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회마을 대신 골목으로 걸은 안동여행코스, 조용해서 더 오래 남았다

얼마 전 안동역에 내렸을 때, 나는 일부러 제일 먼저 유명한 관광지 이름을 지웠다. 안동 하면 하회마을, 도산서원, 월영교 야경이 먼저 떠오르지만, 사람 많은 곳을 따라가다 보면 이상하게 안동의 생활 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 안동여행코스는 구시장, 태사묘, 신세동 언덕, 임청각 주변처럼 동네의 속도가 남아 있는 곳으로 묶었다.
전체 동선은 천천히 걸으면 반나절, 중간에 밥을 먹고 오래 앉아 있으면 하루 코스로도 괜찮다. 이동 거리는 길게 잡아도 5~6km 정도라 택시 한 번 섞으면 부담이 확 줄어든다. 솔직히 사진 명소만 찾는 여행이라면 조금 심심할 수 있다. 그런데 골목의 냄새, 시장의 말소리, 오래된 담장 옆의 바람을 좋아한다면 안동이 꽤 다르게 보인다.
구시장 골목에서 시작한 조용한 안동여행코스
나는 안동 구시장 쪽에서 걷기를 시작했다. 오전 10시 전후의 시장은 아직 관광객보다 장 보는 사람이 더 많다. 안동관광 안내에도 구시장은 1970년에 개설된 상설시장이고, 점포가 350개가량 있는 시장으로 소개된다. 숫자로 보면 꽤 큰 시장인데, 골목 안으로 들어가면 이상하게 생활 반경이 좁아진다. 생선 냄새, 채소 박스, 막 문을 여는 식당의 국물 냄새가 한꺼번에 온다.
찜닭골목은 유명해서 식사 시간이 되면 사람이 몰린다. 나는 점심보다 조금 이른 시간에 지나가고, 대신 떡볶이 골목 쪽에 잠깐 섰다. 이 골목은 30년 넘게 이어진 노점들이 1번부터 14번까지 줄지어 있는 구조라 처음 가도 길을 잃기 어렵다. 떡볶이 한 접시를 먹고 나면 여행이 갑자기 관광이 아니라 외출처럼 느껴진다. 이 느낌 때문에 안동여행코스를 짤 때 시장을 앞에 두는 편이다.
- 추천 시간대: 오전 9시 30분~11시 30분
- 분위기: 관광지보다 생활 시장에 가까움
- 혼잡도: 점심시간과 주말 식사 시간만 피하면 비교적 여유로움
태사묘는 작지만 오래 머물게 되는 곳
구시장에서 태사묘까지는 걸어서 10분 안팎이다. 큰길보다 작은 상점 사이로 난 길을 택하면 조금 더 느리지만 덜 번잡하다. 태사묘는 안동의 이름과도 이어지는 장소다. 고려 태조 왕건을 도운 김선평, 권행, 장정필 세 사람의 위패를 모신 곳이고, 안동관광 안내에는 경상북도 기념물 제15호로 소개되어 있다. 규모가 커서 압도하는 장소라기보다, 낮은 담장 안에 시간이 앉아 있는 느낌이다.
관람 소요 시간은 약 30분이면 충분하다고 되어 있지만, 나는 보통 마당에서 10분쯤 더 머문다. 관광버스가 몰려오는 코스가 아니라서 발소리가 크게 들린다. 나무 그림자가 기와 위로 옮겨가는 걸 보고 있으면 안동의 첫인상이 조금 차분해진다. 근데 여기서 중요한 건 너무 많은 걸 해설처럼 외우려 하지 않는 것이다. 그냥 조용히 걸어도 좋다. 오래된 장소는 설명보다 침묵이 먼저 들어올 때가 있으니까.
신세동 벽화마을은 사진보다 숨이 먼저 차는 언덕
태사묘에서 신세동 벽화마을까지는 도보로 15~20분 정도 잡으면 된다. 이 구간은 안동의 시내 결이 조금씩 바뀌는 길이라 재미있다. 낮은 상가가 이어지다가 어느 순간 언덕이 나오고, 골목이 좁아진다. 안동관광 안내에는 신세동 벽화마을을 동문동 일원으로 소개하고, 가파른 언덕을 천천히 쉬어가며 걷는 마을이라고 적고 있다. 실제로 그렇다. 예쁜 벽화만 기대하고 가면 생각보다 숨이 찬다.
