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먼플레이스
제너럴리스트의 色다른 이야기

유럽크루즈여행을 직접 타봤더니, 항구 밖 골목이 더 오래 남았다

Last Updated :
유럽크루즈여행을 직접 타봤더니, 항구 밖 골목이 더 오래 남았다

배보다 먼저 기억난 건 항구의 아침이었다

얼마 전 지중해를 따라 움직이는 유럽크루즈여행을 다녀왔는데, 이상하게도 제일 또렷하게 남은 장면은 배 안의 화려한 식당이 아니었다. 새벽 7시쯤 이탈리아 리보르노 항구에 내렸을 때, 젖은 돌바닥 위로 빵집 셔터가 올라가던 소리였다.

크루즈라고 하면 보통 큰 배, 뷔페, 수영장, 공연 같은 것부터 떠올린다. 맞다. 실제로 배 안에는 하루 종일 할 일이 많았다. 12층 갑판에서는 사람들이 선베드에 누워 있었고, 저녁 8시가 되면 정장을 입은 여행객들이 식당 앞에 줄을 섰다. 그런데 나는 그런 장면보다 항구에서 20분쯤 걸어 들어간 동네의 조용한 시장이 더 좋았다.

유럽크루즈여행의 장점은 짐을 계속 풀었다 싸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7박 일정이면 보통 4~6개 도시를 지난다. 바르셀로나에서 출발해 마르세유, 제노바, 리보르노, 치비타베키아를 거치는 식이다. 매일 다른 항구에 닿지만, 밤에는 같은 방으로 돌아온다. 몸은 편한데 마음은 조금 느리게 움직인다.

유명 광장보다 항구 옆 생활 골목

처음에는 나도 기항지마다 대표 관광지를 찍어야 하나 고민했다. 로마에 닿으면 콜로세움, 피렌체 근처면 두오모, 마르세유에서는 노트르담 드 라 가르드. 그런데 크루즈 기항 시간은 생각보다 짧다. 보통 오전 8시에 내려 오후 5시 전후로 돌아와야 한다. 이동 시간을 빼면 실제로 걸을 수 있는 시간은 5~6시간 정도다.

그래서 두 번째 도시부터는 욕심을 줄였다. 마르세유에서는 구항에서 멀리 가지 않고, 르 파니에 골목을 천천히 걸었다. 관광객이 몰리는 중심 계단을 지나 작은 세탁소와 담배 가게가 있는 길로 빠지니 갑자기 조용해졌다. 카페 테이블은 6개뿐이었고, 에스프레소는 1.8유로였다. 옆자리 할아버지는 신문을 접었다 폈다 하며 30분 넘게 같은 자리에 있었다.

제노바에서는 역 근처 큰길보다 비아 델 캄포 뒤편의 좁은 골목이 기억난다. 건물 사이 폭이 3미터도 안 되는 길이 이어졌고, 위쪽 빨랫줄에는 검은 셔츠와 흰 수건이 섞여 있었다. 솔직히 처음엔 조금 낯설었다. 너무 조용했고, 상점 간판도 작았다. 그런데 걷다 보니 그 침묵이 불편하지 않았다. 누군가의 평일 안으로 잠깐 들어온 느낌이었다.

크루즈 일정은 넓게, 하루는 작게 쓰는 편이 좋았다

유럽크루즈여행을 준비할 때 가장 많이 보이는 조언은 기항지 투어 예약이다. 물론 장거리 이동이 필요한 곳은 투어가 편하다. 치비타베키아에서 로마 시내까지는 기차로 약 1시간 10분에서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배 출항 시간을 생각하면 초행자에게는 꽤 긴장되는 거리다.

하지만 모든 항구에서 버스 투어를 고를 필요는 없었다. 도시 중심이 항구와 가까운 곳은 걸어서 충분했다. 바르셀로나는 크루즈 터미널에서 람블라스 거리까지 셔틀과 도보를 섞으면 30분 안팎이었다. 마르세유도 무료 항만 셔틀을 이용하면 구항 근처까지 접근하기 어렵지 않았다.

