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관광주민증 들고 옥천 골목을 걸어봤더니 생긴 일

얼마 전 옥천에 갔을 때, 역 앞에서 바로 큰 관광지로 움직이지 않고 시장 뒤쪽 골목을 먼저 걸었다. 평일 오전 10시쯤이었는데 문을 반쯤 연 철물점, 천천히 국수를 말아내는 식당, 자전거를 세워두고 커피를 마시는 동네 분들이 보였다. 그날 손에 들고 있던 건 따로 출력한 쿠폰이 아니라 휴대폰 속 디지털관광주민증이었다.
디지털관광주민증은 한국관광공사가 대한민국 구석구석에서 운영하는 지역 여행 혜택 서비스다. 인구가 줄어드는 지역에 여행자가 명예 주민처럼 등록하고, 현장에서 숙박, 체험, 입장료, 식음료 혜택을 받는 방식이다. 2022년 평창과 옥천에서 시작했고, 지금은 여러 지자체로 넓어졌다. 그런데 나는 이걸 단순히 할인권으로만 쓰기엔 조금 아깝다고 느꼈다.
할인보다 먼저 보이는 건 동네의 속도였다
유명 관광지는 대개 이동 동선이 빠르다. 주차장, 매표소, 포토존, 기념품 가게가 한 줄로 이어지고 사람도 같은 방향으로 흐른다. 반면 디지털관광주민증이 연결해주는 지역은 조금 다르다. 혜택처가 큰 관광시설에만 몰려 있지 않고, 작은 카페나 체험장, 로컬 식당, 오래된 문화 공간까지 흩어져 있는 경우가 많다.
옥천에서는 향수호수길처럼 이름난 산책 코스도 좋았지만, 사실 기억에 오래 남은 건 역에서 시장으로 걷는 700m 남짓한 길이었다. 차가 빠르게 달리는 대로를 벗어나 한 블록만 들어가도 간판 색이 낮아지고, 가게 앞 의자가 길 쪽으로 나와 있었다. 관광객을 기다리는 표정보다 동네의 하루를 이어가는 표정에 가까웠다.
발급은 짧고, 현장에서는 한 번 더 확인이 필요했다
발급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대한민국 구석구석 앱이나 웹에서 여행혜택 메뉴로 들어가 디지털관광주민증을 선택하고, 원하는 지역을 고르면 된다. 로그인과 본인 확인을 끝내면 휴대폰 안에 주민증 화면이 생긴다. 현장에서는 가게나 시설에 있는 안내 QR을 찍거나, 직원에게 주민증 화면을 보여주는 식이었다.
다만 혜택은 계절과 업체 사정에 따라 바뀔 수 있다. 어떤 곳은 입장료 50%처럼 체감이 큰 편이고, 어떤 곳은 음료 1잔 할인이나 기념품 제공처럼 작게 다가온다. 그래서 나는 출발 전날 앱에서 해당 지역의 혜택처를 다시 확인한다. 그리고 마음에 드는 곳이 있으면 운영시간까지 같이 본다. 조용한 동네 여행은 즉흥성이 좋지만, 문 닫힌 가게 앞에서 서성이는 시간은 생각보다 쓸쓸하다.
사람 적은 여행에 더 잘 맞는 이유
디지털관광주민증을 쓰다 보면 할인액보다 동선이 달라진다. 예를 들어 단양에서는 도담삼봉 주변만 보고 떠나기보다 읍내 쪽 카페나 강변 산책로를 끼워 넣게 되고, 정선에서는 시장 장날의 붐비는 시간만 피하면 골목 안 식당에서 훨씬 느린 점심을 먹을 수 있다. 강화나 태안처럼 넓은 지역은 차로 유명 지점만 찍고 가기 쉬운데, 혜택처를 지도에서 보다 보면 중간에 쉬어갈 만한 작은 장소가 눈에 들어온다.
내가 좋아하는 방식은 오전에 대표 장소 하나만 보고, 점심 이후에는 혜택처 주변 반경 1km를 걷는 것이다. 1km면 빠르게 걸어도 15분 남짓이지만, 골목을 보고 가게 앞 화분을 보고 하천 옆 벤치에 앉다 보면 한 시간이 금방 지난다. 여행지를 소비하는 느낌보다 잠깐 빌려 사는 느낌이 생긴다.
쓸 만했던 작은 요령
- 주말 오후보다 평일 오전이나 일요일 이른 시간에 움직이면 체감 인파가 확 줄어든다.
- 혜택 금액이 큰 곳보다 동선이 자연스러운 곳을 먼저 고르면 여행 피로가 덜하다.
- 시장, 터미널, 읍내 도서관 주변을 같이 걸으면 관광지와 생활권의 차이가 잘 보인다.
- 방문 전날 앱에서 혜택처와 운영시간을 다시 확인하는 편이 좋다.
반값 여행이라는 말보다 좋은 것
솔직히 디지털관광주민증 하나로 여행 전체 비용이 반으로 줄어드는 경우는 많지 않다. 교통비와 식비까지 생각하면 할인은 여행의 일부다. 그래도 입장료 몇천 원이 줄거나, 카페에서 작은 서비스를 받는 순간이 은근히 기분 좋다. 그보다 더 좋은 건 여행자가 지역 안으로 한 걸음 더 들어갈 명분이 생긴다는 점이다.
유명한 전망대에서 사진을 찍는 일도 여행이지만, 동네 빵집에서 계산을 기다리며 벽에 붙은 중학교 축제 포스터를 보는 일도 여행이다. 디지털관광주민증은 그런 장면을 조금 더 자주 만나게 해준다. 다음에는 평창이나 고창 쪽으로 가볼 생각이다. 큰 목적지를 여러 개 세우기보다, 혜택처 하나와 산책길 하나만 정해두고 나머지는 동네의 속도에 맡기는 쪽이 나에게는 더 오래 남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