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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여행에서 산텔레나를 걸어봤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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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여행에서 산텔레나를 걸어봤더니

베네치아에서 가장 오래 기억에 남은 장면은 산마르코 광장이 아니라, 산텔레나의 공원 벤치에 앉아 바람을 쐬던 시간이다. 물 위로 배가 지나가고, 옆에서는 동네 사람들이 자기 속도로 걸었다. 이탈리아여행을 가면 유명한 풍경을 빠짐없이 봐야 할 것 같았는데, 그날은 아무것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사람들의 걸음이 달라지는 동네

산텔레나는 베네치아 카스텔로 지구의 동쪽 끝에 있다. 산마르코 쪽에서 걷기 시작하면 처음에는 기념품 가게와 여행객 사이를 지나지만, 비알레 가리발디를 지나 자르디니 쪽으로 갈수록 길의 표정이 조금씩 바뀐다. 골목에서 지도를 보며 멈춰 선 사람보다 장을 보고 돌아가는 사람, 개와 산책하는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극적인 풍경을 기대하면 처음에는 심심할 수도 있다. 가게가 빽빽하게 이어지지도 않고, 모퉁이를 돌 때마다 사진 찍을 만한 건물이 나타나지도 않는다. 그런데 나는 그 빈틈이 좋았다. 빨래가 걸린 창을 지나고, 작은 다리 앞에서 잠깐 길을 양보하는 일이 이 동네에서는 여행의 일부가 된다. 베네치아에서도 누군가는 매일 같은 길로 집에 돌아간다는 사실이 가까워진다.

길을 걸으며 몇 번이나 뒤를 돌아봤다. 방금 지나온 곳이 특별해서라기보다, 그 평범한 골목에 조금 더 머물고 싶어서였다. 관광지에서 느끼는 설렘과는 다른 감정이었다.

산텔레나로 들어가는 길

걸을 여유가 있다면 산마르코에서 해안길을 따라 카스텔로 방향으로 이동해도 좋다. 나는 자르디니 근처부터 속도를 늦췄다. 비엔날레 전시장 주변을 지나 공원 쪽으로 이어지는 길에는 물가와 나무 그늘이 번갈아 나타난다. 짧은 거리를 정해 놓고 걷기보다, 앉고 싶을 때 앉는 편이 이 동네와 잘 맞았다.

걷는 시간을 줄이고 싶다면 수상버스의 산텔레나 정류장을 목적지로 잡으면 된다. 베네치아 관광 안내 서비스인 베네치아 우니카에도 정류장과 공원 접근 방법이 안내돼 있다. 노선과 운항 간격은 여행하는 날 다시 확인하는 편이 안전하다. 물 위 교통은 익숙해질 때까지 방향을 헷갈리기 쉬워서, 나는 배를 타기 전에 선착장에 적힌 행선지를 한 번 더 읽었다.

이 길에서 편했던 건 돌아가는 방법을 미리 정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다리가 피곤하면 산텔레나 정류장에서 배를 타면 되고, 아직 걷고 싶으면 왔던 골목을 다른 쪽으로 돌아 나갈 수 있다. 베네치아에서는 같은 길도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 꽤 다르게 보였다.

공원에서 보낸 느린 한 시간

산텔레나의 파르코 델레 리멤브란체에 들어서자 물가를 따라 걸을 공간이 넓어졌다. 이곳은 카스텔로의 자르디니와 다리로 이어지는 해안 공원이다. 나무 아래 그늘을 골라 앉으니 바다처럼 탁 트인 물과 건너편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어디를 먼저 봐야 할지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한동안은 배가 지나가는 소리만 들었다. 벤치에 앉은 사람들은 사진을 찍고 곧장 자리를 뜨기보다 이야기를 나누거나 책장을 넘겼다. 나도 가방에서 물을 꺼내 마시며 한참 쉬었다. 베네치아에서 이렇게 오래 앉아 있어도 괜찮은 자리가 있다는 게 반가웠다.

다만 한적함을 약속할 수 있는 곳은 아니다. 자르디니에서는 비엔날레 전시가 열리고, 행사나 주말에는 주변 길의 분위기도 달라진다. 조용히 걷고 싶다면 행사 일정과 겹치는지 살피고, 이른 시간에 들르는 편이 낫겠다. 내가 좋았던 것도 ‘아무도 없는 베네치아’가 아니라 서로의 시간을 방해하지 않고 머물 수 있는 여유였다.

골목을 지나며 남은 것

공원에서 나와 다시 주택가 쪽으로 걸었다. 큰길을 따라 곧장 돌아갈 수도 있었지만, 작은 다리 하나를 건너 다른 골목으로 들어가 봤다. 막다른 물길 앞에서는 되돌아 나와야 했다. 그 정도의 우회는 아깝지 않았다. 목적지를 향해 서두를 때는 보이지 않던 창가의 화분과 낡은 문손잡이가 눈에 들어왔다.

산텔레나를 일정에 넣는다면 볼거리를 여러 개 묶기보다 산책 시간 자체를 넉넉히 잡는 게 좋겠다. 편한 신발과 마실 물을 챙기고, 공원에서는 잠깐이라도 앉아 있기. 주거지 골목에서는 목소리를 낮추고 집 앞을 사진 배경처럼 다루지 않는 것도 자연스러운 예의다. 누군가의 일상을 구경하러 온 여행자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 했다.

베네치아를 떠올리면 여전히 화려한 광장과 운하가 먼저 생각난다. 그래도 다시 간다면 산텔레나의 그 벤치에 앉아 보고 싶다. 그곳에서는 무엇을 봤느냐보다 어떻게 하루를 보냈느냐가 오래 남았다.

이탈리아여행에서 산텔레나를 걸어봤더니 -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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