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포로 여행지 골목으로 걸어봤더니 더 오래 남았다

얼마 전 삿포로에서 하루를 비워 두고, 이름난 명소를 몇 군데씩 찍는 대신 동네를 천천히 걸었다. 역 앞의 큰길을 벗어나니 빵을 사 들고 집으로 가는 사람, 공원 벤치에서 잠깐 쉬는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좋아하는 삿포로 여행지는 이런 장면 사이에 있었다.
사람이 적은 곳을 찾는다고 해서 늘 텅 빈 장소를 기대할 수는 없다. 시간과 계절에 따라 분위기가 꽤 달라진다. 내가 걸었던 길을 중심으로, 찾아가는 방법과 한적했던 순간, 조금 아쉬웠던 점까지 적어 본다.
마루야마에서는 공원보다 골목이 오래 남았다
지하철 도자이선 마루야마공원역에서 나와 처음에는 마루야마 공원 쪽으로 걸었다. 역에서 공원까지는 걸어서 5분 남짓이다. 큰 나무 아래로 들어서자 차 소리가 한 걸음씩 멀어졌다. 공원은 넓고 걷기 좋지만, 내 발걸음이 느려진 곳은 오히려 공원으로 가는 길과 그 주변의 주택가였다.
니시 24초메 부근에는 작은 가게와 일상적인 상점이 이어진다. 간판을 구경하다 빵집 앞에서 잠시 멈추고, 한 블록 뒤로 들어가면 다시 조용한 주택가가 나온다. 유명 가게를 미리 정해 놓지 않아도 산책이 되는 동네다. 다만 골목은 주민의 생활 공간이다. 사진을 찍을 때는 집 안쪽으로 카메라를 들이대지 않으려고 했다.
홋카이도 신궁으로 향하는 길도 이어지지만, 그쪽은 방문객이 모이는 시간대가 있다. 특히 벚꽃철이나 축제 기간에는 한적한 산책을 기대하기 어렵다. 조용히 걷고 싶다면 공원과 신궁만 목표로 삼기보다, 역 주변 상점가와 골목에 시간을 넉넉히 쓰는 편이 좋았다. 커피 한 잔을 들고 서두르지 않는 속도가 이 동네와 잘 맞는다.
나카지마 공원은 남쪽으로 걸을수록 달라졌다
나카지마 공원은 지하철 난보쿠선 나카지마공원역에서 바로 이어진다. 중심가와 가까워서 처음에는 사람이 적은 삿포로 여행지로 떠올리지 않았다. 그런데 연못 앞에서만 머물지 않고 공원 안쪽을 지나 호로히라바시역 방향으로 걸으니, 발걸음 사이의 간격이 조금씩 넓어졌다.
연못 주변에는 사진을 찍는 사람과 산책하는 사람이 함께 있었다. 그 길도 좋지만, 내게는 나무 사이를 따라 걷는 시간이 더 편했다. 운동하러 나온 사람을 마주치고, 벤치에 앉아 잠시 물소리를 들었다. 관광지의 고요함이라기보다 도시가 평소 숨 쉬는 소리에 가까웠다. 삿포로 관광 공식 안내에서도 이 공원을 시민들이 쉬어 가는 장소로 소개한다.
공원에는 호헤이칸과 공연장 같은 볼거리도 있다. 하지만 건물을 모두 둘러보려고 하면 산책이 바빠진다. 나는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천천히 걷는 데 시간을 썼다. 행사나 벚꽃 시즌에는 분위기가 달라질 수 있으니, 조용한 시간을 원한다면 평일 오전이 더 잘 어울리겠다. 중심가에서 멀리 이동할 여유가 없는 날에도 부담 없이 들를 수 있는 길이다.
모에레누마 공원에서는 거리를 넉넉히 잡았다
모에레누마 공원은 동네 골목과는 결이 다르다. 그래도 삿포로에서 사람 사이의 간격을 넉넉하게 느끼고 싶을 때 떠오르는 곳이다. 지하철 도호선 간조도리히가시역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모에레누마 공원 동쪽 입구’ 정류장에서 내렸다. 공원 안내에 따르면 그곳에서 유리 피라미드까지도 도보 약 15분이다. 정류장에 도착한 뒤 바로 풍경의 중심에 서는 여행은 아니다.
길이 길게 뻗어 있어서 처음에는 어디까지 걸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그런데 조금 걷다 보니 그 여백이 좋았다. 유리 피라미드를 멀리 두고 걷는 동안 하늘이 크게 보인다. 모에레산 쪽으로 방향을 바꿔도 좋지만, 넓은 공원인 만큼 한두 곳만 골라 쉬엄쉬엄 보는 편이 내게는 맞았다.
여기는 돌아오는 버스 시간을 먼저 확인하는 게 마음 편하다. 계절에 따라 운행하는 버스가 따로 있고, 바람이 강한 날에는 체감 거리가 더 길어진다. 겨울에는 길 상태도 살펴야 한다. 접근이 간단한 공원은 아니지만, 반나절을 비워 둘 수 있다면 삿포로의 넓은 하늘을 느끼기에는 좋은 장소였다.
세 곳을 하루에 넣지 않아도 괜찮았다
마루야마와 나카지마 공원은 지하철로 찾아가기 쉬워서 각각 다른 날 아침에 걷기 좋다. 모에레누마 공원은 버스 이동과 공원 안에서 걷는 시간을 생각해 반나절을 따로 잡는 편이 여유롭다. 실제로 발걸음을 늦추려면 하루에 많은 장소를 넣지 않는 게 좋았다.
- 가게와 주택가 사이를 걷고 싶다면 마루야마공원역 주변 골목
- 중심가 가까이에서 일상적인 산책을 원한다면 나카지마 공원
- 넓은 공간에서 오래 걷고 싶다면 모에레누마 공원
돌아보면 선명하게 남은 건 특별한 건물 한 채보다 그곳에 가는 길이었다. 마루야마의 작은 가게 앞, 나카지마 공원의 벤치, 모에레누마 공원으로 향하던 긴 보행로. 삿포로에서는 그런 평범한 사이를 걷는 시간이 여행답게 느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