  • 기항 시간이 6시간 이하라면 한 동네만 정해 걷기
  • 왕복 이동이 3시간을 넘으면 공식 투어나 기차 시간을 여러 번 확인하기
  • 점심 식사는 유명 맛집보다 항구 가까운 동네 식당으로 잡기
  • 배로 돌아오는 시간은 출항 1시간 30분 전으로 넉넉히 잡기

나는 하루에 명소를 3곳 이상 넣지 않았다. 대신 시장 하나, 골목 하나, 작은 공원 하나를 정했다. 리보르노에서는 중앙시장에 들러 2.5유로짜리 포카치아를 사 먹고, 운하 옆 벤치에 앉아 40분쯤 있었다. 그 시간 동안 사진은 거의 찍지 않았다. 물 위로 지나가는 작은 배와 장바구니를 든 사람들을 그냥 봤다.

배 안에서는 화려함보다 반복되는 리듬이 좋았다

크루즈 안의 생활도 의외로 일상적이었다. 아침 6시 30분에 일어나 갑판을 한 바퀴 걷고, 사람이 적은 뷔페 끝자리에서 커피를 마셨다. 대부분은 8시 이후에 움직여서 이른 시간의 배는 꽤 조용했다. 수영장 물결 소리와 직원들이 의자를 맞추는 소리만 들렸다.

저녁에는 공연장보다 배 뒤쪽 산책로를 자주 갔다. 항구를 떠난 뒤 30분쯤 지나면 도시 불빛이 천천히 작아진다. 바다 위에서는 하루가 이상하게 단순해진다. 어디를 더 봐야 한다는 마음도 조금 줄어든다. 사실 그게 크루즈의 가장 큰 장점일지도 모른다. 이동이 여행의 빈틈을 만들어준다.

다만 사람 적은 여행을 좋아한다면 성수기와 대형 선박은 조금 신중히 봐야 한다. 5,000명 이상 타는 배는 식사 시간과 하선 시간에 확실히 붐빈다. 나는 9월 말 일정이었는데도 첫날 뷔페는 꽤 혼잡했다. 대신 조식은 오픈 직후, 하선은 공식 시작 시간보다 20분 늦게 움직이니 훨씬 편했다.

다시 간다면 더 작은 항구를 고를 것 같다

유럽크루즈여행은 생각보다 양면적인 여행이었다. 한편으로는 매우 편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도시를 스치듯 지나간다. 그래서 더더욱 스스로 속도를 정해야 했다. 모두가 가는 전망대에 오르지 않아도 되고, 기념품 거리에서 오래 머물지 않아도 된다. 항구 근처 빵집에서 아침을 먹고, 동네 버스를 한 정거장만 타고, 이름 모를 골목에서 천천히 돌아와도 하루는 충분했다.

다음에 다시 탄다면 산토리니나 베네치아처럼 유명한 곳만 이어진 일정 말고, 트리에스테나 라스페치아, 코토르처럼 조금 작게 걸을 수 있는 항구가 섞인 노선을 고를 것 같다. 크루즈는 큰 여행처럼 보이지만, 결국 기억에 남는 건 작은 장면이었다. 배가 떠난 뒤에도 오래 남는 건 도시 전체가 아니라, 어느 골목의 빛과 커피잔 바닥에 남은 설탕 같은 것들이었다.

유럽크루즈여행을 직접 타봤더니, 항구 밖 골목이 더 오래 남았다 - 요약
유럽크루즈여행을 직접 타봤더니, 항구 밖 골목이 더 오래 남았다 | 커먼플레이스 : https://commonplace.kr/9640
제너럴리스트의 色다른 이야기
커먼플레이스 © commonplace.kr All rights reserved. powered by modoo.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