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투어, 케이블카 줄 대신 동네 골목을 걸어봤더니

얼마 전 샌프란시스코에 며칠 머물렀는데, 이상하게 금문교보다 동네 슈퍼 앞 풍경이 더 오래 남았다. 관광 사진으로 많이 본 장면들은 분명 멋졌지만, 제 마음이 자꾸 향한 곳은 빵 굽는 냄새가 나는 골목, 개 산책하는 사람들이 천천히 지나가는 언덕, 오후 4시쯤 햇빛이 낮게 깔리는 작은 공원이었다.
샌프란시스코투어라고 하면 보통 피어, 케이블카, 알카트라즈를 먼저 떠올린다. 그런데 사람 적은 여행을 좋아한다면 조금 다른 동선이 더 잘 맞는다. 유명한 곳을 완전히 빼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하루에 명소 5곳을 찍는 대신, 동네 2곳을 천천히 걷고 카페 하나에서 오래 앉아 있는 쪽이 이 도시의 표정을 더 가까이 보여준다.
관광지보다 동네를 먼저 고른 이유
샌프란시스코는 면적으로만 보면 아주 큰 도시는 아니다. 그런데 언덕과 바람, 동네마다 다른 주거 분위기 때문에 체감 거리는 꽤 다르다. 같은 2km를 걸어도 평지 도시의 2km와는 다르다. 그래서 저는 처음부터 욕심을 줄였다. 오전에는 리치먼드 쪽, 오후에는 이너 선셋이나 노 밸리처럼 한 생활권 안에서 움직이는 식이었다.
사실 유명한 전망대는 사람이 몰리는 시간이 비슷하다. 해 질 무렵, 주말 낮, 날씨가 맑은 날에는 조용한 분위기를 기대하기 어렵다. 반대로 평일 오전 9시에서 11시 사이 동네 골목은 꽤 느슨했다. 가게들은 막 문을 열고, 주민들은 커피를 들고 출근하고, 여행자는 괜히 그 속도에 맞춰 천천히 걷게 된다.
- 이동은 하루 2개 동네 정도가 적당했다.
- 언덕이 많아서 신발은 예쁜 것보다 편한 것이 낫다.
- 해안 쪽은 바람이 강해 얇은 겉옷이 거의 필수였다.
- 버스와 트램을 섞으면 걷는 피로가 확 줄었다.
리치먼드와 클레멘트 스트리트, 조용한 식탁 같은 거리
리치먼드 지역의 클레멘트 스트리트는 제 샌프란시스코투어에서 가장 마음이 놓였던 길이다. 큰 간판이 요란한 관광 거리라기보다, 동네 사람들이 장을 보고 밥을 먹는 생활 거리 느낌이 강했다. 중국식 베이커리, 작은 식료품점, 오래된 식당들이 이어지고, 창문 너머로 보이는 테이블 간격도 묘하게 현실적이었다.
저는 이곳에서 점심을 먹고 근처 블록을 40분쯤 걸었다. 길 하나만 벗어나도 주택가가 바로 이어지고, 집 앞 계단에는 화분이 놓여 있었다. 샌프란시스코 특유의 파스텔톤 집들이 관광 엽서처럼 과장되어 보이지 않고, 그냥 누군가의 평일 배경처럼 서 있었다. 솔직히 그게 더 좋았다.
걷기 좋은 시간
점심시간 직전인 오전 11시쯤 도착하면 가게는 열려 있고, 붐비기 전이라 느긋했다. 식사를 마치고 서쪽으로 조금 움직이면 골든 게이트 파크 북쪽 가장자리까지 이어지는데, 공원 안으로 깊게 들어가지 않아도 충분히 숨이 트인다. 길이 넓고 차량 소리도 갑자기 줄어드는 순간이 있다.
이너 선셋에서 만난 안개 낀 오후
이너 선셋은 이름과 달리 제가 갔던 날엔 안개가 먼저 반겨줬다. 근데 그 흐린 분위기가 이상하게 동네와 잘 어울렸다. 9번가 주변에는 작은 서점, 카페, 식당이 모여 있고, 관광객보다 노트북을 펼친 사람이나 장바구니를 든 사람이 더 많았다.
