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골목 모임에서 선호투표제를 직접 겪어봤더니

작은 마을회관에서 본 낯선 투표 방식
얼마 전 전남의 한 작은 읍내를 걷다가 마을회관 앞에 붙은 안내문을 봤습니다. 다음 달 골목 장터 코스를 주민들이 직접 고른다는 내용이었는데, 방식이 조금 낯설었습니다. 그냥 손을 들어 가장 많이 나온 곳을 뽑는 게 아니라, 마음에 드는 순서대로 1순위부터 3순위까지 적는다고 하더군요. 그게 바로 선호투표제였습니다.
사실 여행 중에 이런 장면을 만나면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유명한 전망대보다, 동네 사람들이 무엇을 아끼고 어떤 골목을 살리고 싶어 하는지 보이는 순간이 더 진짜처럼 느껴지거든요. 그날 회관 안에는 스무 명 남짓한 주민이 모여 있었습니다. 후보는 세 곳이었습니다. 오래된 방앗간 골목, 초등학교 뒤 벚나무길, 그리고 빈집을 고쳐 만든 작은 책방 거리였습니다.
선호투표제는 단순히 한 표만 던지는 방식이 아니었다
보통 우리가 익숙한 투표는 한 사람에게 한 표를 주는 방식입니다. 가장 많은 표를 받은 후보가 뽑히죠. 그런데 후보가 셋 이상이면 조금 애매한 일이 생깁니다. 예를 들어 A가 35표, B가 33표, C가 32표를 받으면 A가 이깁니다. 하지만 A를 원하지 않는 사람이 65명인 상황일 수도 있습니다.
선호투표제는 이런 어긋남을 줄이려는 방식입니다. 유권자가 후보를 순서대로 적습니다. 1순위, 2순위, 3순위처럼요. 처음에는 1순위 표를 세고, 과반을 넘은 후보가 없으면 가장 적게 받은 후보를 제외합니다. 그리고 그 후보를 1순위로 찍은 사람들의 2순위 표가 남은 후보들에게 옮겨갑니다. 이렇게 반복해서 더 넓은 지지를 받는 쪽을 찾습니다.
그날 마을회관에서는 방앗간 골목이 처음에 가장 많은 1순위 표를 받았습니다. 근데 과반은 아니었습니다. 책방 거리가 가장 적은 표를 받아 빠졌고, 책방 거리를 1순위로 적은 주민들의 2순위가 벚나무길에 꽤 많이 넘어갔습니다. 결국 최종 선택은 벚나무길이 됐습니다. 처음엔 조용하던 주민들이 그 결과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거기도 나쁘지 않지”라는 말이 여기저기서 나왔습니다.
왜 동네 일에 잘 어울린다고 느꼈는지
로컬 여행을 하다 보면 선택지가 늘 선명하지 않습니다. 제일 유명한 곳이 제일 좋은 곳은 아니고, 제일 조용한 곳이 모두에게 편한 곳도 아닙니다. 선호투표제는 그런 미묘함을 조금 더 잘 담아내는 방식처럼 보였습니다.
- 1순위만 보는 방식보다 사람들의 두 번째 마음까지 반영됩니다.
- 표가 비슷하게 갈릴 때, 아주 작은 차이로 전체 방향이 정해지는 일을 줄일 수 있습니다.
- 처음에는 덜 주목받던 선택지도 최종 과정에서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 극단적으로 호불호가 갈리는 후보보다, 여러 사람이 어느 정도 받아들일 수 있는 후보가 유리해집니다.
물론 완벽하진 않습니다. 설명이 조금 필요합니다. 어르신 몇 분은 “그럼 내 표가 어디로 가는 거냐”고 물으셨고, 진행자는 종이에 예시를 그려가며 다시 설명했습니다. 단순다수제보다 시간이 걸리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날도 투표 자체보다 개표와 설명에 더 오래 걸렸습니다. 대략 40분쯤 걸렸는데, 신기하게도 사람들은 중간에 자리를 많이 뜨지 않았습니다. 결과가 어떻게 옮겨가는지 보는 재미가 있었기 때문인 듯했습니다.
여행자의 눈으로 본 선호투표제의 분위기
저는 선호투표제를 책에서 먼저 알았지만, 동네 회의실에서 보니 느낌이 달랐습니다. 제도라는 말은 차갑게 들리지만, 실제로는 사람들이 서로의 차선을 인정하는 장면에 가까웠습니다. 방앗간 골목을 가장 좋아한 사람도 벚나무길을 싫어한 건 아니었고, 책방 거리를 밀던 사람들도 “이번엔 벚나무길이면 괜찮다”고 말했습니다.
여행도 비슷합니다. 1순위 장소만 좇으면 늘 유명한 곳으로 갑니다. 하지만 2순위, 3순위까지 마음을 열어두면 뜻밖의 골목을 만납니다. 버스가 하루 6번밖에 안 다니는 정류장, 오래된 철물점 옆 국숫집, 오후 4시가 되면 햇빛이 낮게 깔리는 담벼락 같은 곳들 말입니다. 대단한 이름은 없지만, 다녀오고 나면 이상하게 오래 남는 장소들입니다.
선호투표제가 남긴 작은 생각
그날 벚나무길로 정해진 뒤, 주민 한 분이 제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제일 좋다는 사람은 적어도, 싫다는 사람도 별로 없으니까 괜찮지.” 그 말이 선호투표제를 꽤 잘 설명한다고 느꼈습니다. 모두가 열광하는 선택은 아니어도, 많은 사람이 납득할 수 있는 선택. 동네 일을 정할 때는 그런 방식이 오히려 오래갑니다.
선호투표제는 복잡해 보이지만, 결국 사람들의 마음을 한 줄로 자르지 않으려는 방식입니다. 여행지에서도, 마을의 결정에서도, 사람 마음은 늘 1순위 하나만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저는 그런 여백이 있는 제도가 꽤 인간적으로 느껴졌습니다. 다음에 벚나무길 장터가 열리면, 아마 조금 일찍 도착해 천천히 걸어볼 생각입니다.
