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코다테여행, 야치가시라 골목 끝까지 걸어봤더니 만난 조용한 바다

얼마 전 하코다테여행을 하면서 가장 오래 기억에 남은 곳은 야경 전망대도, 아침시장도 아니었습니다. 노면전차 종점 근처에서 내려 천천히 걷던 야치가시라 골목과, 그 끝에서 갑자기 열리던 바다였습니다. 관광지라고 부르기엔 조용하고, 동네라고만 하기엔 풍경이 깊은 곳이었어요.
하코다테는 유명한 장면이 선명한 도시입니다. 하코다테산 야경, 고료카쿠, 붉은 벽돌 창고, 해산물 덮밥 같은 이름들이 먼저 떠오르죠. 그런데 조금만 옆길로 빠지면 도시의 속도가 확 느려집니다. 저는 그 느린 쪽의 하코다테가 훨씬 좋았습니다.
노면전차 끝에서 시작한 느린 길
하코다테역 앞에서 야치가시라 방면 노면전차를 탔습니다. 시간은 대략 12분 정도. 전차가 도심을 벗어나며 점점 낮은 집과 오래된 간판이 많아졌고, 종점에 가까워질수록 여행자의 말소리보다 생활 소리가 더 잘 들렸습니다.
야치가시라 정류장에 내리면 특별한 입구 같은 건 없습니다. 바로 그 점이 좋았습니다. 유명 관광지 앞의 커다란 표지판 대신, 작은 상점과 주택, 온천으로 걸어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이 먼저 보입니다. 하코다테여행에서 이런 시작은 꽤 귀합니다.
걷기 좋은 순서
- 하코다테역에서 노면전차로 야치가시라 정류장까지 이동
- 야치가시라 온천 주변 골목을 천천히 산책
- 스미요시 어항 쪽으로 내려가 바다 냄새를 따라 걷기
- 체력이 남으면 다치마치미사키까지 이어 걷기
- 돌아오는 길에 오모리하마 쪽으로 방향을 틀어 해변을 보기
이 코스는 빠르게 돌면 두세 시간이면 충분하지만, 저는 반나절 가까이 썼습니다. 중간에 벤치에 앉고, 골목 사진을 찍고, 온천 앞 자판기에서 음료를 하나 뽑아 마시다 보면 시간이 조금씩 새어 나갑니다. 그게 이 동네와 잘 맞았습니다.
야치가시라 골목은 조용해서 더 선명했다
야치가시라 온천은 관광객도 찾지만, 분위기는 동네 목욕탕에 가깝습니다. 정류장에서 걸어서 5분 정도라 길도 부담이 없습니다. 건물 앞에 서 있으면 수건을 든 동네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오가고, 여행자는 그 흐름에 잠깐 끼어드는 느낌을 받습니다.
솔직히 화려한 온천 리조트를 기대하면 심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코다테의 일상 쪽을 보고 싶다면 이만한 장소가 많지 않습니다. 뜨거운 물에 들어갔다 나온 사람들의 표정, 골목을 지나가는 전차 소리, 언덕 아래로 내려앉는 바람이 모두 꽤 오래 남습니다.
야치가시라에서 좋았던 건 사진보다 감각이었습니다. 가파른 언덕이 갑자기 나오고, 오래된 담장 사이로 바다가 조금씩 보입니다. 관광객이 몰리는 길처럼 발걸음이 재촉되지 않아서, 그냥 걷는 일 자체가 여행이 됩니다.
스미요시 어항에서 본 하코다테의 옆얼굴
야치가시라에서 바다 쪽으로 내려가면 스미요시 어항 주변에 닿습니다. 큰 항구라기보다 동네 끝에 붙은 작은 어항에 가까웠습니다. 방파제 너머로 다치마치미사키 쪽 절벽이 보이고, 반대편으로는 오모리하마 해안선이 길게 이어집니다.
제가 갔던 날은 바람이 조금 세고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사진을 찍으러 온 사람 한두 명, 산책하는 주민 몇 명 정도였어요. 유명한 전망대처럼 감탄사가 터지는 풍경은 아니지만, 하코다테가 바다를 끼고 살아가는 도시라는 사실은 이쪽에서 더 조용히 느껴졌습니다.
다만 이 주변은 생활 공간에 가깝습니다. 낚시를 하거나 항구 시설 가까이 갈 때는 표시와 통행 가능 구역을 잘 봐야 합니다. 여행자가 오래 머물러도 되는 곳과 조심해야 하는 곳의 경계가 있으니, 동네의 리듬을 해치지 않는 쪽이 편했습니다.
다치마치미사키는 유명하지만 한 박자 늦게 가면 다르다
다치마치미사키는 완전히 숨은 장소라고 하긴 어렵습니다. 그래도 하코다테산 전망대나 베이 에어리어에 비하면 훨씬 여백이 있습니다. 야치가시라 정류장에서 걸어서 15분에서 20분 정도, 바다 쪽으로 오르는 길이 이어집니다.
곶에 서면 약 30미터 높이의 절벽 아래로 쓰가루 해협이 펼쳐집니다. 맑은 날엔 바다 건너 아오모리 쪽 윤곽이 보이고, 여름에는 해당화가 피는 구간도 있습니다. 저는 해가 완전히 지기 전, 오후가 느슨해지는 시간에 갔는데 그때의 빛이 참 좋았습니다.
근데 겨울에는 길이나 날씨 영향을 크게 받습니다. 특히 차량 이동은 통제되는 시기가 있어 무리하지 않는 게 낫습니다. 걸어갈 때도 바람이 세면 체감 온도가 훅 내려가니, 하코다테의 바다는 사진보다 먼저 몸으로 옵니다.
사람 적게 걷고 싶을 때
- 아침시장 방문 직후보다 오후 늦은 시간대가 더 차분했다
- 큰 캐리어는 하코다테역에 맡기고 가는 편이 걷기 좋았다
- 바람이 강한 날은 다치마치미사키보다 야치가시라 온천 주변 산책이 편했다
- 노면전차 하루권을 쓰면 중간에 방향을 바꾸기 부담이 적었다
오모리하마에서 여행이 생활처럼 느껴졌다
다치마치미사키 쪽이 절벽의 풍경이라면, 오모리하마는 오래 앉아 있기 좋은 해변입니다. 쓰가루 해협을 따라 이어지는 해안이고, 중간에 다쿠보쿠 소공원 같은 작은 쉼터도 있습니다. 이름난 명소를 찍고 지나가는 느낌보다, 동네 사람이 산책하듯 머무는 분위기에 가깝습니다.
저는 모래 가까이 오래 서 있었습니다. 멀리 하코다테산이 보이고, 도로 쪽으로는 차가 드문드문 지나갔습니다. 바다는 계속 움직이는데 주변은 이상하게 조용해서, 여행 중에 자주 생기는 조급함이 조금 가라앉았습니다.
하코다테여행을 처음 간다면 유명한 장소도 물론 좋습니다. 하지만 하루 정도는 이렇게 동네 끝까지 걸어가 보는 시간이 있었으면 합니다. 야치가시라에서 스미요시 어항, 다치마치미사키와 오모리하마로 이어지는 길은 대단한 이벤트가 없어도 충분했습니다. 저는 그런 길에서 도시를 더 오래 기억하게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