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여행에서 맨해튼을 하루 비웠더니, 퀸즈 골목이 더 오래 남았다

얼마 전 뉴욕에 갔을 때 이상하게 타임스스퀘어보다 퀸즈의 낮은 건물들이 더 눈에 들어왔다. 사람들은 미국여행이라고 하면 보통 전망대, 브로드웨이, 센트럴파크를 먼저 떠올리는데, 나는 반나절쯤은 일부러 중심에서 빠져나가고 싶었다. 지하철을 타고 몇 정거장만 지나도 도시의 표정이 금방 달라진다. 간판의 언어가 바뀌고, 커피를 들고 걷는 속도도 조금 느슨해진다.
그날은 퀸즈 아스토리아와 서니사이드 쪽을 걸었다. 엄청난 명소를 찍는 여행은 아니었다. 대신 동네 빵집 앞에서 줄이 길지 않은 시간대를 기다리고, 놀이터 옆 벤치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봤다. 솔직히 말하면 그런 시간이 더 여행 같았다.
맨해튼에서 20분, 분위기는 꽤 멀리 온 느낌
아스토리아는 N, W 라인을 타면 맨해튼 미드타운에서 대략 20분 안팎으로 닿는다. 30 Av 역이나 Broadway 역 근처에서 내리면 바로 동네 생활권이 시작된다. 큰 쇼핑몰이나 반짝이는 거리 대신 2층짜리 상가, 오래된 델리, 그리스식 베이커리, 작은 채소 가게가 이어진다.
관광객이 아예 없는 곳은 아니다. 그래도 맨해튼 주요 거리처럼 계속 어깨가 부딪히는 느낌은 적다. 특히 평일 오전 10시에서 12시 사이에는 동네가 천천히 깨어 있는 분위기다. 카페 안에는 노트북을 펼친 사람보다 신문을 읽거나 서로 안부를 묻는 사람이 더 많았다.
나는 Broadway 역에서 내려 31st Avenue 쪽으로 걸었다. 지하철 고가 아래로 전철이 지나갈 때마다 짧게 그림자가 흔들렸다. 그 소리가 처음에는 거칠게 느껴지는데, 10분쯤 걷다 보면 이상하게 배경음처럼 익숙해진다.
아스토리아에서 좋았던 건 유명함보다 생활감이었다
아스토리아의 재미는 한 장소에 오래 머물 때 생긴다. 예를 들면 카페 한 곳에 들어가 커피를 마시고 바로 나오는 게 아니라, 유리창 너머로 동네의 리듬을 조금 보는 식이다. 어린아이를 유모차에 태운 부모, 식재료 봉투를 들고 가는 할머니, 작업복 차림으로 샌드위치를 사는 사람들. 여행자가 끼어들 틈은 작지만, 바라볼 풍경은 충분했다.
이 동네에서 식사는 너무 계획적으로 잡지 않아도 괜찮았다. 그리스 음식점과 중동식 간식 가게, 남미 음식점이 몇 블록 안에서 자연스럽게 섞인다. 가격은 맨해튼 중심부보다 부담이 덜한 편이었고, 양은 대체로 넉넉했다. 나는 간단히 파이를 하나 사고 근처 벤치에서 먹었는데, 그 시간이 레스토랑 예약보다 편했다.
- 걷기 시작점: N, W 라인 30 Av 역 또는 Broadway 역
- 좋았던 시간대: 평일 오전, 해 지기 전 1시간
- 느낌: 활기 있지만 과하게 붐비지 않는 동네
- 주의할 점: 고가철도 주변은 소음이 있으니 조용한 카페를 원하면 골목 안쪽이 낫다
서니사이드는 더 조용하고, 더 평범해서 좋았다
아스토리아가 여러 문화가 섞인 동네의 활기를 보여준다면, 서니사이드는 한층 낮고 조용하다. 7 라인을 타고 46 St-Bliss St 역이나 40 St-Lowery St 역에서 내리면 된다. 역 이름부터 조금 낯설어서 좋았다. 유명한 포토 스폿이 기다리는 느낌이 아니라, 누군가의 퇴근길을 잠시 빌리는 기분에 가깝다.
서니사이드에서는 특별한 목적지를 만들지 않는 편이 더 어울렸다. 작은 식료품점, 오래된 바, 벽돌 아파트, 나무가 낮게 드리운 주택가가 이어진다. 길이 복잡하지 않아 길을 잃을 걱정도 크지 않다. 실제로 나는 40분 정도 그냥 걸었는데, 지도는 두세 번만 봤다.
근데 이 평범함이 은근히 어렵다. 여행 일정표에 넣기에는 설명이 약해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걸어보면 도시를 사는 사람들의 온도가 느껴진다. 사진으로 크게 남길 장면은 적어도, 나중에 떠올릴 때는 골목 냄새나 저녁 빛이 먼저 생각난다.
사람 적은 미국여행을 원한다면 이렇게 움직였다
뉴욕에서 하루를 전부 로컬 동네에 쓰기 부담스럽다면, 반나절만 빼도 충분하다. 오전에는 맨해튼에서 보고 싶은 전시나 공원을 다녀오고, 오후 3시쯤 퀸즈로 넘어오면 동네의 늦은 낮과 초저녁을 같이 볼 수 있다. 나는 이 흐름이 가장 편했다. 너무 이른 시간에는 가게가 덜 열린 곳도 있고, 너무 늦으면 처음 걷는 동네에서 방향 감각이 흐려진다.
내가 걸었던 짧은 동선
- 맨해튼 미드타운에서 N 또는 W 라인 탑승
- 아스토리아 30 Av 역 하차 후 31st Avenue 주변 산책
- 간단한 점심이나 빵, 커피로 쉬기
- 지하철 또는 버스로 서니사이드 이동
- 40 St-Lowery St 주변 주택가와 상점가 천천히 걷기
이 코스의 장점은 실패해도 손해가 작다는 점이다. 이동 시간이 길지 않고, 힘들면 바로 맨해튼으로 돌아갈 수 있다. 또 식사 선택지가 많아서 굳이 유명 식당 하나에 매달리지 않아도 된다. 미국여행 초반보다 중간쯤, 조금 지쳤을 때 넣으면 오히려 잘 맞는다.
화려한 장면 대신 오래 남는 장면
여행에서 조용한 동네를 걷는 일은 생각보다 용기가 필요하다. 남들이 다 가는 곳을 빠뜨리는 것 같고, 사진으로 증명하기 어려운 시간을 쓰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아스토리아와 서니사이드를 걷고 나서는 그런 시간이 아깝지 않았다. 뉴욕은 높은 빌딩만으로 기억되는 도시가 아니었다.
다음에 다시 미국여행을 간다면, 나는 또 하루쯤은 유명한 일정 사이에 이런 동네를 끼워 넣을 것 같다. 커다란 감탄보다 작은 장면이 오래 남는 날이 있다. 빵 봉투를 들고 걷던 오후, 고가철도 아래로 지나가던 바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서 더 편했던 골목 같은 것들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