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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크루즈여행에서 트리에스테 골목만 걸어봤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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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크루즈여행에서 트리에스테 골목만 걸어봤더니

배에서 내린 날, 트리에스테의 큰 광장에는 사람들이 바다를 등지고 사진을 찍고 있었다. 나도 잠깐 멈췄지만 오래 머물지는 않았다. 유럽크루즈여행에서 육지에 주어진 시간은 짧다. 그럴수록 이름난 장소를 여러 곳 찍는 대신, 한 동네를 천천히 걷고 싶어진다. 그날 발길이 향한 곳은 산 자코모였다.

큰 광장을 지나 동네 쪽으로

트리에스테는 바다와 시내가 가까워 보여도, 배를 세우는 곳에 따라 걷기 시작하는 위치가 달라진다. 선내에서 받은 하선 안내로 선착장과 복귀 시간을 먼저 확인했다. 휴대전화 지도에는 우니타 광장과 산 자코모 광장 두 곳만 표시해 두었다. 길을 촘촘히 짜면 골목에서 잠깐 멈추는 일조차 일정이 밀리는 것처럼 느껴져서다.

우니타 광장 근처는 확실히 활기가 있었다. 바다를 향해 열린 공간도 시원했다. 그런데 몇 블록을 벗어나니 거리의 소리가 달라졌다. 관광객끼리 서로 사진을 찍어 주는 목소리보다, 장바구니를 든 사람들이 인사를 주고받는 소리가 먼저 들렸다. 가게 앞에 붙은 가격표를 읽다가 길을 한 번 놓쳤는데, 그 덕분에 빨래가 걸린 창문과 작은 식료품점을 오래 보게 됐다.

산 자코모로 가는 길에는 오르막이 있다. 지도에서는 짧아 보여도 햇볕 아래 걸으면 다르게 느껴진다. 편한 신발을 신고, 배로 돌아갈 때 쓸 힘도 남겨 두는 편이 좋다. 나는 올라가는 동안 두 번 쉬었다. 서두르지 않으니 뒤를 돌아봤을 때 건물 사이로 보이는 바다가 더 선명했다.

산 자코모 광장에서 보낸 느린 시간

산 자코모 광장에 도착해서도 곧바로 무엇을 찾지는 않았다. 벤치에 앉아 물을 마시고, 광장을 가로지르는 사람들을 봤다. 누군가는 장을 본 봉투를 들고 지나갔고, 누군가는 아는 사람을 만나 짧은 대화를 이어갔다. 크루즈 여행자의 하루와 이곳 사람들의 평일이 같은 자리에 잠깐 포개지는 느낌이었다.

이 동네가 하루 종일 조용한 곳이라는 뜻은 아니다. 시장이 서는 날과 시간에는 광장 분위기가 달라질 수 있다. 트리에스테 관광 안내에도 산 자코모 일대의 시장이 소개돼 있지만, 나는 시장을 여행의 필수 일정으로 넣지는 않았다. 열려 있으면 천천히 둘러보고, 닫혀 있으면 평소의 광장을 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실제로 걸어 보니 어느 쪽에도 오래 머물 이유가 있었다.

광장에서 이어지는 길은 특별한 전망을 약속하지 않는다. 대신 작은 가게의 진열대와 오래된 건물 입구, 익숙한 길을 걷는 듯한 사람들의 속도가 남는다. 솔직히 사진만 보면 평범한 동네처럼 보일 수 있다. 나는 그 평범함 때문에 좋았다. 배 안에서는 식사와 이동 시간이 또렷하게 정해져 있는데, 여기서는 다음 골목을 언제 돌아 나올지 스스로 정할 수 있었다.

한 끼보다 오래 기억난 동네의 소리

점심 무렵에는 사람이 많이 모인 가게보다 동네 사람들이 잠깐 들렀다 나가는 곳에 마음이 갔다. 메뉴를 빠르게 고르기보다 먼저 자리가 있는지 보고,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봤다. 접시가 부딪히는 소리와 문이 열릴 때마다 들어오는 거리 소리가 섞였다. 관광지에서 먹는 한 끼와 맛을 비교할 수는 없지만, 그날의 식사는 걸음을 잠시 멈춘 시간으로 기억난다.

크루즈 기항지에서는 식사 한 번도 시간 계산이 필요하다. 주문과 계산에 걸리는 시간은 예상보다 길 수 있고, 산 자코모에서 돌아가는 길에도 오르막과 내리막이 남아 있다. 나는 배에서 안내한 복귀 시각을 기준으로 여유를 두고 움직였다. 선착장이 어디인지, 셔틀을 타야 하는지도 항차마다 확인해야 한다. 같은 도시를 방문하더라도 다른 사람의 동선을 그대로 따라가기 어려운 이유다.

골목을 걷는 동안 꼭 가게에 들어가거나 무언가를 살 필요는 없었다. 좁은 보도에서는 주민이 먼저 지나가도록 비켜 서고, 집 창문과 문 앞에서는 카메라를 내렸다. 관광객이 적은 동네라서 더 조심스럽게 걷고 싶었다. 누군가의 일상이 내가 가져갈 풍경이 되기 전에, 그곳이 생활 공간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려고 했다.

배로 돌아가는 길에 남은 것

돌아오는 길에는 처음 지나쳤던 큰 광장을 다시 만났다. 여전히 사진을 찍는 사람이 많았고, 바다 쪽 풍경은 여전히 근사했다. 그런데 내 눈에는 산 자코모의 벤치와 골목 모퉁이가 더 오래 남았다. 유명한 장소가 덜 좋았던 게 아니라, 그날 내 걸음의 속도와 동네의 속도가 잘 맞았던 것 같다.

유럽크루즈여행은 여러 도시를 짧게 만나는 방식이다. 그래서 하루에 한 도시를 다 봐야 할 것 같은 조급함도 생긴다. 트리에스테에서는 그 마음을 조금 내려놓았다. 광장에서 동네까지 걷고, 앉아 쉬고, 다시 배로 돌아온 것이 하루의 전부였다. 짧게 머문 곳이라도 그곳의 평범한 오후를 기억할 수 있다는 걸, 산 자코모 골목에서 알았다.

유럽크루즈여행에서 트리에스테 골목만 걸어봤더니 -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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