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보릿돌교를 직접 걸어봤더니, 바다보다 먼저 동네의 조용함이 보였다

지난겨울 구룡포 쪽을 천천히 지나가다가 장길리에서 차를 세운 적이 있다. 유명한 카페나 전망대 이름을 따라간 건 아니었고, 바닷가 마을 끝에 다리가 하나 길게 나와 있다는 말이 이상하게 마음에 남았다. 그곳이 포항 보릿돌교였다.
처음엔 이름이 낯설었다. 보릿돌교. 관광지 이름이라기보다 동네 어른들이 오래 부르던 지명 같았다. 실제로 가보면 그런 느낌이 더 강하다. 화려한 입구나 큰 조형물이 먼저 보이는 곳이 아니라, 장길리복합낚시공원 안쪽으로 들어가야 바다 쪽으로 가만히 뻗은 다리가 보인다.
장길리 골목 끝에서 만난 바다 위 길
보릿돌교는 포항시 남구 구룡포읍 장길리에 있다. 포항 시내에서 바로 가면 차로 대략 40분 안팎, 구룡포 일본인가옥거리 쪽에서는 10분 조금 넘게 걸리는 거리다. 그래서 구룡포를 들렀다가 사람이 조금 덜한 바다를 보고 싶을 때 이어 가기 괜찮았다.
내가 갔던 날은 평일 오후였다. 주차장에는 낚시하러 온 차 몇 대가 띄엄띄엄 있었고, 관광객보다 낚싯대를 챙기는 사람들이 더 자연스럽게 보였다. 유명 관광지 특유의 들뜬 소리보다 바람 소리, 파도 소리, 아이스박스 끌리는 소리가 먼저 들렸다.
다리는 바다 위로 약 170m 정도 이어져 있다고 알려져 있다. 숫자로 보면 짧게 느껴지지만, 막상 걸으면 바다 한가운데로 조금씩 밀려 들어가는 기분이 든다. 발밑으로 파도가 부딪히고, 옆으로는 구룡포 바다의 짙은 색이 길게 펼쳐진다. 길 자체가 대단히 크거나 웅장하진 않은데, 그 덕분에 오히려 주변 마을과 바다가 더 크게 느껴졌다.
보릿돌교가 조용하게 느껴졌던 이유
포항 바다 하면 영일대, 호미곶, 구룡포처럼 이름난 곳이 먼저 떠오른다. 그곳들은 분명 볼거리가 많고 편하다. 대신 사진 찍는 사람, 버스 단체, 주차장 움직임이 함께 따라온다. 보릿돌교는 그 반대쪽에 가까웠다. 누가 일부러 크게 꾸며놓은 느낌보다, 낚시공원과 마을 바다가 겹쳐진 생활의 풍경에 가까웠다.
다리 위에서 가장 오래 본 건 바위였다. 다리 끝 쪽에는 보릿돌이라 불리는 바위가 있고, 이 주변에 미역이 많이 자라 흉년 때 사람들에게 보탬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름 안에 그런 사연이 들어 있다는 걸 알고 나니, 그냥 예쁜 바다 풍경으로만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에게는 생계였고, 누군가에게는 기다림이었고, 지금은 조용한 산책길이 된 셈이다.
솔직히 사진만 보고 큰 기대를 하면 조금 심심할 수도 있다. 근데 나는 그 심심함이 좋았다. 매점에서 들려오는 소리도 크지 않았고, 바람이 세게 불면 사람들은 오래 머물기보다 잠깐 서서 바다를 보고 돌아갔다. 여행지가 아니라 동네의 한 부분에 잠시 들어간 느낌이었다.
직접 걸을 때 좋았던 동선
보릿돌교만 보고 돌아서면 시간이 짧다. 그래서 나는 구룡포 읍내에서 밥을 먹고, 장길리로 넘어와 바다를 보고, 해가 기울기 전에 다시 해안도로를 따라 움직이는 식으로 걸었다. 포항 남쪽 바다는 차로 이동하는 구간이 길지만, 중간중간 내려서 20분씩만 걸어도 풍경이 꽤 달라진다.
- 구룡포 일본인가옥거리에서 장길리까지 차로 이동하면 부담이 적다.
- 평일 오후에는 비교적 한산했지만, 주말과 일출 시간대에는 사람이 늘 수 있다.
- 바닷바람이 강한 편이라 계절과 상관없이 얇은 겉옷이 있으면 편하다.
- 낚시객이 많은 공간이라 산책할 때는 장비와 줄을 살피며 천천히 걷는 게 좋다.
사진을 찍기엔 다리 중간보다 초입에서 바다와 다리 전체를 같이 담는 쪽이 더 괜찮았다. 다리 위로 들어가면 풍경이 넓어지는 대신 구도가 단순해진다. 대신 눈으로 보는 맛은 다리 위가 낫다. 바다색이 생각보다 맑고, 파도가 바위에 부서지는 소리가 가까워서다.
방문 전에 꼭 확인해야 할 최근 상황
다만 지금 이 글을 읽고 바로 방문을 생각한다면 한 가지는 꼭 알고 가야 한다. 2026년 7월 28일 오후 1시 15분쯤 포항 남구 구룡포읍 장길리 보릿돌교 일부가 붕괴되는 사고가 있었다. 보도에 따르면 당시 17명이 한때 고립됐다가 모두 구조됐고, 확인된 인명피해는 없었다. 이데일리 보도에서는 교각 2개 구간, 약 50m가량이 무너졌다고 전했다.
그래서 보릿돌교는 예전처럼 가볍게 걸을 수 있는 장소로 소개하기 어렵다. 내가 다녀왔던 때의 분위기는 조용하고 좋았지만, 지금은 개방 여부와 안전 통제 상황이 훨씬 중요하다. 포항시 관광 안내나 현장 통제 안내를 먼저 확인하고, 막혀 있다면 무리해서 접근하지 않는 편이 맞다. 참고한 최근 보도는 https://www.edaily.co.kr/News/Read?mediaCodeNo=257&newsId=05077446645519112 와 https://www.wikitree.co.kr/articles/1148960 이다.
보릿돌교를 좋아했던 건 풍경보다 속도 때문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보릿돌교는 대단한 명소라기보다 속도가 느린 장소였다. 주차하고, 바람을 맞고, 다리 쪽으로 걸어가고, 낚시하는 사람들 옆을 조심히 지나고, 바다를 한참 바라보다가 다시 돌아오는 정도. 할 일이 별로 없어서 오히려 오래 남았다.
포항을 여행할 때 늘 큰 장소만 고르면 바다는 많이 봐도 동네는 잘 보이지 않는다. 장길리 보릿돌교 주변은 그 반대였다. 바다 사이에 마을이 있고, 마을 사이에 낚시공원이 있고, 그 끝에 사람이 천천히 걸어갈 수 있는 길이 있었다. 언젠가 안전하게 다시 이어진다면, 나는 이곳이 예전처럼 조용한 속도로 남아 있었으면 한다. 너무 유명해지지 않은 채로, 바다를 보러 온 사람이 잠깐 말을 줄이게 되는 그런 장소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