여기서는 특별히 뭘 해야 한다는 압박이 적었다. 커피 한 잔을 마시고, 근처 블록을 돌고, 마음에 드는 가게 앞에서 메뉴판을 오래 보는 정도면 충분했다. 샌프란시스코의 유명한 색감이 햇빛이라면, 이너 선셋의 색감은 안개와 나무 그늘 쪽에 가깝다. 화려하진 않지만 오래 남는다.
- 혼자 걷기 부담이 적은 동네였다.
- 카페와 식당이 가까워 비가 와도 동선을 바꾸기 쉽다.
- 골든 게이트 파크와 붙어 있어 짧은 산책으로 이어가기 좋다.
수트로 하이츠와 랜즈 엔드, 바다를 보는 조용한 쪽
바다를 보고 싶다면 랜즈 엔드는 많이 알려진 편이지만, 시간을 잘 고르면 꽤 한적했다. 저는 평일 오전에 수트로 하이츠 쪽에서 천천히 걸어 내려갔다. 바다 냄새가 먼저 오고, 이어서 바람이 세게 불었다. 사진을 찍는 사람도 있었지만 피어 쪽처럼 복잡하진 않았다.
이 길의 좋은 점은 전망이 갑자기 나타난다는 데 있다. 숲길 같은 구간을 지나면 바다가 열리고, 다시 나무 사이로 들어가면 소리가 조금 죽는다. 금문교를 아주 가까이 보는 투어와는 다르게, 여기서는 도시가 한 걸음 뒤로 물러난 느낌이 든다. 저는 그 거리감이 마음에 들었다.
조금 현실적인 팁
해안 산책로는 날씨에 따라 체감이 크게 달라진다. 맑아도 바람이 차고, 안개가 끼면 금세 서늘해진다. 물과 겉옷을 챙기고, 너무 늦은 시간보다는 낮에 걷는 편이 편했다. 길 자체는 어렵지 않지만 일부 구간은 흙길이라 흰 신발은 조금 아깝다.
노 밸리와 버널 하이츠, 생활감 있는 언덕길
노 밸리는 단정한 주택가와 작은 상점들이 이어지는 동네다. 번화가의 속도보다 훨씬 느리고, 유모차를 미는 사람과 강아지 산책하는 사람이 자연스럽게 많았다. 24번가 주변은 너무 조용하지만은 않아서 혼자 여행할 때도 적당히 안정감이 있었다.
버널 하이츠는 조금 더 로컬의 언덕 느낌이 강했다. 위쪽으로 올라가면 도시가 넓게 보이는데, 유명 전망대처럼 줄 서서 찍는 분위기가 아니라 사람들이 각자 자기 속도로 서 있는 느낌이었다. 어떤 사람은 벤치에 앉아 책을 읽고, 어떤 사람은 바람 때문에 모자를 붙잡고 있었다. 저는 그 장면이 꽤 샌프란시스코답다고 생각했다.
- 노 밸리는 점심 전후에 걷기 편했다.
- 버널 하이츠는 해가 너무 강한 시간보다 오후가 좋았다.
- 언덕길이 부담스럽다면 위쪽까지 차량 이동 후 내려오는 동선이 낫다.
내가 다시 짠 샌프란시스코투어 동선
처음 가는 도시에서는 불안해서 유명한 곳을 많이 넣게 된다. 그런데 샌프란시스코는 조금 덜 채웠을 때 더 잘 보이는 도시였다. 하루를 예로 들면 오전에는 클레멘트 스트리트에서 식사와 산책, 오후에는 이너 선셋에서 커피와 공원 가장자리 걷기, 다음 날에는 수트로 하이츠와 랜즈 엔드만 천천히 보는 정도가 좋았다.
일정표로 보면 빈칸이 많아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 걸어보면 그 빈칸이 오히려 도시를 받아들이는 시간이 된다. 샌프란시스코투어를 화려한 인증 사진보다 동네의 온도로 기억하고 싶다면, 유명한 지점 사이를 빠르게 이동하기보다 한 동네에 2시간쯤 머무는 편이 낫다.
저는 여행이 꼭 대단한 장면으로만 남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빵집 앞에서 잠깐 멈춘 순간, 안개 때문에 계획을 바꾼 오후, 언덕을 오르다 숨이 차서 뒤돌아본 풍경 같은 것들이 결국 더 오래 남는다. 샌프란시스코는 그런 작고 느린 기억을 만들기에 꽤 좋은 도시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