나는 이곳에서 카메라를 자주 내려놓는다. 벽화보다 더 좋았던 건 빨래가 마르는 난간, 대문 앞 화분, 오후 햇빛이 벽에 붙는 장면이었다. 유명 벽화마을처럼 사람이 줄 서서 사진 찍는 분위기는 아니고, 주민들이 사는 골목에 조용히 들어갔다 나오는 느낌에 가깝다. 그래서 목소리는 낮추는 게 좋다. 여행자가 오래 머물수록 조심해야 하는 장소가 있다. 신세동은 그런 쪽이다.
걸을 때 기억할 것
- 운동화가 편하다. 골목 경사가 은근히 있다.
- 대문 안쪽이나 창문 가까이는 찍지 않는 편이 낫다.
- 해 질 무렵은 빛이 좋지만, 너무 늦으면 골목이 빠르게 어두워진다.
임청각과 법흥사지 칠층전탑으로 내려오는 길
신세동에서 내려와 임청각 방향으로 걷는 길은 이번 안동여행코스에서 가장 마음이 가라앉는 구간이었다. 임청각은 보물로 지정된 오래된 집이고, 독립운동가 석주 이상룡 선생의 집으로도 알려져 있다. 바로 곁에는 국보인 법흥사지 칠층전탑이 서 있다. 돌이 아니라 벽돌로 쌓은 전탑이라 멀리서 봐도 질감이 다르게 보인다. 높이가 약 17m라 가까이 서면 생각보다 크다.
이 주변은 월영교처럼 화려하지 않다. 대신 길가에 남은 역사와 생활이 겹쳐 있다. 임청각 앞에서 잠깐 멈추면, 안동이 단지 전통문화의 도시가 아니라 근현대사의 무게까지 안고 있는 도시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이런 장소는 빠르게 보고 이동하기 아깝다. 안내판을 읽고, 전탑을 한 바퀴 보고, 골목 끝에서 다시 돌아보는 정도면 충분하다. 많이 찍지 않아도 오래 남는다.
월영교 대신 낮의 강변을 조금만
안동여행코스에서 월영교를 완전히 빼기는 어렵다. 다만 나는 밤 야경 시간보다 낮의 강변을 짧게 걷는 쪽을 좋아한다. 월영교는 인기가 많아서 주말 저녁에는 사람이 꽤 몰린다. 사람 적은 여행을 원한다면 오후 3~5시 사이, 혹은 평일 오전이 낫다. 다리 전체를 건너야 한다는 마음보다 강가 벤치에 잠깐 앉는 정도가 더 편했다.
원래는 낙강물길공원을 마지막에 넣고 싶었다. 숲길과 연못, 메타세쿼이아가 어울려 안동 도심 근처에서 쉬기 좋은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안동관광 안내에는 안동댐 시설 안전 확보 공사로 2025년 12월부터 한시적으로 입장을 허용하지 않는다고 올라와 있다. 그래서 지금 코스를 짠다면 무리해서 넣지 않고, 월영공원 주변 수변길이나 안동시립박물관 야외 공간으로 대신 잡는 편이 현실적이다.
내가 걸은 순서
- 안동 구시장과 떡볶이 골목
- 태사묘
- 신세동 벽화마을
- 임청각과 법흥사지 칠층전탑
- 월영교 주변 강변 산책
이 코스는 안동을 대표하는 큰 장면을 모아둔 길은 아니다. 대신 동네가 가진 온도를 천천히 만지는 길에 가깝다. 유명한 곳을 일부러 피한다기보다, 유명해지기 전부터 그 자리에 있던 것들을 먼저 보는 방식이다. 나는 이런 안동여행코스가 좋았다. 여행을 다녀왔다는 느낌보다, 어느 동네의 하루에 조용히 끼어 있었다는 느낌이 오래 남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