려 잘 맞았다. 너무 길게 머물면 느슨해지고, 너무 짧으면 골목의 속도를 따라가기 어렵다.
첫날은 목적지를 줄이고 동네에 적응했다
타이난역에 도착한 건 오후 2시가 조금 넘어서였다. 숙소는 서문로 근처 작은 골목 안에 잡았다. 큰 호텔은 아니었고, 1층에 자전거 두 대가 세워진 4층짜리 게스트하우스였다. 방값은 1박에 대략 5만 원대였고, 창문을 열면 맞은편 집 베란다에 널린 수건이 보였다.
첫날에는 일부러 일정을 거의 넣지 않았다. 사실 해외여행 첫날은 공항 이동과 체크인만으로도 몸이 반쯤 지친다. 그래서 숙소 주변 반경 800m 안에서만 걸었다. 국화가 그려진 오래된 간판의 빙수집, 손님이 두 명뿐이던 국수집, 문 앞에 고양이 밥그릇이 놓인 문구점을 천천히 지나쳤다.
저녁은 현지 사람들이 줄 서 있던 우육탕집에서 먹었다. 메뉴판에 한국어는 없었지만 손가락으로 옆 테이블 그릇을 가리키니 금방 주문이 됐다. 국물은 맑았고, 고기는 생각보다 부드러웠다. 유명 맛집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다만 식당 안에서 여행객 목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았고, 그 조용함이 마음에 들었다.
둘째 날, 관광지보다 시장 뒤편이 좋았다
둘째 날 아침에는 타이난 공자묘 쪽으로 걸었다. 공자묘 자체도 좋았지만, 솔직히 더 오래 머문 곳은 그 주변 골목이었다. 붉은 담장을 지나 조금만 옆으로 빠지면 작은 아침 시장이 나온다. 관광객이 사진을 찍는 분위기라기보다, 동네 사람들이 파 한 단과 두부 한 모를 사러 나오는 생활의 장소에 가까웠다.
시장 안에서는 30대쯤 되어 보이는 부부가 함께 만두를 찌고 있었다. 만두 6개가 45대만달러 정도였고, 한국 돈으로 2천 원이 조금 안 되는 가격이었다. 근데 맛보다 좋았던 건 속도였다. 주문하고, 기다리고, 비닐봉지를 받아 들고, 근처 벤치에 앉는 흐름이 아주 자연스러웠다. 여행 중인데도 잠깐 동네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사람 적은 길을 고르는 작은 기준
- 큰 도로에서 한 블록만 안쪽으로 들어간다.
- 기념품 가게보다 세탁소, 철물점, 반찬가게가 보이는 길을 걷는다.
- 구글 평점보다 아침에 불이 켜진 가게를 먼저 본다.
- 사진 명소에서 10분 정도 더 걸어가 본다.
이 기준이 늘 맞는 건 아니다. 어떤 골목은 너무 조용해서 금방 돌아 나오기도 했다. 그래도 그런 시행착오가 있어야 도시의 표면만 보고 지나치지 않게 된다. 타이난은 특히 그런 식으로 걷기에 괜찮은 도시였다. 길이 복잡해도 무섭게 느껴지지 않았고, 골목마다 작은 식당과 사원이 숨어 있었다.
셋째 날은 안핑을 조금 다르게 걸었다
셋째 날에는 안핑으로 갔다. 보통 안핑고보나 안핑수옥을 많이 들르지만, 나는 오전 늦게 도착해서 먼저 항구 쪽 주택가를 걸었다. 중심 거리에서 벗어나니 관광버스 소리가 사라지고, 낮은 집들 사이로 바닷바람이 들어왔다. 벽에는 소금기 때문인지 페인트가 조금씩 벗겨져 있었고, 오래된 창틀 아래에는 화분이 놓여 있었다.
점심은 큰 식당 대신 골목 안 어묵탕집에 들어갔다. 테이블은 네 개뿐이었고, 주인 아주머니가 혼자 주문과 조리를 같이 했다. 국물 한 그릇과 밥을 시켜도 100대만달러를 넘지 않았다. 맛이 엄청 특별하다기보다는, 걷다가 몸이 살짝 지쳤을 때 딱 필요한 따뜻함이 있었다.
안핑은 오후 3시가 지나면 유명한 거리 쪽에 사람이 많아진다. 그래서 나는 그 시간에 카페로 들어가지 않고, 주택가 옆 작은 공원 벤치에 앉았다. 여행 와서 벤치에 30분 앉아 있는 게 아깝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런 시간이 있어야 방금 지나온 길의 냄새와 소리가 천천히 남는다.
3박 4일 동선은 느슨해야 좋았다
이번 3박4일해외여행에서 가장 잘한 건 하루에 큰 동네 하나만 잡은 일이었다. 첫날은 숙소 주변, 둘째 날은 공자묘와 시장 골목, 셋째 날은 안핑, 넷째 날은 역 근처 카페와 서점. 이렇게 나누니 이동에 쫓기지 않았다. 택시를 탄 건 안핑에서 숙소로 돌아올 때 한 번뿐이었고, 나머지는 대부분 버스와 도보였다.
비용도 생각보다 부담스럽지 않았다. 항공권은 시기에 따라 다르지만, 나는 왕복 20만 원대 후반에 잡았다. 숙박 3박은 약 16만 원, 현지 식비와 교통비는 하루 3만 원 안팎이었다. 쇼핑을 크게 하지 않는다면 전체 예산은 50만 원대 후반에서 70만 원대 초반 사이로도 가능해 보였다. 물론 환율과 항공권 가격에 따라 차이는 꽤 난다.
타이난 3박 4일을 느리게 쓰는 방법
- 첫날 밤에는 야시장보다 숙소 주변 식당을 먼저 고른다.
- 둘째 날 오전에는 시장이나 학교 주변 골목을 걷는다.
- 셋째 날에는 유명 장소를 하나만 넣고 나머지는 비워 둔다.
- 마지막 날은 역에서 멀리 가지 않는다.
일정을 빽빽하게 채우면 타이난의 좋은 점이 오히려 흐려진다. 이 도시는 대단한 장면을 계속 보여주는 곳이라기보다, 걷다 보면 작은 장면이 쌓이는 곳에 가깝다. 오래된 셔터, 낮은 담장, 국물 냄새, 천천히 지나가는 자전거 같은 것들. 그런 게 하루 끝에 이상하게 선명해진다.
유명하지 않은 시간이 여행을 살린다
해외여행이라고 하면 보통 대표 명소를 얼마나 봤는지로 말하게 된다. 그런데 나는 이번에 반대로 느꼈다. 많이 보지 않아서 더 잘 본 것 같았다. 타이난의 이름난 장소를 전부 다녀온 건 아니지만, 아침 시장의 젖은 바닥과 저녁 골목의 노란 불빛은 꽤 분명하게 남아 있다.
3박4일해외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꼭 멀리 가거나 화려한 도시를 고르지 않아도 괜찮다. 비행 시간이 짧고, 걷기 좋은 동네가 있고, 하루를 비워 둘 수 있는 곳이면 충분하다. 나에게 타이난은 그런 조건에 잘 맞는 도시였다. 여행에서 돌아온 뒤에도 가끔 그 골목의 느린 공기가 생각난다. 다음에 다시 간다면 유명한 곳을 더 넣기보다, 아침에 문 여는 작은 가게를 하나 더 찾아보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